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검정고시 앞두고 '주경야독'에 구슬땀

봄맞이가 한창인 요즘, 대학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하는 학생들과 달리 밤 늦은 시각까지 불을 밝히고 배움에 열심인 이들이 있다. 바로 며칠 앞으로 다가온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야학의 늦깍이 학생들이다.
◈ "예전엔 배우고 싶어도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어."라며 열심이다.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우리 주변에서 야학을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탓에 '아직도 야학이 있나' 하고 되묻는 이들도 있지만 현재 대전에는 성은야학(중구 대흥동), 대전향토야학(서구 도마2동), 제일야학(동구 용전동), 한마음야학(중구 대흥동), 한밭향토야학(동구 신흥동) 등 5개의 야학이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동구 용전동 고속버스 터미널 뒤편에 위치한 '제일야학'(교장 박상도)은 30년간 그 뿌리를 이어 내려오고 있는 야학의 원조격. 주말을 제외한 평일 저녁 6시 40분부터 10시 10분까지가 운영시간이다.

간판을 내걸지 않았더라면 버려진 집인줄 알고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어둡고 허름한조립식 건물에 초·중·고등부 교실과 교무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제일야학은 며칠 뒤에 있을 검정고시를 앞두고 분주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6시가 넘어서자 하나 둘씩 학생들이 도착한다. 하루종일 집안일이나 장사 등 생업에 매달려 지친 표정이 역력하지만 교실을 들어서는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아이고, 아직 시작 안했죠? 차가 막혀서요. 호호"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는 40-50대 아주머니들은 대개가 중등부학생이다. 일찌감치 가족들 밥상을 차려주고 서둘러 준비해도 도착하고 나면 간신히 지각을 면한다. 초등부생들은 대개 손자 손녀까지 서넛은 둔 60-70대 할머니들. 여기에 학교가 싫어 배움을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한 17~25살의 학생들이 고등부를 이뤄 각자의 반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된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코앞에 두고 기출문제 풀이에 한창이고, 초등부는 어느새 억 단위 숫자 세는 법을 배웠는지 자랑스럽게 큰소리로 세기에 여념이 없다. 생긴 지 3년에 접어든 초등부는 시험을 보기에는 아직 실력이 모자라 주로 기초수학과 한글위주 수업이 이루어진다.

"예전엔 배우고 싶어도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어. 그때 못 배운 것이 한이 되고 자식들 키우려니 앞만 보고 살다가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공부하기도 힘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김종순씨(75)는 초등부의 왕 고참. 초등부가 생기기 전부터 야학에 발을 들여놓은 김씨는 초등부를 꾸리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던 장본인인 동시에 한번도 결석한 적 없는 모범생으로 교사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하다.

가게를 비울 수 없어 한 달에 10일 정도밖에 나오지 못하는 박정순씨(67)도 배우려는 열의만큼은 남들 못지 않다.

"장사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날을 할애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거리 곳곳의 간판도 자신 있게 읽을 수 있고 책도 가끔씩 읽는다"며 사는 게 이렇게 편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배움의 시기를 놓쳐 검정고시를 목표로 공부하는 이들도 상당수. 5일 치르는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임섭진씨(23) 역시 신학대학에 가는 꿈을 키우며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임씨는 "야학에 와서 새롭게 사는 법을 배웠고 학교 다닐 때 억지로 공부할 때와는 달리 공부에 대한 열정이 두 배"라며 이번 시험에서는 꼭 붙으리라 자신한다.

이처럼 야학 학생들은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데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난해서'가 아니라 '학교가 싫어서' 공부와 담을 쌓은 청소년들은 어른들과 어울리며 공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비뚤어나가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야학교사들이 부모님과 연락을 취해 바른 길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열심인 학생들.

야학 운영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은 교사 모집. 교사나 학생모집을 위한 홍보 역시 열악한 재정탓에 한계가 있어 입 소문이나 친분관계를 통해 모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교사들의 일주일 평균 4~5시간의 수업과 주말에 보강수업까지 하면 개인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심이슬 교감(25)은 "흔히 봉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봉사라고 하기엔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해야하는 일이 너무 많아 오래 못한다"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처음에는 부모님 같은 분들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려고 하니 쑥스러워 견딜 수 없었는데 공부는 교과서를 통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 살아온 경험과 아량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며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전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들은 교사와 학생이 똘똘 뭉쳐 고입·고졸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는 고입 9명 고졸 5명 등 총 14명의 수험생들이 응시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무관심과 재정적인 어려움 등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더군다나 올해 말이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전시 부지가 계약이 만료돼 그때까지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지원금 700만원과 일일 찻집 수익금 등으로 운영비나 교재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이 역시 힘겨운 상태여서 교사들과 학생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시청에 건의를 해 볼 생각이지만 낙관할 수 없어서 걱정입니다. 야학을 옮기게 되더라도 위치가 멀어지면 인근지역 청소년이나 주부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 같고요. 그래도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버스 표지판의 글도 읽지 못하여 버스도 타지 못하던 할머니부터 학교가 싫어서 나온 어린 학생들까지 제일야학을 찾은 식구들은 나름의 목표를 위해 불을 밝혔다. 이제 이들이 당당히 사회로 나오려는 시험을 준비중이다.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이 곳에 모인 이들의 앞날에 더 이상의 장애가 없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