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증가 불구 인원감축 업무량 폭주

″집배원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다. 아내가 해준 따뜻한 밥 먹으며 밤 9시 뉴스를 보는 것이 집배원들의 소원이다.″

25일 오전 10시30분 둔산동 충청체신청 앞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해야 할 집배원 복장의 두 명이 거리로 나서 시민들에게 집배원의 노동 실태를 알리고 있었다.

전국집배원노동자협의회(이하 집노협) 박석기 위원장(전 서광주 우체국 집배원)과 서울 모 우체국의 김모씨(익명을 요구한 김씨는 현재 서울의 한 우체국에서 근무 중이며 월차 휴가를 내고 전국 순회 집회 중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서광주 우체국에서 해고당한 박석기 위원장과 김씨는 집배원들의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2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집배원들은 하루 12∼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월 평균 150시간이 넘는 초과 근무를 하고 있지만 적정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96년 이후 과로로 사망한 집배원은 211명, 부상자도 1,240명이 넘는다″며 ″서울의 한 상시위탁 집배원은 자신의 업무량의 수 십 배에 달하는 등기 우편물을 대학에 다니는 딸까지 동원해 배달했지만 업무중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집배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에 대해 말했다.

근로기준법의 근로 시간은 하루 8시간, 1주 44시간으로 명시돼 있지만 집배원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이다. 지역 우체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10시 경 퇴근하는 비정상적인 근무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휴일에도 제대로 쉴 수 없어 업무 과중과 피로누적으로 66.6%가 건강 이상을 호소하고 있고 수도권의 경우 비정규직 이직률이 50%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또, 한 달 평균 150시간에 이르는 초과 근무를 하고 있지만 75시간까지만 수당 지급이 인정돼 노동에 따른 대가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나 미니버스를 타고 가가호호 우편물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촌각을 다투는 우편물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날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업무는 우편물 배달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편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복귀 해 다음날 배송 할 것들을 분류하는 작업까지 이들의 몫이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등 정보화로 인해 우편물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최근 5년간 우편물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연간 우편물량은 97년 45억8,300만 통이던 것이 2001년에는 64억2,000만 통으로 40.1%가 증가했고 소포물량은 2,270만건에서 4,289만건으로 무려 88.9%나 늘어났다.
2천만 가입자를 돌파한 이동통신 요금 고지서는 우편물 증가세를 부추겼고, 인터넷 및 케이블 방송을 통한 홈쇼핑이 각광을 받으며 소포 물량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IMF 이후 구조조정 바람으로 집배원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정부는 이 자리를 3,000여명의 비정규직으로 대체했다. 전국적으로 상시위탁, 대무, 재택, 아르바이트로 분류돼 활동하는 비정규직 집배원의 숫자는 4,000여명.

대전·충남북 관할인 충청체신청의 1,800여 근무자 중 정규직과 별정직을 제외한 약 500명이 상시위탁, 재택 등 비정규직 근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집노협은 비정규직 집배원들은 정규직과 똑 같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등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비정규직 근무자들은 정규직 근무자들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낮은 임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각종 수당,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항상 부당 해고와 임금 체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비정규직 집배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이 500억원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집노협은 지난 7개월 동안 천막 농성과 전국 순회 시위를 벌이면서 인력 보강을 통한 장시간 노동 철폐와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체불 임금 지급 등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청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박 위원장은 광주지법에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임금 청구의 소′를 낸 상태다.

하지만 충청 체신청은 집노협의 주장을 이해는 하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체제 개편이 없는 이상 불가능 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충청 체신청 관계자는 ″집노협의 주장에 공감한다. 지역마다 장기 근무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 직장이나 공무원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전국 동시 인력 확충을 하지 않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정규직, 비 정규직 할 것 없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모두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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