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의 묘한 인생역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 등 온갖 역경에도 살아남은 그가 이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 개인비리는 현 회장의 직접 지시로 이뤄진 내부 감사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3년 10월 현 회장 취임 이후 잠복돼 있던 현 회장과 김 부회장 간의 묘한 기류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현대 대북사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현대그룹에서 그의 입지는 정몽헌 회장이 남긴 유서로 인해 더욱 탄탄해졌다. 당시 정 회장은 유서에서 "당신은 피를 이은 자식보다 더한 자식입니다. (정주영)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대북사업 주도권을 김 부회장이 이어갈 수 있도록 정통성을 부여했다.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김 부회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최측근에서 모시면서 80년대 중반부터 정 명예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89년 정 명예회장이 북한 정부와 금강산관광 의정서를 체결할 당시에도 정 명예회장을 수행했다.

그가 고 정몽헌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6년 1월. 정 회장이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하면서 정 회장을 가까이에서 모셨다. 이후 1998년 1월 김 부회장이 현대아산의 전신인 남북경협사업단장을 맡으면서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후 현대그룹이 '왕자의 난'을 겪으며 산산조각 나는 상황에서도 그는 정 회장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2001년 5월 정 회장과 함께 대북 사업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는 현대건설 사장직을 그만뒀다. 정 회장은 이런 그를 두터운 신임으로 끌어안았다.

역설적이게도 현대그룹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던 정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김 부회장의 대북사업에 대한 입지는 더욱 강해졌다. 정 회장 사후 '숙부의 난'으로 불리는 KCC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 KCC가 가신들의 폐해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등 가신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이 김 부회장은 재신임됐다.

그러나 당시 일각에선 이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바라봤다. 김 부회장이 여러 가지 굵직한 대북 현안들을 순조롭게 풀어낸다면 그의 행보에 힘이 실리겠지만 자칫 차질이 생길 경우 그의 입지도 끝 모르게 추락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회장이 대북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둘 사이의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현대그룹 내에서는 이를 놓고 "현 회장측이 김 부회장을 내보내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각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김 부회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 회장의 자신감 있는 행보는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그룹 장악력을 강화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영권 분쟁 당시 KCC 측에서는 '수익성 없는 대북사업을 포기하라'며 현 회장을 압박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오히려 대북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자신의 체제를 확고히 했다.

특히 현정은 회장은 사업성에서도 그룹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놨다. 지난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택배 현대아산 현대증권 등 계열사 모두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총 6조6516억원의 매출, 578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현대그룹 주변에서는 이를 놓고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조직을 추스르고 기강을 다잡는 현 회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왕회장' 때부터 현대의 대북사업에 헌신해왔던 김 부회장을 너무 매몰차게 내치는 것 아니냐는 김 부회장 '동정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측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도 확인됐듯이 북측에서도 현 회장을 정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을 잇는 대북사업의 수장으로 인정한 만큼 김 부회장의 거취가 앞으로 대북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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