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생활가정 꾸리며 장애인 수발 헌신

◈구옥희씨는 장애인공동생활 가정을 운영하며 16년째 장애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장애인과 같이 삶을 살아가는 구옥희씨(55, 대전시 중구 선화동)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주변은 넓은 공터가 있었고 그 보다는 구씨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좋은 친구들′이라는 간판 밑에는 장애인 시설물에서 볼 수 있는 마크가 붙어 있다. 이 곳은 구씨와 남편 하두철씨(56,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중구지회장)의 가정임과 동시에 대전시 장애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11월이었다. 장애인 봉사 활동은 8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90년에는 현재 이 자리로 이사를 와 작은 쌈밥 집을 열었다. 현재 좋은 친구들이라는 간판은 당시 구씨가 식당을 운영할 때 그대로이다. 맛도 일품이었지만 장애인들에게 무료 식사 제공을 하는 등 일대에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는 장애인들이 너무 많아 일반인들이 찾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 후 2000년 남편이 두 번에 걸친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쳐 3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됐고, 그 해 11월부터는 운영하던 식당도 그만두고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고 있다.

4개의 방이 있는 이 집은 신식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장애인 위주로 수리됐다. 휠체어의 이동이 자유롭게 문턱을 없앴고 다리가 불편한 이들을 위해 침대도 마련했다. 또 문을 모두 떼어놔 손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빼 놓지 않았다.

집안 전체 장애인 위주로 바꿔

◈장애인들을 위해 집의 문턱을 없애고 문을 떼어 놨다.
지금은 지체 장애인 이덕용씨(43)가 이곳에서 2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지난주까지는 1급 장애인 김형수씨(46)가 3년 동안 구씨 부부와 함께 생활했다. 김형수씨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은 물론 손조차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김씨의 아내는 집을 나가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당시 욕창이 심한 상태여서 목숨이 위태롭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구씨 부부가 충남대 병원에 13개월간 입원을 시키고 치료를 한 뒤 상태가 호전돼 이곳으로 옮겼다.

이 곳에 있는 동안 구씨가 모든 수발을 들었다. 밥을 직접 먹여주는 것은 물론, 대소변 처리와 목욕까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구씨는 ″김형수씨가 지난주에 집으로 돌아갔어요. 군에서 제대한 아들이 직접 모시러 왔더라고요. 제 아들은 아니지만 참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 아쉽기도 했죠. 3년 동안 한 식구로 지냈는데...″라며 ″아직 젊은 김씨 아들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우려 섞인 말도 했다.

구씨의 장애인에 대한 헌신적인 활동으로 대전시로부터 7월 4일 제8회 모범 주부상 ′내조를 잘 하는 아내상′을 수상하게 됐다.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중구 지회장으로 있는 남편 하두철씨를 도와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고 장애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구씨는 ″그냥 같이 사는 거예요.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밥 먹기 불편한 사람 밥 먹도록 도와주고, 옷 입혀주고, 화장실 못 가면 시원하게 해 주고 따뜻한 얘기 한마디 건네주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의 수발을 들며 어떻게 한 집에서 살수 있냐′고 말하지만 한 가족인데요. 장애인들과 함께 뒹굴며 생활해요″라며 웃으면서 말했다.

구씨 부부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이덕용씨는 ″남의 대 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쉬운 일인가요?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 했어요. 형님도 구씨의 그런 보살핌이 편해 누님 같다고 말할 정도로 몸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한 가족으로 대해 준다″고 말했다.

한달 동안 쌀 50kg이나 소비

◈장애인 신문 발송 작업을 하는 등 하루 종일 바쁜 구씨.
김형수씨가 집으로 돌아가 구씨가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 줄어 여유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기자가 찾아간 오후 2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대전장애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장애인 신문 발송을 위한 작업으로 분주했다.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장애인들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 뒤 쉴 새도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이 끝나는 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오전에는 남편이 지회장으로 있는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중구지회 사무실의 비서 노릇을 하느라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집을 찾아 빨래, 청소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날랐다.

부엌의 밥통에는 항상 밥이 가득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구씨는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아 반찬은 별로 없어요. 평소에는 김치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 먹는 정도죠. 어제 얻어온 달걀이 서너 판 있어 오늘, 내일 오시는 분들은 계란 말이 맛을 볼 수 있겠네요″라고 활짝 웃었다. 이렇게 한달 동안 쉼터에서 소비되는 쌀의 양만 50kg이 넘는다. 적지 않은 양이다. 그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찾는다.

2년 전 운영하던 식당을 현재는 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도 ″잘 키운 아들, 딸이 생활비를 보내와 넉넉하지는 않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나눠 먹는데는 큰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위한 목욕탕 빨리 세워졌으면...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도 할 일이 있다. 하루 동안 대략 40여명이 다녀가는 그야말로 장애인들의 사랑방이다. 특히 저녁 시간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기쁜 일은 서로 알려 두 배로, 슬픈 일은 반으로 나눈다. 가끔은 술잔을 기울이며 장애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함께 잠을 청하기도 한다. 2층에 따로 구씨 부부의 잠자리가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은 아래층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한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 보람을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한참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보람은 무슨...″이라며 꺼낸 대답은 ″여기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서도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죠. 그리고,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는 선물이라며 신문지에 싼 양말 한 켤레 놓고 갈 때 코끝이 찡해지죠″라는 말로 대신했다.

구씨는 ″장애인들이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요. 비장애인들이 꺼리기도 하지만 장애인들 역시 공중 목욕탕에서의 자신의 장애를 보여주는 것이 맘이 편하지는 않죠. 대전시, 중구청과 협의 중에 있는데 빠른 시일 안에 만들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하고는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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