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과도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신행정수도건설 위헌결정, 후속대책을 마련해 오던 그간의 과정도 안타까움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오늘 하루는 정말 길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새벽기차에 몸을 싣고 출발하자마자 한나라당 일부의원들이 법사위 회의실을 점거하고 출입문을 봉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도 무시하는 몰상식한 모습에 절망감마저 들었습니다.

당혹스런 마음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다 본관 앞에 장사진을 친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마주친 저는 그들에게 “여기는 국회이지 서울시의회가 아니다. 서울시의회로 돌아가라”고 하였고 국회 경위들에게 이들을 해산시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충청권 의원 긴급 대책회의, 원내 대표단회의, 법사위 회의실과 사회를 보게 될 국회 부의장실을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오르내렸습니다.

두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마저 연기하며 한나라당 의총을 마음 졸이고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표결을 통해 결정한 당론을 뒤집으면서까지 4월 임시국회로 넘기자는 의사일정 연기논의를 다시 꺼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남은 방법은 우리당 지도부의 결심과 직권상정 외에는 길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직권상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본회의에서 상정된 백 아홉 개의 법안을 모두 처리한 후 우리는 또 다시 회의장을 빠져나간 한나라당의 의총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약속한 30분이 경과되면서 김덕규 부의장이 급기야 직권상정을 하였고 임시국회 회기를 불과 두 시간도 안 남긴 밤 열시가 넘어서야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도 합의 뒤집기, 불법점거, 고성과 폭력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암담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인내했고 온갖 성의를 다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당 국회 신행정수도특위 의원들은 원안에서 너무나 후퇴해버린 ꡐ행정중심 복합도시ꡑ라는 합의안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고, 이미 합의한 법안내용을 두고도 수 차례의 내부논란을 거듭하는 과정까지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기까지 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 오늘의 결실은 균형발전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승리입니다. 특히 위헌결정에도 좌절함 없이 튼튼한 공조 속에 함께 싸워 온 충청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시대정신에 따라 끝까지 당론을 따르고 마지막 의결까지 자리를 지켜준 수도권 출신의 열린우리당 동료의원들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특별법 통과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은 연기공주지역 주민이나 충청권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는 수도권 일극집중을 해소할 다른 길이 없어서 나온 극약처방이며 유일한 대안입니다.

오늘에 오기까지 기득권세력의 악의적인 반대와 방해도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 과밀화문제해소와 균형발전을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구체적 실현방안에 이르러서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지난 이삼년간의 우여곡절은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며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진통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발전 비전과 국토의 균형발전전략을 세우고 실현시켜가는 일은 장기적 사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통과된 법에 따라 12개 부처 49개 행정기관을 연기 공주에 이전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균형발전 목표가 달성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까지보다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균형발전전략, 국토개조의 비전에 대한 더 많은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 내고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참다운 지방화 시대를 열어가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먼저 균형발전정책에 대한 확신과 이해를 깊이 갖게된 국민들과 특히 충청인들이 앞장서서 특별법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른 지방과 수도권의 발전대책도 강구하여 전국이 골고루 잘 살수 있도록 하는 국가비전을 세우고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 또한 함께 하여야 합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세계화, 분권화, 지방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 대책으로 일관하다가 이제 처음 발걸음을 내 딛게 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을 비롯한 선진 여러 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집중폐해의 극복과 분산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실질적 지방분권과 분산이라는 국가운영원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등 국가균형발전에 관한 철학을 제도화해 나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현재 일각에서 중앙정치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 논의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민주적 권리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더 가까이 이양하도록 하는 시대의 요구와 세계적 추세에 맞게 분권과 분산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헌법개정에 대한 연구와 논의 또한 본격화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제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굳은 문을 조금 열었습니다. 오늘의 이 소중한 성취를 시작으로 신행정수도건설의 완성과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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