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 당원 강제납치 5일간 불법 억류
 진보정당 활동 정보 등 광범위한 수집

 사회당 충남도준비위 기자회견서 폭로


◈사회당 충남도지부준비위원회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당 천안갑지구당 소속 당원들이 공안기관에 강제 연행돼 감금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합법적인 진보정당의 당원을 공안기관이 불법적으로 연행, 감금상태로 며칠동안 밤샘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심문과정에서 진보정당 활동에 대한 공안기관의 광범위한 정보수집과 정치사찰 가능성도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사회당 충남도지부준비위원회(위원장 김용기)는 지난 10일(수)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당 천안갑지구당 소속 당원인 황문수(33·천안시 목천읍)씨가 공안기관에 강제 연행, 닷새동안 감금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영장도 없이 불법연행, 밤샘조사

사회당 충남도준비위와 황문수씨의 증언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 3일(수) 오후 8시32분경 천안시청 인근 S안경원 앞을 지나던 중 사복경찰로 보이는 한 남성으로부터 신분증 제시 요구를 받았다.
성인 남성은 신분증 확인 후, 최근 천안지역에서 발생한 사건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유사하다며 추가 확인 차 황씨에게 잠시 동행을 요구했다.
그는 황씨를 데리고 인접한 도로가에 주차된 검은색 중형 승용차 앞으로 가 지문을 채취, 무선으로 본인여부를 확인했다.

본인임이 확인되자 황씨의 뒤에서 누군가 주먹으로 목덜미를 가격, 차량 뒷좌석에 강제로 탑승시켰다. 차량 안에는 사복차림의 건장한 남성 네 명이 있었다. 그들은 차에 탑승한 황씨의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곧장 이동했다.
두시간여동안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의 지하실로 추정되는 공간. 방에는 책상 한 개와 두 개의 의자, 그리고 하나의 의자를 비추고 있는 환한 불빛이 전부였다. 외부 빛은 완전히 차단됐다. 그곳에서 황씨는 몇 시간 동안 혼자 남겨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황씨가 소지했던 핸드폰이나 시계, 지갑 등은 차량 탑승 직후 모두 빼앗겼다.

혼자 있은 시간이 하루쯤 지났을까. 공안기관의 수사관들은 별다른 질문없이 황씨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했다. 황씨가 의자 위에서 졸때면 찬물을 끼얹거나 얼음을 갖다댔다. 졸음의 고통이 극도로 밀려올 때 수사관들의 심문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사관들은 사회당 충남도지부준비위 산하 각 지구당 운영과 활동, 그리고 인적 구성 및 자금 출처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특히 당진과 서산지역에서의 황문수씨 활동 심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불법연행에 즈음해 황씨는 사회당 당진지구당 창립을 위해 지역 노동단체나 노조 대표자들과 만남을 자주 가졌다.

밤샘 심문은 황씨가 추정하기에 3일 이상 계속됐다. 7일(일) 낮 이후로는 더 이상 심문 없이 잠을 자도록 허락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또다시 두건이 얼굴에 씌어졌다. 그리고 차량으로 이송됐다.
어디에선가 차량이 잠시 정차한 뒤, 황씨는 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기진맥진한 황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차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안우체국 정문이 보였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권침해·정치사찰로 규정

사회당 충남도준비위는 이번 불법연행 사건을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 진보정당에 대한 정치사찰로 규정했다.
지난 11일(목) 사회당 충남도준비위는 “인권유린과 정치사찰, 진보정치탄압을 자행한 김대중 정권을 규탄한다”는 내용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사회당 충남도준비위는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도 없이 한 시민의 납치가 버젓이 자행됐다”며 “아무런 법적 구속 요건도 갖추지 않은 채 닷새간 지속된 심문은 국가권력의 인권유린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또한 고문과정에서 드러난 사회당 충남도지부준비위의 주요 당직자, 당원에 대한 자백 강요는 사회당에 대한 정치사찰이자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김대중 정권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당 충남도준비위는 이번 불법연행·납치감금을 자행한 공안기관으로 보안수사대나 경찰, 국가정보원 등을 지목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천안경찰서나 충남보안수사대 천안분실 관계자들은 일단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사회당 충남도준비위는 경찰과 검찰에 이번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시키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공안기관의 실체가 확실히 밝혀지면 공안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회당은 15일 오전 11시부터 충남지방경찰청 앞에서 충남도 준비위와 중앙위원회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의 집회를 가졌으며 이번 사태에 관련한 공개서한을 경찰청에 접수시켰다.


″잠 안재우고 공포상태에서 심문″

 혼자 있기 두렵고 밤이 무서워

 불법연행 당한 황문수씨 일문일답


- 현재 건강상태는

"혼자 있기가 두렵고 밤에 잠을 이루기가 무섭다. 누가 주위에서 자꾸 감시하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도 불안하다. 사회당 당원말고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피된다. 불법 연행에서 돌아온 이후 혼자 외출도 꺼리게 됐다."

- 심문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묻고 답하는 식이었다. 자술서를 쓴 것은 없었다. 분위기가 꼭 녹음을 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목소리로 짐작해서는 네 명의 수사관이 교대로 심문을 진행한 것 같았다."

- 불법연행기간 동안 고통스러웠던 점은

"구타는 없었다. 그러나 폭언 등을 쏟아놓으며 공포스런 분위기에서 심문이 이뤄졌다. 특히 잠을 재우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나 졸음에 쫓겨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진술했다."

- 심리적인 충격은 없는가

"수사관들은 사회당 충남도준비위의 활동이나 인적 구성 등에 대해 이미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내가 사적인 모임에서 말했던 것까지 수집돼 있었다. 간혹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자랑삼아 떠벌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섬뜩했다. 정치사찰이 일상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가 개인 인권과 정치활동이 보장된 민주사회인지, 정말 회의스런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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