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소양 배양 게을리 말아야

 정운기 대전MBC 기자 미국 연수기(하)



세인트루이스 언론사 방문

연수팀은 미주리를 떠나 시카고로 가는 길에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들렀다. 철도시대에는 서부와 동부를 잇는 교통요충지였던 세인트루이스는 비행기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쇠잔해 도심공동화 현상이 매우 심각했다. 세인트루이스는 하루가 다르게 번영을 구가해 온 강대국 미국의 그늘이었다.

연수팀은 미국의 10대 유력지 가운데 하나인 를 방문해 기자들과 토론을 가졌다. 3백명의 기자가 일하고 있는 이 신문사는 Joseph Pulitzer가 인수한 이후 경영에 성공했었지만 지금은 부수 감소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독자와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민과 난민, 노인과 빈민문제 같은 것을 진단하고 취재하기 위해 직접 당사자들을 모아 놓고 스터디를 한다고 했다. 또 2-3년 전까지는 전국뉴스를 많이 다뤘는데 지금은 지역이슈에 집중하고 전에는 아시아에 관한 기사는 정치적 불안이나 범죄 등 부정적인 내용을 많이 다뤘는데 요즘은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고 했다.

특히 이 신문사의 주요 지향점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었다. 과학말고는 세인트루이스를 부흥시킬 방법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했다. 이 같은 점은 한국의 여러 도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했다. 특히 대전시는 대덕연구단지가 있다는 이유로 기회 있을 때마다 과학도시를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노력이 뒤따르지 않아 별 실속이 없다는 눈총을 받고있지 않던가. 지금이라도 민과 관, 과학자와 언론이 한데 어우러져 대전의 과학진흥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국에서 만난 C.A.R.전문기자 Jeniffer는 컴퓨터를 활용한 취재가 최근 10년 사이에 크게 성장했다면서 아주 분석적이고, 깊이 있고, 숫자이상의 의미를 전하고, 새로운 보도영역을 개척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의 교육장 IRE컨퍼런스

미국 내에서도 가장 미국적이라는 시카고. 알카포네로 유명한 시카고에서 갱단의 어두운 이미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19세기말 대 화재로 도시가 모두 불에 타 다운타운의 모든 건물이 새로 지어진 시카고는 스카이라인이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시카고 남쪽 아들러 천문대에서 바라 본 다운타운은 남한보다 더 넓다는 미시간호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곳에서 나흘동안 열린 2001년 全美탐사기자편집인(InvesgativeReporters&Editors)회의는 기자들의 교육장이자 축제의 성격을 띤 회의였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기자와 언론학자, 저널리즘 전공학생들이 몰려들었고 주말과 일요일도 없이 신문방송과 관련한 110개의 패널발표와 토론이 분과별로 이어졌다. 주최측에서는 참석을 하지 못한 기자들을 위해 모든 내용을 녹음테이프로 제작해 판매했다.

이 자리에서는 인종문제에서부터 C.A.R.의 활용과 이종(異種)매체의 협동취재, 의료와 보험산업 탐사 취재기, 기사작성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현실적인 주제가 다뤄졌다. 또 20년 전통의 룸에서는 최근의 우수한 탐사 보도를 소개한 뒤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소모임이 계속됐고 룸에서는 C.A.R.기법과 유용한 인터넷사이트에 대한 교육이 진행됐다. 취재현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상대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체험을 공유하면서 발전을 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부러웠다.

엄격한 분위기의 뉴욕타임즈

연수팀은 막바지에 뉴욕타임즈와 NBC방송국 본사를 방문했다. 뉴욕타임즈는 와 달리 건물 안 어디서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분위기였고 편집국내부는 조용해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벽면 곳곳에는 마감시간을 재촉하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1890년대에 생겨난 뉴욕타임즈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를 주로 보도하는 뉴욕시내 12개신문사 중 하나였지만 취재에 투자를 많이하고 점차 품격을 높여가면서 1920-30년대에는 수준높은 독자층을 확보하게 됐다. 뉴욕타임즈 재단의 이사장 JackRosenthal은 뉴욕타임즈가 공공서비스와 이윤을 동시에 추구해왔다며“돈이 없이는 QualityPaper를 못 만들고 QualityPaper가 아니면 돈을 못 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문기자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 가가 Quality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음식분야의 경우 뉴욕타임즈는 35년 전에 전문기자를 처음으로 뒀는데 지금은 5명으로 늘어 레스토랑이나 영양 등의 취재를 각각 맡고 있다. 포도주 맛을 감별하는 소믈리에 자격을 가진 기자도 있는데 이 사람이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해 포도주 값이 달라질 정도라고 한다. 세계의 도시 가운데서도 뉴요커들이 음식에 대해 진지한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지적인 용모의 여기자 Lisa Guernsey는 자신의 담당분야인 IT취재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정보통신기술을 취재할 때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전자제품을 소개할 때는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와 제품에 대한 평가를 하는 기사는 별개로 다룬다고 했다. 작년의 경우 IT분야가 급성장해 하루에도 수백건씩의 이메일을 받았고 기업체로부터 압력을 받았는데 결국 기자 자신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집에서 가족과 기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보통사람인 자신의 어머니가 기사를 이해하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개방적인 NBC

뉴욕에 본사를 둔 NBC는 뉴욕타임즈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었다. 방송사 견학이 상품으로 개발돼 하루종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뉴스쇼를 진행하는 스튜디오의 크기는 서울MBC와 비슷했고 주조정실은 작았다.

우리를 안내한 Andrew Lehren은 밤 시간대의 뉴스쇼 Dateline을 담당하는 C.A.R.전문기자였다. 신문기자로 일하다 미주리大 저널리즘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최대 화두는 방송에 C.A.R.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였다. 그동안 굵직굵직한 특종을 여러개했고 최근에는 비행기 연착문제를 취재한 'PaperChase'로 全美탐사기자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Lehren은 보통 10분 안팎으로 리포트를 제작하지만 중요한 기사는 한시간짜리 Dateline프로그램을 통째로 쓰는데 일단 아이템이 잡히면 취재나 기사작성에 앞서 어떤 그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한다고 했다. 음식이나 약품 등 건강관련 뉴스는 거의 빠지지 않고 우주선 관련 뉴스도 비교적 중요하게 다뤄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순수과학에 대한 방송사 내부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전했다. 또 다른 언론사는 취재아이템이 방송되기까지 데스크가 기사에 대해 스무번 가량 지적을 하고 손을 댄다면 NBC는 한두번에 그칠 도로 간섭이 적고 비관료적이어서 다른 언론사에 비해 더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연수팀은 뉴욕을 마지막으로 3주간의 미국 연수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돌아오니 한국적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내 주변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이 선물하신 해외연수

나는 이번 해외연수를 신이 주신 선물에 비견하고 싶다. 특히 입사이후 처음으로 참가하는 전문연수였기에 해갈의 기쁨이 더했다. 일정은 고됐어도 평생 모르거나 잊고 지나쳤을 사실에 눈떴고, 특히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40대의 나이에 강한 자극과 함께 평생동안 기꺼이 매달릴 수 있는 과제를 찾은 것이 개인적으로 큰 성과이다.

또한 취재기자로서의 전문성 배양과 정론보도 노력, 컴퓨터를 활용한 취재와 탐사보도 능력개발 등 기본소양을 쌓는 일을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끝으로, 이번 연수는 Logan교수와 저널리즘 박사과정을 거의 끝낸 조선일보 박재영 기자, 그리고 한국언론재단 천세익 차장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입가에 항상 미소를 머금은 Logan교수는 자상한 배려로 연수생들을 여러 차례 감동시켰다. 지면을 통해서 나마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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