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표주박 통신 20년 일군 김조년 교수

사랑하는 벗에게.
안녕하셨습니까? 평안하신가요? 정말 오래 간만에 문안을 드립니다. 어제는 차가운 바람에 눈발이 풀풀 날립디다. 맘이 좀 설레던걸요. 그렇게 세월이 또 흐르는구나 하는 맘이 불현듯 미간을 지나 정수리에 꽂히는 것 같은 느낌이 서늘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 해를 보낸다거나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고 호들갑을 떨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질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또 그것에 사로잡히는 맘입니다. (표주박 통신 93호 중-2006년 11월30일 발행)

20년 동안 띄워진 표주박통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조년 한남대 교수. 김 교수는 "맑은 생각이 흘러흘러 누군가의 마음 속에 싹을 틔울 것"이라고 말했다./<이츠대전>=윤기중 편집위원 제공
‘표주박 통신’은 한결같이 ‘사랑하는 벗에게’로 문을 연다. 벗들과 오랜만에 나누는 인사와 안부도 빼놓지 않는다. 오랫동안 적조했던 친구를 대하듯 설레임이 묻어나는 것도 같고,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을 연애편지 같은 달콤함도 폴폴 피어오른다. 36페이지짜리 이 편지는 두어 달 동안 묵혀두었던 소식들을 차곡차곡 담아 홀수 달 마지막 날에 기다리는 이들의 문을 두드린다.

표주박 통신...홀수달 마지막 날 기다리는 이들의 문을 두드린다

편지를 쓰는 한 남자가 있다. 두어 달에 한번씩 편지쓰기를 시작한 지 벌써 스무 해다. 일상에서 느꼈던 소소한 느낌들을 알콩달콩 써내려가기도 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을 격정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들은 학문, 혹은 시국현안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엔 짤막한 시 한편이 되어 배달되기도 한다.

김조년 교수(60.한남대 사회복지학과). 지역의 각종 현안에 실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자로 익히 알고 있었고 ‘표주박 통신’ 또한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조년 교수의 표주박 통신’(사실 김 교수는 이러한 표현을 싫어한다. 표주박 통신은 결코 김 교수 자신은 물론, 어느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었다.

첫 편지는 87년 3월...사랑하는 벗들 30여명에서 시작

그가 첫 편지를 쓴 것이 1987년 3월 31일이라니, 오는 3월 31일면 꼭 20년이 된다. 1호 발간을 시작으로 최근 1월 31일 94호의 통신이 띄워졌다. ‘사랑하는 벗들’도 30여명에서 어느새 2,500여명을 훌쩍 넘겼다. 김 교수가 띄우는 편지의 제목은 ‘표주박 통신’이다.

“말이 발간이지, 사실 졸업생들에게 쓴 편지가 시작이었습니다. 지난 1986년, 당시 시위가 심했는데, 정말 수업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죠. 학생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썼고 그 글이 학교신문에 연재됐는데, 받아보길 원하는 강의를 들었던 졸업생들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신문만 달랑 보내기도 뭣하고 해서 내가 왜 이런 글을 보내는가에 대한 이유를 써서 보냈는데, 이것이 첫 통신이었죠.”

94호까지 통신 띄워지는 사이 2천500명을 훌쩍 넘어

그러니깐 첫 통신은 타자로 친 다음 복사해서 봉투에 담은 2장짜리 편지였던 셈이다. 차츰 편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쓰고 싶은 글도 늘어나면서 책으로 엮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이라고 해서 두툼한 겉표지가 있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것은 아니다. 그저 읽는 이들이 넘겨보기 쉽게 A4용지 반만한 크기의 복사본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한 장이라도 추가되면 우편료가 올라가는 마지노선 ‘36쪽’을 사수하는 표주박 통신인데, 겉표지 한 장 때문에 편지의 내용을 줄일 순 없는 일이다. 어떤 중학생이 말했듯, 껍데기는 없고 알맹이만 있는 책이 됐다.

“통신 수신자는 저에게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대부분이고요, 그 외에 학교나 군대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서 활동하며 만난 지인들과 알음알음 소개를 받고 통신을 신청한 이들입니다. 1,100여명은 우편으로, 나머지 1,400~1,500여명은 이메일로 받고 있지요.”



옹달샘에 있는 표주박은 누구나 떠 마실수 있는 도구

그런데 왜 하필 ‘표주박’일까?
“제가 시골출신인데, 어릴 적,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목이 마를 때면 제일 반가운 것이 옹달샘입니다. 그때 떠 마시는 것이 표주박인데, 표주박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맑은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도구죠. 맑은 생각과 삶을 담은 이 표주박 통신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흐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맑아야죠.”

표주박 통신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원고청탁’과 ‘강요’다. 절대 누군가에게 글을 써 달라 부탁하지 않고, 다른 곳에 실린 글 역시 통신에 올리지 않는다. 그저 이 통신만을 위한 글들이 물 흐르듯 잔잔하게 흐르고 있으면 족한 것이다.

"이 곳에서는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 흘러가듯..."

청탁을 받고, ‘글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그렇게 나온 글은 이미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래서 표주박 통신엔 특집도 없다. 편집자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지나치게 전달될 우려가 있고, 의도된 기획은 일종의 인위성, 강요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저를 비롯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일제, 자유당 시절, 그리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너무 강요된 삶에 길들여졌습니다. 민주주의는 규칙이나 제도, 권위적 힘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성숙된 인격, 나 스스로의 의지에서 비로소 구현되는 것이죠. 이곳에선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노자사상처럼 무위(無爲)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것.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함석헌 선생님을 참 좋아 합니다"

김조년 교수의 연구실엔 유독 씨알 함석헌 선생과 관련된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실제로 현재 함석헌 기념사업회 감사,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씨알사상연구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제가 함 선생님을 참 좋아합니다. 고등학생 때 함 선생님의 글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읽곤 했었습니다. 1965년, 그러니깐 제가 19살 때 당시 한일회담이 굴욕외교라며 회담반대운동이 전국적으로 강하게 일었고 함 선생님은 동아일보에 졸속외교에 반대한다는 글을 싣고 단식을 시작하셨죠. 그 글과 기사를 보고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침 기사에 함 선생님 주소가 있어 편지를 썼죠. 그런데 답장이 온 겁니다. 그때의 그 감동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연애편지를 받으면 그럴까요? 그리고 내가 또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고 그렇게 교류가 됐습니다. 처음으로 받았던 엽서를 이번 20주년 기념 책에 넣었습니다.”

씨알혁명, 즉 인간과 사회혁명을 꿈꿨던 함 선생에 대해서는 유독 할 말이 많은 김 교수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함 선생님이 오신 적이 있었는데, 굳이 크리스마스 전에는 한국에 가셔야 한다는 겁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집 주변 아이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는데, 올해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이순 넘은 노 교수, 함석헌을 이야기 하다 눈물을 훔쳤다

마음을 다잡아도 자꾸만 울컥해지는 모양이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함 선생님이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에 동네 아이들을 만나곤 하셨는데, 모든 아이들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눈을 마주치셨대요. 그런데 그 중에 한 놈이라도 빠져서는 안 된답니다. 크게 될 놈이 행여 마음의 상처로 엉뚱하게 나갈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그 큰 가르침을 제가 잘하지 못하고 있어요. 모든 학생들한테 똑같은 정성을 부어야 하는데…, 부끄럽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이순(耳順)의 노교수,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내들고 눈물을 훔쳐내기 바쁘다.

요즘 김 교수는 틈나는 대로 표주박 통신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발간된 통신을 엮은 책을 출간하고 평화와 생명을 주제로 한 특강도 구상중이다.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누고 작음 음악회도 열어 표주박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이 통신을 매개체로 진행되고 있는 고전강좌와 보름달맞이, 책읽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나로 묶을 법인체도 만들어볼 요량이다. 그리하여 통신 수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과 함께 이 ‘고급스런’ 프로그램을 함께 누리고 싶은 소망이다.

나의 생각 표주박을 타고 흘러흘러 씨앗을 틔우고..."

“서양의 항해하는 사람들이 현재 위치나 물의 흐름을 알기 위해 사용했던 유리병 우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별한 수신자도 없이 떠다니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죠. 또 이와 비슷한 것으로 예전에 시골사람들은 시를 써서 물에 띄워 보내기도 했고, 연에 생각을 써서 날려 보내기도 했지요. 나의 맑은 삶과 생각이 이 표주박을 타고 흘러 흘러 누군가의 속에서 씨앗을 틔우고, 그 누군가의 속에서 싹을 틔운 맑은 삶과 생각은 또 다른 이의 씨앗을 틔울 겁니다.” 

❚김조년 교수는 69년 한남대 성문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Goettingen에 있는 Georg August Universitaet에서 사회학,교육학,정치학 공부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창립위원장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또 한남대 교수협의회 회장, 한남대 사회과학대학장, 인돈학술원장을 지냈다. 현재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으며 함석헌 기념사업회 감사, 대전 민들레 의료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격월간 ‘씨의 소리’ 편집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등으로 참여하고있다. 

김 교수는 핸드폰이 없다. 연구실 전화 (042) 629-7310.
표주박 통신 홈페이지 http://pyojubak.ha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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