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형 시 의원 평양방문기](1)방문 첫날 만감 교차
6.15 축전 남측 대표단에 이렇게 참여하게 되다
옥류관에서. 가운데가 필자. |
남측 300명중에는 각 단체별로 인원을 확정하고 지역대표로는 각 시도별로 3-4명씩 배정했다. 지역에서 선발된 필자는 대전지역 615공동실천 남측위원회 대전본부 추천을 받았다.
평양에 도착 - 첫 느낌
인천공항에서 평양까지 비행시간이 60분도 채 안됐다. 60여 년간 분단되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백령도 인근 상공을 지나 북한 서해 상공에서 확연히 보이는 북녘 땅의 야산들은 붉은 황토색으로 민둥산이 많았다.
평양공항에 도착하여 트랩에서 바라보는 ‘평양’이라는 글자와 김일성 주석 사진이 붙어있는 공항건물을 보는 순간, 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찡해서 한동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개막식에서 지관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서는 도로는 미류나무 종류가 거목으로 자라 풍요롭기까지 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한산한 거리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대형 간판이 즐비하고, 시민들의 차림새는 아직도 어둡기만 해서 좀 더 개방을 하고 경제 개선이 시급함이 느껴졌다.
축전 일정 변경
이번 축전의 주요일정은 3박4일 간이었다. 14일 오전 9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서해 직항로를 이용, 평양에 도착한 후 오후에 행사 개막식을 시작했다. 15일 오전에는 6.15 공동선언발표 7돌 기념 민족단합대회와 환영연회를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한 뒤 만경 대학생 소년궁전 등 평양 일원을 둘러보기로 하였는데, 북측이 갑자기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단상에 앉는 대표자들) 포함을 거부하면서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대회 마지막 날인 16일에도 평양시내 주요 시설을 돌아보고 오후에 태권도전당에서 폐막식을 갖고, 행사를 끝내려 했으나 이마저도 북측의 한나라당 거부 문제로 파행을 겪었다. 따라서 평양음악대학이나 만경대만을 돌아보고 종일 협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행사 마지막날 전날인 16일 밤 9시경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발 양보, 행사를 불참하는 것으로 결정한 후에, 17일 오전에 가까스로 공식행사인 단합대회를 열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 행사는 제21차 장관급회담에서 쌀 차관 제공을 놓고 공방을 벌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6.15행사를 주최하는 북측이 남측 당국의 참가문제를 협의하지 않아 결국 우리 당국자 대표도 참가하지 못했다.
북한측 대표단이나 주민들의 축전에 임하는 자세
본 행사인 민족단합대회에서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주석단 배제 문제를 아무런 통보없이 일방적이었으나, 마지막 날에 가까스로 열린 본 행사에서는 6.15가 폐쇄와 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게 했으며 민족끼리의 이해와 단합을 하자는 공존, 공영의 의지를 보여줬다.
일반 주민들의 접촉이 어려웠고 행사장에 참석한 평양시민들도 동원된 사람들이었기에 대화는 어려웠다. 다만 북쪽 대표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행사를 자주 열어 북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자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의 성과와 아쉬운 점
6.15 축전 개막식 환영인파. |
합의가 되지 않는 동안 중식과 석식을 밤 9시가 다 될 때까지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2천여명의 평양시민들의 표정에서 상당한 미안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민족화합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북의 단편적인 시각과 수직적인 체제로 인해 대회사 등 연설 문구 합의에 오랫동안 진통이 있었고, 남쪽에서도 행사 진행 과정 중에 남남 갈등 장면을 몇 차례 보여줘 통일운동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함을 느꼈다.
조 의원 손 전화 011-428-0815.
(다음편은 평양일원에 대한 느낌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하늘에서 본 평양시내 인근 농촌. 민둥산이 많이 보였다. |
평양시내. |
대동강. |
한가하게 걸어가는 평양시민. |
만수대 예술단 공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