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물 퍼내느라 잠 설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돌담.
″비만 오면 집 무너질까봐 잠을 못 자. 천장에서는 빗방울 떨어 지구 뒷담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어. 빨리 죽어야지 이꼴 저꼴 안보지″

김숙권 할머니(73·대전시 대덕구 연축동)는 사계절 중 비가 많은 여름이 제일 싫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땔감 걱정도 없겠다 왜 여름이 싫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면 절로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산밑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슬래트 지붕의 허름한 집.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손녀 네 식구가 생활하는 집은 몇 년째 손을 못 봐서인지 여기저기 수해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뒷담은 비만 오면 흙이 쓸려 내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이 불안하다. 또 집안 구석구석 천장은 지난해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곰팡이가 슬어 있어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왜 할머니가 여름을 싫어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됐다.

″말하믄 뭐혀. 비만 오면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담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지. 또 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전부 부엌으로 들어와. 장마철이면 물 퍼내기에 정신 없어″

◈지난해 장마철 누수로 인해 생긴 곰팡이를 가리키고 있는 김 할머니.
할머니의 말대로 장독대가 있는 집 뒤편은 심한 비탈이었다.
비탈과 맞닿아 있는 부엌은 구조상 처마와 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그대로 흘러 들어간다. 또 담 위로 자리잡고 있는 산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집 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언뜻 보아도 집을 덮칠 것 같은 기세였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수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집 고칠 돈도 없고 내가 워낙 나이가 많아서 어떻게 하지를 못해 그냥 이대로 살다 가야지 뭐. 저 어린것들이 고생이지 우리야 이제 살믄 얼마나 더 살 것어″

노인회관에서 돌아온 신현난 할아버지(82·대전시 대덕구 연축동)는 이내 담배를 입에 문다.

매달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 40만원은 4가족이 생활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기 때문에 울타리 설치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아들이 둘이나 있었지. 그 놈들 이라도 있었으면 집수리도 하고 그나마 사람 사는 집 같을 텐디. 전부 사업하다 망해 먹고 지금은 어디서 살아있는지도 몰러″자식들은 없느냐는 질문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TV보고 그러면 수해 입으면 어디는 얼마씩 돈도 주고 하더구만 우리같이 허구한날 비 오면 집에 물차고 담 무너져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어. 누굴 탓 하것어 내가 없이 살아 그렇지 누구 덕보기도 싫어″

할아버지는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는 듯 죄 없는 지팡이만 쳐댄다.
올 장마에도 가슴을 졸이며 손녀들과 여름을 나야하는 할아버지....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이 올 여름 장마를 겪으며 더 선명해질 것 같이 느껴졌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