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후 돌아온 김양 가족..."고통은 계속된다"

"관심은 고맙지만 안될 것 같습니다. 또다시 제 딸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피해자를 마치 외계인 보듯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한가지 일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을 수 있고‥ 어쨌든 죄송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의 김모씨(44.대전시 서구 월평동)는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승려행세를 하는 유괴범에게 끌려다니며 속칭 '앵벌이'를 당해오다 2년만에 극적으로 돌아온 초등학생 딸아이가 또 다른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짜 승려에 유괴돼 앵벌이를 했던 초등학생 김모양 가족은 사회의 편견으로 지금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일명 '가짜승려'사건은 지난달 15일 납치범 김모씨(49)가 검거되면서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왔다. 더구나 최근 유아·초등학생 유괴, 실종사건이 잇따라 시민들의 불안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터져 나온 사건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지난 2002년 1월 학원에 간다며 월평동 아파트를 나섰다가 집 앞 육교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김양(당시 11세)이 돌아온 지 꼭 한 달. 아이가 돌아온지 10여일 만에 잡힌 납치범은 현재 수감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휘말렸던 김양은 다행스럽게도 무사했고 그때의 사건도 서서히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밝고 천진했던 김양의 성격도 크게 바뀌지는 않아 가족과 이웃,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

살아있다는 확신.. 기적처럼 돌아온 아이

"아이가 사라진 날 형님(아버지 김씨)께서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7시에 귀가한 때였죠. 아이는 학원간다고 나가고 형님은 주무시고요. 그런데 그 사이 애가 없어진거예요. 그것도 집 코앞에서요. 그것 때문에 더 괴로워하시며 자책하셨어요"
◈어른들의 잘못으로 선의의 피해를 입었던 아이가 또다른 어른들의 손가락질로 가족 전체가 이사와 전학을 고려하고 있다.

2년 전 김양 실종 당시 김씨가 근무하는 (주)신호제지(대전시 대덕구 신탄진) 노동조합원들과 민주노총대전지부 관계자들은 김양을 찾기 위해 발벗고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어 모두의 애를 태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산, 강릉 등 전국고속도로 휴게소를 비롯해 공사장, 심지어 항구도시 주변 윤락가에 이르기까지 이 잡듯 뒤졌지만 김양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버지 김씨와 조합원들은 흔들림없는 믿음으로 전국의 고아원과 각종 실종자 부모 모임 등을 거치며 1%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힘든 내색 한번 없이 오히려 일에 매달리는 김씨를 생각해 요란스런 회식도 줄이고 직원들의 애경사도 조용히 치렀다.

그런 노력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돌아온 김양을 두고 직원들은 하나같이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회사 측에서는 김씨에게 가족여행을 다녀오라며 휴가를 제시하고 한 가마니 떡을 돌리며 기쁨을 나눴다. 2년 동안 지니고 다니던 전단지를 통해 얼굴을 보아온 터라 김양은 직원 모두의 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양이 돌아온 기쁨도 잠시, 모든게 제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김양과 가족들은 끝나지 않은 고통에 여전히 힘겨워 하고 있다.

이웃 시선 냉담, 학교선 따돌림도

모두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었는지 비난과 편견으로 무장한 이웃들의 소외와 험담은 더 큰 상처가 돼 김양의 가족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본인은 물론이고 딸 아이의 상처를 조심스레 다독여가는 가족들에게 이웃의 냉담함은 더욱더 깊은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들

"앵벌이했던 것이 아이 책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변 이웃이나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질이 좋지 않다, 함께 놀지 말라'거나 손가락질하며 '쟤가 그 애야" 하고 수군대는 등 편견을 갖고 대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게 되고요. '잘 돌아왔다, 다행이다'는 아니더라도 그냥 예전처럼만 대해줘도 아이가 또 한번의 상처는 받지 않을 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

지난 2년 간 김양을 찾는데 발벗고 나섰던 박성훈 노조지부장(34)과 신호제지 동료조합원들은 대화 도중 한번도 웃지 않았다. 인터뷰를 사양한 김씨를 대신해 김양에 대한 소식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였다.

"집에 와서 처음 며칠은 '엄마'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한달이 지난 지금은 그나마 학교에도 나가고 한 살 위 오빠하고도 어울리며 적응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주변에서 그것도 학교에서 친구들한테까지 또 한번의 고통을 당할 걸 생각하면 아이가 너무 안됐습니다. 이미 어른들과 사회에 한번 놀란 마음을 어떻게 해야 안정시켜줄 수 있을지.. 그나마 저희는 제3자 입장이지만.."

결국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 김씨는 김양을 전학시키기로 결심하고 집을 옮기기 위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다소 시일이 걸리게 된 상황이어서 당분간 김씨 부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게 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아이를 찾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 했고, 기적적으로 무사히 돌아와줬으니 이제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아이에게, 그것도 주변의 이웃들이 편견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행위가 아닙니까"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감싸줄 수 있는 것은 주변의 따스한 관심과 애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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