[...시시콜콜 산행기] 계룡산(심우정사)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트뉴스24에서는 등산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 지역 관광지를 보다 알리자는 취지에서 대전충남 근교 산들의 등산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위해 대전충남지역 산악인들의 모임인 '대충山사람들'회원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충山사람들 홈페이지 (http://okmountain.com/okcafe)


산 행 지 : 심우정사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일     시 : 2006년 7월 16일(일)
코     스 : 계룡산(지석골-작은배재-신선봉-큰배재-삼불봉-심우정사-동학사-주차장)
교통안내 :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남공주IC→공주→32번국도→계룡산

삶의 가치는 모양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주말과 제헌절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에 장맛비가 온 나라를 할퀴고 곳곳에 심한 상처를 남겼다. KBS TV에서 방영되는 VJ특공대 촬영을 위한 설악산 산행을 취소하고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날이 맑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을 보니 병이다. 물 한 병과 냉동실에 얼려놓은 약밥을 배낭에 쑤셔 넣고 무작정 집을 나서 용암사로 향한다.

충북 옥천군의 장용산 중턱에 자리 잡아 울창한 숲과 오랜 멋을 자랑하는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신조사가 세운 사찰로 경내에는 보물 1338호인 용암사 쌍삼층석탑과 용암사 마애불상이, 용암사 대웅전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남아있다. 용암사 동쪽 탑봉의 자연 암반 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어 쌍삼층석탑이라고 하며, 이 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천연 바위벽을 이용해 돌을 새김한 높이 3m의 마애불 입상으로 붉은 바위색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는 마애불의 하나이다.


다시 4번 국도로 나와 옥계폭포로 가기 위해 영동방향으로 달린다. 국악의 거성 난계가 즐겨 찾았고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옥계폭포는 영동군 심천면 옥계리로 진입하여 천모산 골짜기로 들어서서 산길을 따라 약 1km전방에 위치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함께 높이 30m의 폭포에서 힘찬 물줄기를 뿜어내며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주변에 서 있으면 물보라로 인한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고 폭포 아래에는 조그마한 소가 있는데 물이 맑고 깨끗하다.

돌아오는 길에 플러스님한테 전화를 하니 지금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이 가자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일풍님 차에 동승하고 계룡산으로 향한다. 국립현충원을 지날 즈음 앞이 안보일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진다. 삽재를 넘어 박정자삼거리를 향해 내려서자 도로공사로 인해 허옇게 옆구리를 드러낸 산자락이 보이고 앞이 탁 트이며 눈앞으로 다가서는 장군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계룡산을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동학사 지구를 통해 계룡산을 접하고 있으니 초입의 장군봉은 계룡산의 얼굴인 셈이다. '장군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일화가 전해진다.

예전에 '계룡대'에 근무하던 대령 하나가 이곳 장군봉에서 치성을 드리고 드디어 장군으로 진급했다고한다. 믿거나 말거나...  오늘 산행은 심우정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심우정사. 계룡산 깊숙이 자리 잡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암자. 지도상으로는 귀명암으로 표시된 암자. 오래전부터 가보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얼마 전 카페에서 전천후님의 길 안내를 받았다. 10시 40분. 자연사박물관 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학림사(鶴林寺)를 지나 지석골매표소로 향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쳤다. '지석골'은 제석골의 충청도 사투리다.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왕 제석천(帝釋天)에서 따온 마을 이름으로 조선 중기까지 제석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석골 매표소에 도착하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호우주의보가 내려 입산이 통제되었다며 출입을 제지한다. 발길을 돌려 50여m 정도 내려와 오른쪽으로 보이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길로 들어선다. 작은배재로 이어지는 들머리다. 예전에 심마니와 약초꾼들이 다니던 길로 동네사람들이 꾸준히 이용하여 길이 뚜렷하다.

11시 15분. 하늘을 향해 곧추 세운 바위가 지키고 있는 전망 좋은 곳에 닿는다. 동학사 주차장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고 바가지바위를 안은 치개봉에서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운무 모자를 쓰고 위용을 자랑한다.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물 한 모금으로 거치러진 호흡을 달랜다. 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걸음을 재촉한다. 갈림길에서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감아 도는 편안한 길을 따라 작은배재로 향한다. 11시 45분.

작은배재에 도착한다. 발길이 뜸하여 강원도 오지의 느낌이 나는 곳이다. 수풀 사이에서 원추리가 활짝 웃음 지으며 나그네를 반긴다. 10여분을 기다려도 봉우리로 올라섰던 플러스님 일행이 내려서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마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계곡을 따라 남매탑으로 향한 것 같다. 상원암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일풍님 과 남매탑으로 향한다.


짙은 운무가 오르며 눈앞에 봉우리를 감추는 게 마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 같다. 봉우리들이 운무에 휩싸이며 신비감마저 든다. 12시 20분. 장군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치고 올라선다. 하신리와 고청봉이 한 눈에 조망된다. 12시 50분. 신선봉을 우회하여 큰배재로 내려선다. 이 고개는 세상이 홍수로 잠겼을 때 배를 맸던 장소라고 한다. 그대로 직진하여 목재울타리를 넘어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남매탑삼거리에 닿는다. 다시 목재 울타리를 넘어 봉우리에 올라섰다 내려서면 삼불봉삼거리에 닿지만 상원암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왼쪽 길을 따라 남매탑으로 향한다.

13시 5분. 남매탑에 닿는다. 신라 33대 성덕왕 23년에 건립된 이 두기의 석탑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한 것이며, 현재의 상원암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됐던 것을 1996년부터 5년간에 걸친 복원 불사를 통해 완공된 것이다. 7층탑은 오라비탑, 5층탑은 누이탑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남매탑 앞에는 일부러 설치해 놓은 듯한 돌 거북이 여러 개 흩어져있는데, 지금의 상원암이 세워지기 전인 50여 년 전 절의 복원을 위해 준비된 주춧돌이라 한다. 헤어진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모양이다.

상원암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고3 수험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접수중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띤다. 자기만을 향한 욕망에 뿌리를 둔 기복신앙은 곧잘 비수가 되어 남에게 해를 입힌다. 입시철만 되면 전국의 사찰과 교회, 성당을 찾는 학부모의 기도행렬을 보고 어느 스님은 기도하는 자세부터 달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력이 모자라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행위는 큰 잘못입니다. 부처님에게 입시부정을 저지르라는 말이나 다름없지요.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실력 있는 학생이라고 해도 뜻하지 아니한 변수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요.” 40분 정도 지났는데도 일행이 오지 않는다. 소주병을 비우며 왁자지껄하게 점심식사를 마친 한 무리의 산행객이 하산길로 접어들자 운무가 점점 짙게 드리우고 고요함이 밀려든다. 일풍님과 둘이 마주앉아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다. 14시 5분. 삼불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남매탑에서 삼불봉고개로 오르는 가파른 길은 방금 끝낸 점심식사로 더욱 숨 가쁘게 한다. 남매탑에서 10여분. 150여개의 철계단을 올라서면 삼불봉에 닿는다.

삼불봉은 계룡산의 모든 기와 혈이 모인다는 풍수상의 주봉이다. 삼불봉 설화는 계룡 8경중 제 2경으로 꼽힌다. 설화대신 사방으로 깔린 짙은 운무로 정적만이 감돈다. 자연성능쪽 철계단을 내려선다. 오송대 아래 자리 잡은 심우정사를 찾아가려면 목재 울타리를 넘어 족적이 흐릿한 길을 따라 삼불봉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시산제 등의 제단으로 쓰이는 석축 아래로 수풀에 가려진 너덜길을 더듬어 내려간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붙잡는 나뭇가지가 힘없이 부러지면서 바위에 손목이 긁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치료한다. 오송대에 닿는다. 삼불봉에서 약 20분소요.

오송대는 다섯 명의 성인이 나올만한 명당자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 암자 터로 마르지 않는 샘이 흘러나와 심우정사까지 은빛 수도호스가 이어진다. 무난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호스는 거대한 바위사면을 휘감아 돌아 지나간다.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다. 바위면을 내려와 우회를 한다. 오송대에서 15분. 부도 1기가 자리 잡은 작은 공터에 닿는다. 폭음과 기행을 일삼았지만 정이 많았던 목초스님의 부도다. 부도 앞에 놓인 낡은 소파와 건축자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천황봉과 쌀개능선은 운무에 가려 모습을 감추었다.

모퉁이를 돌아 내려서자 가지런히 놓인 장독대가 정겹고 절벽아래 절집이 있다. 바구니 스님이 “어떻게 오셨는지, 어디서 오셨는지, 왜 오셨는지” 묻는다. 알지 못하면 찾지 않는 길을 찾아온 방문객이 반가운 모양이다. 이곳을 찾아온 길손에게 두충차를 대접하던 목초스님이 있어 화제가 되었었는데 스님이 떠난 지금도 비구니 스님이 두충차를 대접한다. 비구니 스님한테 ‘심우’의 의미를 묻자 소를 찾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소는 무엇을 뜻하는지 묻자 소는 사람의 본성이란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뒤 소도 나도 잃어버리는 경지에까지 이른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인데 알 듯 모를 듯 하다. 삶이란 모래성처럼 늘 불안하다. 대개는 반쪽 인생을 살다가 가고, 우리가 잊고 사는 다른 한쪽이 자기의 참모습이 아닐까...

사람들은 욕망의 충족이 행복인줄 착각한다. 그러나 욕망도 마음먹기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15시 20분.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어둑어둑해지는 날씨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하다. 서둘러 하산한다. 헤어진 일행들이 걱정할까봐 마음이 상당히 쫓긴다. 10여분 내려서자 돌탑이 있는 안부 갈림길이다. 왼쪽 길은 동학사로 이어지지만 출입이 통제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공식적으로 개방하기 위해 길 정비까지 한 길이 동학사의 반대에 부딪혀 막힌 길이다.


직진하는 길을 따라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동학사 절집 안으로 내려선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절집 문에 붙어있는데 왜 하필 관광객이 북적대는 이곳에 스님들의 공부방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절 마당의 항아리 안에 핀 연꽃은 미소를 짓고 일주문을 지나자 빗줄기가 굵어지고 덩달아 걸음도 빨라진다. 세진정에 가까이 계곡에는 물소리가 제법 힘차다. 동학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차를 세워 놓은 곳으로 이동한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파전을 안주로 동동주를 마시고 있던 헤어진 일행이 반갑게 맞이한다.

새벽안개님의 다리 통증 때문에 중간에서 일찍 하산했다고 한다. 기다리느라 지루했는지 아니면 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지 그도 아니면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심우정사를 가지 못해 약이 오른 지 플러스님이 계속 툴툴댄다. 동동주 항아리를 비우고 수박을 쪼개 입가심을 한 다음 새벽안개님 집으로 이동한다. 밖에는 굵은 장대비가 퍼 붓고 액션플레이어님이 가져온 산삼주와 이슬님 모녀가 쉴 새 없이 부쳐 내온 부침개는 모인 사람들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한다. 부족한 술은 40도가 넘는 베트남 보드카와 생맥주와 치킨으로 이어지고 행복한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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