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려워도 명절은 명절이잖여″

◈설을 앞둔 장터 곳곳에서는 장작불이 함께 타올랐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어릴 적, 설이 다가오면 두둑한 세뱃돈과 새 옷 생각에 마냥 즐거워지곤 했다. 각종 부침개며 떡, 나물 등 평소에는 자주 해먹지 않던 음식들을 고루 맛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큰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계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설을 코앞에 둔 29일 유성 전통 장터에는 대목을 맞아 각지에서 올라온 상인과 명절 음식을 장만하러 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꽁꽁 언 도로와 한낮에도 영하 5도를 넘나드는 혹한에도 불구하고 털모자와 장갑으로 무장을 한 사람들의 열기로 시장통은 후끈했다.

생선가게 앞에는 명절 단골 메뉴인 생선전 재료를 사느라 주부들이 길게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가 명태포만 20년 뜬당게요"
살짝 얼린 동태에 칼집을 삭삭 내 눈 깜짝할 사이에 포를 떠주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솜씨 좋은 아저씨 덕에 가시없이 고소한 명태전을 먹게 됐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밤을 한 움큼 더 넣어 주신다.

공주 밤골에서 가져온 토실토실한 알밤과 빨간 대추도 인기다. 손바닥만한 바가지 하나에 3천원씩이지만 넉넉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거의 반 바가지는 넘게 한번 더 퍼담아 준다.
"내가 싸비쓰로 한번 더 드려유, 잉?"
밤을 사던 알뜰살뜰한 새댁은 그래도 서운한 지 봉지를 여미기 전에 얼른 몇 알을 더 담아 넣는다. 살짝 곱게 눈을 흘기는 아주머니지만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샥시, 다음에 또 와야돼. 알았쥬?" "그럼요, 많이 파셔요∼"
주위에 섰던 사람들까지 이들의 작은 실랑이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다.

스타킹과 내복, 양말을 파는 노점 앞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족 수와 나이, 성별을 잘 맞춰 양말을 고르는 할머니. 자세히 보니 종이에 숫자를 일일이 적어 오셨다.
"우리는 아덜이 닛, 딸이 싯, 손자 일곱에 손녀 딸 다섯이여. 알아서 좀 챙겨줘유"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두 장을 건네고서는 알록달록한 양말이 가득한 봉지를 건네 받아 소중히 가슴에 안고 가신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설날 아침 새로 신은 양말의 포실포실한 감촉에서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을 담뿍 느끼겠다.
◈허연 김을 뿜어내는 뽀얀 두부가 먹음직스럽다.

그 옆에는 유성 장에서 유명하다는 '두부아저씨'가 이제 막 자전거에 싣고 온 박스의 헝겊을 걷어낸다. 허연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며 뽀얀 두부가 속살을 드러낸다. 한 모에 3천원이라니 조금 비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다섯 판이 뚝딱 팔린다.
"왜 이렇게 빨리 팔린다냐∼ 심심허게스리∼ 껄껄껄"
두부 판 돈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찔러넣는 아저씨지만 너스레에는 흐뭇함이 잔뜩 묻어난다. 돌아가는 길에는 손녀딸에게 줄 예쁜 구두 한 켤레를 사실 듯 하다.

"아유, 저걸 후딱 팔아야 떡살이라도 좀 담글틴디 왜케 안팔린댜∼" "안팔리면 그냥 먹으문 될걸 뭔놈의 걱정도 팔자여∼"
"생각해보니께 그렇네. 이히히" "깔깔깔"
장터 곳곳에서 피워 올린 장작불의 매캐한 연기도 이날만큼은 싫지 않다. 장작 사이에 넣어 구운 고구마와 계란을 나누어 먹으면서 설에 내려올 아들며느리 자랑에 야채장수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어느덧 5시가 넘어가면서 어슴프레 어둠이 몰려온다.
얼마 남지 않은 고사리를 사러 온 주부에게 남은 도라지까지 덤으로 주어버리고 받은 천원짜리 한 장을 찬찬히 펴 앞치마 속에 소중히 집어넣는 할머니의 미소에서 이미 설은 우리 곁에 와 있는 듯 했다. 훈훈한 인심과 넉살좋은 웃음이 함께하는 이번 설이 되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