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안내표지판 없어 우왕좌왕

월드컵을 맞아 많은 외국인들이 대전을 찾고 있다. 물론 월드컵이 개최되는 기간에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많은 인력이 투입돼 손님맞이에 전력을 다하겠지만 현재도 외국인들이 월드컵 경기장을 비롯해 대전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 위해 관광지를 찾고 있다.

하지만 막상 외국인 대전을 찾아와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가는 데는 어려움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표지판이 부족하고 외국인들에게 길을 안내할 만한 안내원이나 안내센터도 부족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길 안내를 받기는 어려운 게 실정이다.

이에 디트news24에서는 월드컵을 30여일 앞둔 시점에서 대전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동행 취재를 통해 외국인이 경기장을 찾아가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대전의 현실은 어떤가를 조명해 봤다. 취재에 도움을 준 이들은 선교를 위해 대전에 온 조안 모리스(21·미국 유타)씨와 주리안 에너멀(22·미국 텍사스)씨이다.

모리스씨는 한국에 온 지 1년을 넘기고 있어 한국말에 꽤 익숙한 편이지만 에너멀 씨는 온지 6개월에 불과해 아직은 능숙하지 않다.
실험취재는 지난 17일 대전역을 출발해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월드컵 경기장과 유성 숙박시설을 찾아가는 것까지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동행취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어만을 사용했다.

외국인들 길 묻자 시민들 당황

월드컵 경기장을 향한 이들의 여행은 오후 3시 대전역에서 시작됐다.
여행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월드컵 경기장 외에는 다른 목적지가 없는 이들은 역 대합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월드컵 스타디움'을 외쳤지만 대부분의 행인들은 얼굴을 가린 채 '어떻게 해'를 연발하며 당황스런 표정으로 이들을 피했다.

결국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바로 옆에 있는 안내 데스크로 인도했고 두 사람은 10여분만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전역 종합관광안내센터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4명의 근무자들이 각각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남도 관광협회, 철도청에서 파견을 나와 있었다.

영어 통역 안내요원 이영숙(32·도 관광협회)씨는 월드컵 경기장까지 가는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대전시에서 발행한 영문 월드컵 홍보자료, 여행 안내책자, 관광지도와 함께 한글로 '104번 좌석버스' '월드컵 경기장에 가려고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줬다.

이씨는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고 일반버스는 노선이 적을뿐더러 1시간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좌석버스 이용을 권합니다"라며 "하지만 대전시민들도 버스 타는 곳을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항상 메모지에 한글로 목적지와 버스 번호를 적어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교통편 안내를 받은 모리스와 에너멀씨는 대합실 옆에 딸린 화장실을 찾았다. 평소 대전에서 생활해 한국의 화장실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 12개와 대변기 8개가 있었지만 대변기 중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양변기는 1개에 불과했다.

모리스씨는 "양변기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 양변기도 너무 작고 낮아서 외국인들 체형에는 맞지 않습니다. 더러운 것은 참고 사용할 수 있지만 체형에 맞지 않는 좌변기는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소변만 간단히 해결을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외국어 표시된 노선표 전혀 없어

대합실을 나와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전역 광장에는 월드컵 경기장 방향을 가리키는 어떠한 표시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도청 쪽에서 내려오는 방향에 월드컵 경기장이 명기된 표지판이 붙어 있었지만 역 광장에서는 볼 수 없을 뿐더러 이도 지하도 공사장의 장비와 전신주, 다른 표지판들로 인해 알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역 과장에서 10여분간 서성인 뒤, 역에서 나온 사람들을 따라 광장 우측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횡단보도 앞을 서성이며 행인들에게 말을 거는 이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곧장 걸어오다가도 지도와 안내책자를 들고 있는 일행을 보고는 빙 돌아 발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간혹 도와 주고 싶은 마음에 상대를 해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내 "미안합니다. 잘 모르겠네요"라고 짧은 영어로 대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30여분만에 대학생 노재민(영동대 유전학과 3년·대전시 서구 월평동)씨를 만나 가까스로 104번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을 안내해준 노씨는 "대전 시민들도 버스 노선을 잘 모르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영문으로 표시된 노선표는 찾아 볼 수가 없네요. 사실 저도 104번 버스 정류장이 이곳인지 처음 알았어요"라며 "월드컵 기간에는 셔틀버스 등 시 차원의 지원이 있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원하는 외국인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것 같네요. 외국인들을 위해서라도 외국어 안내 표지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 교통 종사자들 외국어 전혀 몰라

버스를 타는 일도 두 외국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도착지를 묻는 것은 굳이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초행길인 사람들은 누구나 하는 일. 두 사람이 104번 버스에 오르며 기사에게 영어로 '월드컵 경기장에 가느냐'고 묻지만 기사는 우리말로 '나 영어 모르는데'를 되풀이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감해 하던 두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버스에 오르려던 대학생 신지은(한밭대 영어과 4년)씨. 신씨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할 거예요. 하지만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망설이게 되고, 결국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두 외국인이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가는 동안 많은 시민들이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외국어 능력의 한계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시민들의 노력은 두 명의 외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에너멀씨는 "한국사람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합니다. 외국어를 잘 못하지만 그 따뜻한 마음은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을 도와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버스 안에서의 약 40여분 동안 불안함은 여전했다. 버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은 모든 정류장을 소개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연신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안내 표지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얽히고 설킨 전깃줄과 복잡한 이정표 속에서 월드컵 경기장 표지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모리스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버스는 '롤러 코스터'라고 불릴 정도의 난폭 운전으로 승객에 대한 서비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해 광주에서 생활했던 모리스씨는 대전의 대중교통 서비스는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장에 다다르자 정류장에 버스를 안전하게 세우고 기사가 직접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줬다.
버스 기사는 "월드컵 경기 때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자원봉사자들도 많을 텐데 우리가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지금 외국어 공부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실효성이 있겠습니까?"라고 대중교통 종사자들의 외국어 교육 필요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월드컵 경기장 외국어 서비스 만족

결국 이들이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대전역을 출발한지 2시간20여분을 넘긴 오후 5시 20분경.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여행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월드컵 경기장 밖 안내소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요원 3명이 있고, 경기장 내 홍보관에는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2명의 홍보 도우미들이 있어 두 사람은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경기장 관중석과 홍보관에서 도우미들의 외국어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에너멀씨는 "경기장이 너무 아름답다. 한국 유일의 개폐식 지붕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가 가까워 실감나는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며 "홍보관 도우미들이 월드컵 경기장뿐만 아니라 대전시의 관광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줘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40여분간의 관람을 마치고 경기장을 나서는 두 사람의 손에는 통역 도우미들의 전해준 각종 홍보물과 관광 안내책자가 들려 있었다.

경기장 주변 음식점 등 전혀 없어

만족도 잠시. 경기장을 둘러보고 저녁 식사를 위해 경기장을 나서면서 주변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에 당황해 했다. 결국 안내센터에 다시 물어 경기장 주변에는 식사할 곳이 없으니 노은지구나 유성으로 가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두 사람은 유성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경기장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렸지만 40여분이 지난 뒤에야 어렵사리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이 택시는 공교롭게도 다른 외국인을 경기장까지 안내하는 택시여서 이번 경우가 아니었으면 얼마를 더 기다렸을지 모른다.
월드컵 경기장 앞으로 지나는 시내버스는 140번과 104번 두 개 노선에 불과하고 아직 찾는 사람이 없어 택시도 매우 뜸했다.

택시 기사는 또 다시 외국인들을 태우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는 전에 태운 외국인도 갖고 있던 지도에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것으로 목적지가 월드컵 경기장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택시조합에서 나눠주는 외국어 안내책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데 그 책자가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서울 등 일부 개최 도시의 경우 택시에 통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대전의 경우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달 말이면 시청에서 영어 교육을 시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먹은 기사들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밝히며 최근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대전을 많이 찾고 있지만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외국어 간판·메뉴판 없어 주문 못해

10여분 만에 유성에 도착해서 또 한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외국어로 식당 표시가 된 곳은 없었기 때문. 정작 외국어식 표현의 간판들이 한국식 외국어에 모두 한글로 써 있고 영어나 일본어 등 해당 언어로 식당을 알리는 표지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데나 들어가자고 합의한 뒤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앞에 섰지만 한글로 된 메뉴판만 건네고 한마디도 꺼내지 못 했다. 답답하기는 두 외국인도 마찬가지. 두 사람이 '레귤러'를 되풀이하자 외국에 잠시 여행을 갔다 왔다는 식당 사장이 이를 알아듣고 가장 기본적인 김치찌개 백반을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김치찌개는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 내내 종업원들은 김치찌개를 먹는 두 사람의 이색적인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고 이런 행동에 두 사람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잠자리 해결을 위해 근처 여관을 찾았다.
여관을 찾은 것은 호텔은 외국어 서비스가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여관을 이용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여관의 외국어 서비스는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외국 손님맞이에 미흡했다. 40대로 보이는 여직원은 외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손가락 하나를 꼽는 것을 확인하고는 방 하나를 내 줬다. 물론 종이에 숙박비를 적어 이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비용을 지불 받았다.

시민 친절하지만 손님맞이 준비는 미흡

이날 두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관람을 하고 저녁식사를 해결한 뒤 잠자리를 구하는 대전에서의 월드컵 관광은 성공으로 끝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외국인을 대하는 시민의 친절함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대전의 월드컵 준비는 아직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월드컵 경기장이나 대전역과 같은 집합 장소에는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가 준비되고 있지만 이 곳을 벗어나면 외국인들은 한 발짝도 떼어놓기가 힘들 정도로 전체적인 유기성이 부족했다.

모리스씨는 "몇몇 시민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을 대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또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의 서비스는 아주 낮은 수준입니다"라고 밝혔다.
또 "한국은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공사로 어수선한 대전시의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많은 실망을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에 깊은 감명을 받고 다시 찾는다고 한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실험 취재를 통해 본 대전시의 월드컵 준비는 행사기간 동안에만 행정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지난 88 올림픽은 짧은 준비기간으로 성공 개최가 불가능하리 라던 예상을 깨고 최고의 축제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또 대전시는 지난 93년 엑스포를 성공리에 치른 노하우가 있다. 많은 시민들도 대전에서의 월드컵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개최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또 성공개최를 위해 민관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전에 처음 찾아와 진땀을 흘려가며 어렵게 경기장을 찾아간 외국인들이 과연 그렇게 평가해 줄지는 의문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