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 다 빠져
아버지 전국 돌며 막노동…수술비 막막

1년째 백혈병과 싸우는 홍수미양



을지 대학병원 1018호실.
홍수미(5) 양을 만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면회제한이라 쓰여진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 소독약이 뿌려진 걸레에 신발을 깨끗이 소독해야 했다. 또 바로 옆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담당 간호사의 꼼꼼한 확인을 받을 뒤에야 수미를 만날 수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수미의 병실 침대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두꺼운 비닐 막이 온실처럼 쳐져 있었다. 백혈병 환자에게 치명적인 외부 병원균을 차단하기 위해 쳐진 것이 분명하지만 온실로 생각된 것은 병마로부터 수미를 보호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TV보며 학교 간 언니 기다려

올해 만 5살이 되는 수미는 지난해 7월 '악성 리프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아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일주일에서 열흘간 입원해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지만 지난해 7월부터 계속되는 항암 치료로 단 한 올의 머리칼도 남지 않았고 의지력도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양명선(36)씨에게 더 안쓰러운 것은 평소 명랑하고 개구쟁이로 소문난 막내 수미가 부쩍 말수가 적어지고 우울해 한다는 것이다.

양씨는 "참 똑똑한 아이예요. 아직 글을 쓰고 읽을 줄 모르지만 동화책을 서너번만 읽어주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구까지 외울 정도죠. 하지만 유치원에 다니면서 글도 배우고 아이들과 어울려야 할 나이이지만 백혈병 때문에 갈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혈병에 걸리기 전 공주시 계룡면 시골에 살 때,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수미의 하루 일과였다. 까무잡잡한 얼굴 때문에 동네에서 '깜둥이'로 놀림을 받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창백한 얼굴에 웃음까지 잃어 5살 어린아이의 천진함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는 집에서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방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수미의 일과가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올해 공주시내 외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해 새로 사귄 친구들도 없어 항상 심심한 하루를 보낸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간호사 언니에게 졸라 받은 주사기를 갖고 병간호를 위해 학교에 나가지 않는 언니 아름(12)이와 함께 병원 놀이를 하는 것이 수미의 새로운 취미. 팔에 항상 꽂혀 있는 링거 주사와 똑같이 다리에도 바늘 없는 주사를 놓는 시늉을 하는 손놀림이 꽤 능숙해 더욱 안쓰러웠다.
이를 본 양씨의 눈에 또 이슬이 맺혔다.

이번에 수미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지난달 29일. 항암치료와 정기진단을 받고 다음주 월요일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더 병원에 다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담당의사인 소아과 최규철 부장은 "수미의 경우는 림프성 백혈병 중 그나마 완치의 가능성이 높은 타입 1입니다. 앞으로 1년에서 2년 정도 정기적인 항암치료를 받으면 완치할 가능성이 70%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병세 악화 다리 수술해야 할 판

수미는 좋아하는 강아지와 뛰어 노는 일도 할 수 없고 가장 좋아하는 양념 통닭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외부와의 접촉과 격렬한 운동, 맵고 짠 음식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수미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 수시로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할 경우도 있지만 수미 가족에게 가장 힘든 일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항암제 투여를 위해 한 달에 한번씩 병원을 찾을 때마다 치료비와 입원비를 포함해 100만원이 넘게 소요된다. 또 매일 먹어야 하는 치료제도 수 십만원을 호가해 치료비만으로 한달 평균 200만원을 훌쩍 넘긴다. 아버지 홍경오(38)씨가 전국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일로 수술비를 마련하고 있지만 수미의 병원비를 충당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지난해까지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서 1년 60만원짜리 허름한 집에서 세를 얻어 살았지만 올해 외가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세도 문제지만 수미를 포함해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머니 양씨마저 당장 오른쪽 허벅지를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오른쪽 허벅지를 다쳤지만 수미 병간호로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병세를 악화시켜 지금은 왼쪽에 비해 두배 이상 부어 오를 정도로 악화됐다.
을지 대학병원에서는 더 악화되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지만 양씨는 자신이 수술을 하게 되면 수미의 병간호를 할 수 없다며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내심은 수미의 수술비도 충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수미 담당 간호사 이선희씨는 "지금 수술을 하지 못하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수미 병간호를 위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병원에서 무료 간병인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며 양씨의 병세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아빠얼굴 보고 싶어요″

언니와 함께 병원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수미는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 만에야 "유치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함께 공놀이도 하고 동물원으로 소풍도 가고 싶어요"라며 엄마의 등뒤에 숨어 수줍게 대답했다. 또 어린이날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아빠 얼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한창 자연을 벗삼아 뛰어 놀아야 할 천진난만한 수미. 하지만 병실에서 어린이날을 보내야 하는 수미에게서는 어린아이의 천진함도 어리광도 볼 수 없어 가슴이 아팠다.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다니는 '깜둥이 수미'의 모습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계좌번호 : 우체국 310623-02-026494 (예금주 : 양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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