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산행기] 웅석봉~덕두산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트뉴스24에서는 등산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 지역 관광지를 보다 알리자는 취지에서 대전충남 근교 산들의 등산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위해 대전충남지역 산악인들의 모임인 '대충山사람들'회원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충山사람들 홈페이지 (http://okmountain.com/okcafe)


산행지 : 지리산 태극능선(경남 산천의 웅석봉~전북 남원의 덕두산)
산행한날 : 2006년 5월 22~3일 월~화 요일 / 날씨 : 맑음 비 그리고 맑음.
누구와 : 산찾사.너른숲
교통정보 : 함양JCT→88고속도로→함양IC 또는 지리산IC
산행코스 : 어천마을(02:20)-웅석봉(04:10)-밤머리재(06:20)-서왕등재(08:10) 왕등재습지(09:45)-상내봉(12:27)-독바위(12:44)-국골4거리(13:50) 하봉(14:25)-중봉(13:13)-천왕봉(15:36)-장터목(16:17)-촛대봉(17:43) 세석대피소/석식 및 휴식 1시간(18:01~19:00)-벽소령(21:20)1박[ 첫날 산행시간 : 19시간] 벽소령(06:50)-연하천/아침(18:16)-삼도봉(10:10) -노고단(11:47) -성삼재/중식(12:38-13:15) 만복대(14:55) -정령치(?) -세걸산(16:35)-부운치(17:08)-팔랑치(17:27)-바래봉(17:55-18:00) 덕두산(18:15-18:20)-구인월 마을회관(19:00) -둘째날 산행시간 : 12시간 10분- 총 산행거리 : 69.7km 산행시간(벽소령 1박 제외 휴식포함) : 31:10

무쇠솥 같이..... 된장 뚝배기 같은... 우리 시골집 장독대의 항아리 처럼 흙을 닮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기나긴 8년 현장 감리단장의 책무를 끝낸후 찾아온 길다면 긴 휴가 기간은 속절없이 흘러흘러 이제 또다시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끌려갈 날을 잡아놓곤 휴가 끝자락에 이른 지금 그이는 마음의 양식을 얻으려 지리의 품속에 들길 원합니다. 그냥 처다만 봐도 순딩이같은 저이의 소원인 태극을 조용히 즈려 밟는 산행을 더는 외면할수 없어 평일의 한가로운 날을 택하여 날을 잡았습니다.
 
새벽 2시반에 출근후 15:00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자 마자 숲님 매시 정각에 떠나는 버스가 있다며 가능함 16:00 버스로 가잡니다. 시간은 없고 마음만 급해저 옵니다. 아내가 준비해준 도시락과 반찬 간식거리와 산행 준비물을 45 L 베낭에 마구 우겨넣곤 촉박한 시간에 겨우 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봅니다. 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지난밤 근무가 고됏나 ? 정신없이 자다 목이 아파 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산청을 지나고 있습니다. 진주에 도착후 바로 산청으로 이동하여 국물이 개운하고 시원한 설렁탕으로 배를 불린후 어천마을 쉴만한 물가란 민박집까지 택시로 달려가 짐을 풀곤 산행들머리를 사전답사후 일찍 잠을 청합니다. 다음날 새벽2시.... 핸폰의 알람에 퍼뜩 일어나 베낭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친절한 민박 쥔장님 렌턴으로 불 밝혀 어천계곡까지 마중을 나오십니다.


그냥 헤어짐이 아쉬워 대전에서 온 너른숲과 산찾사로 기억해 달라 말해주며 작별을 고합니다. 땅에는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스럽고 또한 소란스러운데 밤하늘엔 초롱초롱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저 내리고 이즈러진 조각달은 왠지 애처로와 길떠난 길손의 마음을 촉촉히 젹시며 감상에 젖게 만듭니다. 산행초반 싸늘함은 어느새 덥혀진 열기로 겉옷을 무장해제 시킵니다. 잠시 쉴틈에 초코파이 덤썩 물어 열량을 보충합니다. 한순간 숲을 흔드는 바람이 지나가며 몸을 휘감아 도는데 상쾌함이 밀려듭니다. 계곡의 청정수 두손으로 떠받들어 목을 축인후 웅석봉을 향한 오름질을 시작합니다.

소란스런 물소리 잠잠해 질수록 지능선으로 향한 등로가 가팔라 집니다. 숲은 바람이 흔드는것이 아니라 왼종일 수런거리는 새들이 흔든다더니 문득 한밤의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청아한 자연의 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는데 검은등 뻐꾸깁니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호올딱 벗고~ 호올딱 벗고~" 검은등 뻐꾸기는 나에게 모든것을 홀라당 벗어 던지고 산에 들람니다. 그래 어짜피 온통 더러움에 찌든몸과 마음인데 뭐가 아깝고 미련이 있을랴~ 그간 미워하고 원망스럽던 인연으로 멍든 가슴속을 비워내고 그득하게 들어 앉은 욕심과 욕망들 하나 하나 끄집어 내어 버려봅니다. 비울거 다 비운것 같은데도 여전히 검은등 뻐꾸기는 홀딱 벗으라 노래하며 따라옵니다.

그래 마음을 비운다는 그 마음도 아예 비우자 비운다고 맘대로 비워진다면 해탈하여 성불한 부처가 될테지유~ 그래 너 울어라 나 그냥 갈란다. 그날밤 비워내지 못한 나의 마음 때문에 검은등 뻐꾸기는 밤세도록 목젖이 쉬도록 울었답니다. "네이놈 홀딱 벗어~ 야이시캬~ 홀딱 벗어~" 에궁~ !!!! 가파른 오름길 꼬불꼬불 불빛을 따라서 등짝 김 모락모락 오르도록 올라섭니다. 지능선을 타고 남동릉으로 올라선뒤 777봉 부근 헬기장에서 한숨을 고르며 먹기 싫다는 너른숲님께 억지로 영양갱 하날 멕입니다. 나중에 먹는것도 귀찮고 힘들때를 생각해 먹어두라며... 헬기장에서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정상까지 제법 험로이나 반쯤 달려있고 반쯤 땅에 떨군 철쭉 꽃잎이 아름다워 그 힘듬을 달래줍니다.


곰이 떨어저 죽었다는 웅석봉 정상에 서니 무섭게 바람이 휘몰아 칩니다. 겉옷을 꺼내어 입고 정상기념 증명사진을 박고나니 산아래의 흰 운무의 장관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옵니다. 야간이라 저 모습을 디카에 담지 못함이 안타까워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나 갈길이 바쁘고 멀기에 미련을 떨치고 일어섭니다. 지곡사에서 올라오는 왕재를 지나며 갑자기 숲속은 어수선해집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준비로 숲들이 몸서리를 치고 새들이 지저귑니다. 동녁의 하늘이 산고의 진통으로 붉게 물들어 가기에 밤머리재에서 아침식사 계획을 변경하여 적당히 조망이 확보된 암릉에 단둘이 앉아 일출을 기다리며 도시락을 먹습니다.

어느순간 연두색으로 치장한 산정에 아기햇쌀 한줌이 내려쬠을 느껴 바라본 동녁엔 운무를 뚫고 해가 떠올랐습니다. 날이 밝자 산정아래 운무가 넘실대는 장관은 힘들게 올라온 야간산행의 노고를 달래주고도 남습니다. 웅석봉에서 왕등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가르며 산청에서 덕산으로 넘어가는 59번 도로 밤머리재는 태극종주 산행인의 쉼터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 도로를 내려서서 쉼터로 들어서자 순박하게 생긴 쉼터 쥔장 미소로 반겨주고 늙수구레 한 도인 복장의 일행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중입니다.

깔끔한 숲님 이곳에서 양치하고 밀어내기 하고 할것 다합니다. 지저분한 나야 닦아도 그만 안 닦아도 그만이라 동부능선 통과에 지장없을 정도로 왕창 물이나 한가득 담아 놓고 물값 대신 다소 비싼 인스턴트 커피를 시켜 숲님과 함께 마신후 쉼터 뒤로 이어지는 지리의 동부능선을 향한 가파른 오름을 오릅니다. 935.8 봉의 왕등재까지 오름과 내림이 비교적 순탄한 육산이 이어지며 가는내내 산아래는 운무가 삼켜먹곤 겨우 인심 베풀어 내놓은게 923.2봉인 왕산과 848봉인 필봉산 정상이라 그 선경은 아무리 봐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습지를 향해 내려서던중 살모사 새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왕등재 습지에 내려서자 다리난간 아래로 습지의 물이 제법 흐릅니다.

땀에 젖은 윗통을 벗어 난간에 걸어놓고 등산화도 벗고 양말도 벗어 던진김에 흐르는 습지의 물에 발을 담그니 보기보다 어찌나 차갑던지 오래 견디기 힘듭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천천히 즐기며 무박종주나 하자는 숲님과의 약속대로 아내가 쩌준 쑥 버무리떡으로 요기를 하며 널널한 시간을 할애하며 시간을 보냄니다.

작년에 벽송능선을 타고 올라 잠깐 방심에 1315.4봉에서 길을 잘못들어 허공다리골로 하산하기까지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오름과 내림의 부침이 심한 등로를 후반 체력안배를 위해 천천히 걷는데 한두차레 비를 예고한 일기예보가 제대로 들어맞을려는지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비 맞기전 그냥 식사를 하자는 숲님의 요청을 묵살하고 산행의 갈림길이 되는 그곳까지 강행합니다. 다행히 1315.4봉을 올라서서 점심을 다 먹을동안 하늘은 잘도 참아주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자 안개비가 내리고 하늘이 어둑해지며 이슬비가 내립니다. 급하게 행장을 꾸려온 난 우천에 대비한 장비가 전혀 없습니다.
 
열이 많고 땀이 많은 난 판쵸우의를 쓰고 산행하면 무슨 열탕에 들어온것 같아 항상 그냥 비를 쫄딱 맞고 산행하는 스타일이라 크게 걱정을 않습니다. 한차레 내린비는 소강상태를 보이다 끝.... 숲님이 말합니다. "한두차레 온다 했으니 한번만 더오면 완죤 비 끝이다." 그러나 그건 단지 우리의 희망사항이고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고난의 전주곡일줄야~!!!! 청이당고개를 지날쯤 산죽을 헤치는 동안 젖어드는 몸은 자동 바이메탈 온도계 남성의 상징 쌍방울을 오그라들게 만들더니 이젠 탱글탱글하게 변함니다. 방수 방풍의 겉옷을 베낭만 젖지 않게 감싸고 오던걸 벗겨 오소소 돋아나는 팔뚝의 소름을 덮어줍니다. 국골사거리에 이르자 이미 찌그덕 거리던 등산화를 벗어 양말을 한번 짜서 신어본건 3월달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출전.

금(썹쓰리 주자 벳지)에 눈이 멀어 발목부상을 무시한 결과 4월달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으로 이어진 부상의 꼬리를 떨구지 못한 결과로 양쪽 엄지 발톱이 새까맣게 죽은 그 후유증이 남아 서서히 나의 심신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비는 본격적으로 내립니다. 하봉을 그냥 지날칠까 하다 올라섰다 뒤돌아 내려섭니다. 앞도 뒤도 어느새 안개가 잡아먹고 길마저 내주지 않습니다. 헬기장을 넘어 중봉을 향한 오름길에 들어섭니다.

중봉 산사태 보수를 위한 콘테이너 건물을 넘어서고 악전고투속에 드뎌 천왕봉을 올랐습니다. 천왕봉 정상 빗돌은 세찬 비바람속에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빗돌을 부등켜 안고 겨우 나 여기 정상에 섯노라 증명사진 남기며 장터목을 향해 후퇸지 ? 진격인지 ? 하여간 산장에 따스한 컵라면을 기대하며 추위에 얼어붙은 심신에 희망과 기대를 않고 제석봉을 넘고 하늘에서 내려서는 통천문을 통과후 드뎌 고대하던 산장으로 들어섭니다.

장터목 산장이 오랫만에 그 이름값을 함니다. 장터 분위기처럼 많은 인파로 번잡스러운데 비를 쫄닥 맞은 산행인들은 전쟁터의 패잔병 같습니다. 산장에 들어서자 마자 관리인에게 컵라면 파냐 물어보니 오래전부터 품목에서 제외 됐답니다. 할수없이 천냥짜리 비닐 우의를 이천냥이나 덤으로 더 주고 구입하여 속옷과 팬티를 갈아입고 양말을 꽉 짜 물기를 뺀후 겉에 비닐우의로 무장을 하고나니 어느정도 추위가 가십니다. 그사이 숲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봉숭아 캔을 사서 반을 드시고 나에게 건냅니다.


산에서야 뭐든 맛이 좋으나 배고픔 뒤에 먹는 복숭아 간스메(캔)는 목구멍 넘기기 조차 아까울 정도 입니다. 휴식과 간식에 어느정도 기력을 찾은 우린 짙은 운무를 가르며 세석을 향함니다. 다시 또 빗줄기가 굵어 집니다. 바람도 덩달아 불어 제킵니다. 1730봉의 연하봉을 어떻게 넘겼는지 삼신봉은 또 언제 지나쳤는지 모릅니다. 세석을 앞둔1703.7봉 촛대봉 안내판이 문득 시야에 들어 올때까지 고개를 푹 수구리고 비바람에 엄습하는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마냥 걸었을 뿐....... 촛대봉은 올때마다 사진을 찍었다는 숲님은 아직 살만은 한가 봅니다.오늘도 역시 그냥 지나칠수 없다며 사진을 그여 박는걸 보면.....세석평전의 철쭉은 젖몽오리 솟듯 여린 꽃망울이 불그레한 고개를 내밀고 오롯이 비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습니다. "호로로로~ 찌졸~찌졸~찌졸~"종달새가 세석산장 입성을 반기는 청아한 노래로 우릴 맞아 줍니다. 세석산장 취사장....

여기저기 갖가지 국,찌게,라면등 풍성한 먹거리 틈 바구니에서 식은 찬밥 덩어리에 짱아치와 김이 전부인 초라한 밥상을 펼쳐놓고 억지로 우겨 넣습니다. 옆집 찌게와 뒷집의 라면국물 한방울이라도 들이키면 속이 풀리고 추위가 가실것 같은데 빈말이라도 먹어보란 인간들 하나 없습니다. 넉살이라곤 손끝 만큼도 없는 숲님이나 나나 그저 침만 삼킬뿐...... 뒷집의 라면발만 건저 먹고 남은 국물이 잔밥통으로 버려집니다. "에구~ 에고오~ 아까운거~" 나중에야 속내를 털어 놓은 숲님은 한살이라도 젊은 산찾사님이 그거 버릴거면 우리나 달라고 하길 엄청 기다렸답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그런대로 베낭이 온전한 숲님이 솟옷을 갈아 입는 동안 갑자기 허리가 아파온 난 후끈후끈 한방파스 하나를 붙여보자 견딜만 합니다. 아직 해질녁이 아니것만 벌써 어둠이 내려 앉은 산장엔 더욱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숲님 선뜻 나서길 망설이며 빗줄기가 좀 가라 앉으면 가자 하는걸 어짜피 젖은몸이고 가야할 길이면 야간 산행임을 감안하여 한발짝이라도 더 가야 된다며 빗줄기 속으로 먼저 뛰어드니 할수없이 따라 옵니다. 영신봉을 넘기며 헤드렌턴을 밝힙니다. 그러나 렌턴의 불빛은 짙은 안개와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잡아먹혀 그 빛은 두어 걸음을 뻣어 나가지 못하고 흐리멍텅한 불빛만 아른거릴뿐인데 업친데 덥친다고 안경에 서린 김은 그 마저도 앞의 시야를 가려 완전 눈뜬 장님이 됐습니다. 그간 산행의 경험과 감 만으로 조심스레 너덜길의 산행흔적을 더듬어 찾아가는 등로는 더디고 힘들고 답답하나 어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겨우겨우 칠선봉을 넘겨 덕평봉아래 선비샘에서 목 한번 축인후 벽소령으로 향하는데 내 뒤를 잘도 따라 오던 숲님이 어느순간 보이질 않습니다.


앗찔한 생각에 더럭 겁이 남니다. "너른숲님~" 목 터저라 불러도 대답이 없어 숲님을 찾으러 뒤돌아 올라서는데 5m 쯤 거리에 어른대는 불빛이 보입니다. 이내 다가온 숲님은 내가 부르는 소리는 듣지 못했고 돌풍에 날린 모자를 주워 오느랴 나와 떨어졌는데 기다려주지도 않고 냅따 앞으로 달아나 정작 본인은 더 겁이 났답니다. 이후 두어걸음만 떨어저도 앞사람이 보이질 않는 지독스런 운무에 꼭 붙어서 걷다시피 산행을 이어가는데 지리의 주능선 등로는 완전 또랑으로 변하여 물길인지 사람 다니는 길인지 분간을 할수 없습니다. 어느덧 벽소령 산장의 불빛이 다가섭니다. 빗줄기는 완전 소낙비요 바람은 거센 돌풍입니다. 오후2시부터 거의 12시간 꼬박 비를 맞으며 우중산행을 이어오느랴 몸과 마음이 지쳐 태극 무박종주의 의지가 흐려집니다.

더 이상 진행하단 저체온증에 목숨이 위태로울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숲님께 산행포기 의사를 밝히고 동의를 구하니 숲님도 내심 기다렸다는 듯 선뜻 응해줍니다. 벽소령 산장 출입문에 줄줄이 흐르는 베낭과 겉옷을 벗어놓고 안으로 들어서니 안온한 기온에 일순 긴장감이 풀리며 비로소 피로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늦은시각에 들어서는 우릴 맞아준 관리공단 직원은 매몰찹니다. 금지된 야간 산행을 했으니 벌금 50만원을 물리겠답니다. 30여분간 실랑이를 합니다. 그러나 공단직원은 요지부동입니다. 구수한 숭늉같은... 평생을 먹어두 먹어두 물리지 않는 묵은 김치같은... 찜질방에 걸어놓은 쑥대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쑥 향기같은... 그래서 생전 화 한번 낼것 같지 않던 숲님이 순간 더럭 화를 내며 한마디 쏟아냄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그만큼 사정하면 좀 봐줘야 하는거 아녀~ 정~ 그려면 나 하나만 끊어주소~" 둘 다 주민등록증을 압수당합니다. 관리공단 직원이 말합니다. "낼 아침 7시에 한명만 발부할지 두명 다 발부 할지 그때가서 결정하겠습니다" 방 배정을 받고 소변을 보려 밖으로 나섰는데 어찌나 바람이 센지 바람을 안고 도저히 화장실까지 걸을수가 없습니다. 양심에 꺼리나 할수 있나요 벽소령 산장 벽을 붙잡고 그대로 시원하게 갈겨버리고 들어와 비닐봉투에 넣어둔 그나마 온전한 반바지로 흠뻑 젖은 팬티와 갈아입고 모포속에 들어가니 그때까지 이빨이 다그닥 다그닥 떨리던 추위가 가시기 시작하며 어느덧 혼곤한 잠의 수령에 빠저듭니다.


새벽녁 어수선함에 잠이 깹니다. 모두들 떠날 준비들을 하나 떠나지 못합니다. 그때까지도 그치지 않은 비는 안개비를 뿌려대며 나그네 가는길을 훼방함니다. 7시가 되서야 관리공단 직원과 마주함니다. "다시는 야간 산행 하지 마세요" 다행스럽게 훈방조치와 함께 묶인 족쇄가 풀립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벽소령 산장을 나섭니다. 벽소령 산장을 나와 얼마쯤 시간이 흐르자 안개비가 그치고 안개 또한 벗어지며 하늘이 열립니다.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 그 하늘아래 초목의 싱그러움과 피어오른 철쭉의 향연. 저 산정 아래 곳곳에 만들어졋다 일순 사라졋다 다시 나타나는 운무의 장관. 아~!!!!! 지리는 천변만변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펼처놓으며 가는 내내 우릴 즐겁게 합니다. 어제의 산행이 지옥이라면 오늘 산행은 천국이요 극락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던가 ? 어제의 그 고통과 괴롬은 마치 몇십년전 일인듯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간밤 단잠에 힘을 얻은 우린 단숨에 형제봉을 넘겨 연하천 대피소에 들어가 도시락 한개를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습니다. 식수를 보충하여 명선봉 토끼봉을 가볍게 넘기고 화개재에서 잠시 한숨을 돌립니다. 삼도봉에 올라섭니다. 삼도봉에서 뻗어 내려간 불무장등과 노고단에서 시작하여 질등에서 주춤 내려 앉았다 불끈 치켜올린 왕시리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서고 저멀리 영신봉에서 부터 이어지는 남부능선을 넘지 못한 운무와 조화를 이룬 연릉이 너무 환상적이라 일순 정신을 놓습니다. 임걸령을 거처 노고단에 올라서자 덕배님과 별땅이가 직장에 연가를 내고 태극종주에 나선 우릴 지원하러 먹을것 마실것 잔뜩 싸들고 벌써 성삼재에 도착했노라 반가운 핸폰의 울림을 통해 소식을 전함니다.

노고단을 뒤로 하고 성삼재로 향하는 시멘트 도로는 장시간 산행에 지친 무릅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그 고통마저 즐거움일 수 있는건 그 아래 성삼재엔 다정한 우리의 산우 땅이와 덕배의 기다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성삼재가 보입니다. 땅에 바짝 달라붙어 아장아장 걸어오는 귀여운 친구 땅이가 보입니다. 손을 내밉니다. 그손을 뿌리치며 안아 달라하자 내품에 한웅큼 덥썩 안겨옵니다. 뭔가를 바쁘게 요리하던 덕배가 흐뭇한 미소로 반겨주며 다가서더니 덥썩 안아주는데 떡대가 큰 만큼 내몸은 그냥 그대로 빨려가 냉큼 안겨버립니다. 식탁이 화려함니다. 오뎅국물이 있고 서럽도록 맛보고 싶던 라면이 끓고 있으며 갖가지 야채와 함께 알맞게 익은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있으며 사내놈들 솜씨 치곤 제대로 알맞게 퍼진 흰 쌀밥이 있습니다.


우선 캔맥주 한잔 들이켜 갈증을 없애곤 정신없이 이것 저것 굶주린 내장을 채웁니다. 마음도 풍요롭고 몸도 나른나른 기분 좋습니다. 아~ 산우의 깊은 정이 느껴지는 성삼재의 황금같이 소중한 시간이 살같이 지나고 다시 고난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아내가 챙겨 보내준 등산화와 양말로 가라신고 반팔 반바지에 처음으로 무릅보호대까지 착용합니다. 땅이와 덕배는 짐을 정리하여 정령치에서 기다리겠답니다. 잠시 이별인데도 만복대로 향하는 들머리까지 별땅이의 근심어린 눈길이 진득하게 따라붙어옵니다. 걱정말고 어여 들어가라 하곤 서둘러 숲속으로 달아납니다. 지금까지 지리주능선의 지겹던 너덜길이 시원한 숲터널의 육산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숲님 걷는 발걸음이 힘을 잃었습니다.

오른쪽 무릅의 통증을 못견뎌 진통제 3알을 삼키고 파스를 붙여봐도 그 고통은 갈수록 더해가나 봅니다. 고리봉을 넘어 묘봉치에 이르자 숲님 포기의사를 밝힙니다. 나 하나라도 완주하라며 먼저 가라 등 떠밉니다. 가다가 물 한병만 만복대에다 놓아 달람니다.안타까운 마음과 안쓰러움에 뒤돌아 보고 올라서다 뒤돌아보니 숲님 손을 흔들어 주며 어여 가랍니다. 단숨에 만복대를 넘어 정령치로 내려섭니다. 땅이와 덕배가 놀라 처다봅니다. 예상보다 빨리와서 놀라고 혼자와서 더 놀라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물만 보충후 바래봉으로 향함니다. 땅이와 덕배의 근심어린 말이 뒷전에서 들려옵니다.

"너무 서둘지 말고 늦더라도 인월가서 기다릴테니 몸이나 조심해 잉~" 그런 친구가 고맙고 함께 못가는 숲님이 안타까워 순간 눈물이 스며 납니다. 그 모습 감추려 마냥 내달려 숲으로 숨어듭니다. 작년 이맘때 14시간대 성삼재에서 천왕봉 찍고 돌아오는 지리산 왕복종주가 생각남니다. 그때 지리의 주능선 너덜길에 넌더리가 나 치를 떨었는데 고리봉 세걸산 세동치 부운치까지 등로는 비록 오름과 내림의 부침이 심한 편이나 푹신한 육산이라 달리는 내내 무릅과 발목이 편안함니다. 팔랑치로 들어섭니다. 천상화원이 펼쳐짐니다. 아름다운 꽃길를 달리는 기분이 환희 그 자체입니다.


저멀리 바래봉이 코앞인듯 아주 가까워 보이는건 내몸은 아직도 힘이 남아 돌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바래봉에 섭니다. 저멀리 천왕봉에서 부터 방금 밟아온 서부능선이 발아래 펼처짐니다. 태극종주 대장정의 종착 꼭지점에 올라서고 보니 함께 이 감격을 누려보고자 지난밤 죽을 고생을 겪은 숲님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솟구칩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서러워서 감정을 추슬리기 어렵습니다. 겨우 진정을 하고 땅이에게 전화로 바래봉 등정 소식을 알린후 덕두산으로 향함니다. 덕두산에 이른후 구인월로 향하는 내림길을 정신없이 내달림니다. 한없이 고도를 낯추던 등로는 계곡으로 이어지다 임도가 나오고 임도 끝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구인월 마을회관에 도착하며 태극종주의 대장정에 막을 내림니다. 마을회관 옥상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후 시계를 보니 정각 19:00 임니다. 성삼재에서 인월까지 정확히 5시간 45분만에 도착입니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주저앉아 있으니 땅이의 전화가 오고 잠시후 나를 데리고 간곳은 만찬이 차려진 전원의 식탁입니다. 나를 기다리며 채취 했다는 취나물,산드룹,미나리,씀바귀등등과 함께 삼겹살이 구워지고 쇠주 맥주 소곡주가 곁들인 저녁만찬은 내 생애 최고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못난 산우를 위해 직장에 연가까지 내고 찾아와 큰힘을 실어준 덕배와 땅이에게 감사드린다. 환자와의 진료 약속을 저버릴수 없어 오지 못한 안타까움에 이틀 계속 마음 졸이며 우리의 이동상황을 시시각각 산우들에게 생중계한 재넘이 고맙고 첫날 쏟아지는 빗줄기와 거센바람이 걱정스러워 한숨 자지 못하고 꼬박 밤을 세웠다는 부산 뫼오름 산악회 쥔장 창우형님 죄송스럽고 감사드립니다.

새벽 2시 성삼재 도착 예정에 맞춰 출발하려다 도중 중단된 산행에 못 오신 신 선생님 그 마음만으로도 저희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끝까지 저에대한 염려와 걱정을 저의 아내와 함께한 하늘채님과 시간여행님. 시시각각 격려 메세지 날려준 파라다이스님. 썬님.들뢰즈님.감사합니다. 그외 전화입력이 안돼 알수 없는 저의 산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산행중 핸드폰은 방해가 되어 꺼 놓고 있어 나중에 확인을 했습니다. 대략 격려 메세지가 60통 입력이 되어 있는데 누구신지 일일이 확인을 못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와 이해를 구합니다. 님들의 격려와 사랑으로 태극종주를 끝낼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산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산에서 건강을.....산찾사-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