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씨는 역사의 반역자

역사의식이 마비된 사람들

고건씨는 군사독재시대 고위직에 오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영삼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도 했는데, 왜 대통령을 할 수 없느냐고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32년간 오랜 세월 군사독재 속에서 살다보니 역사의식(歷史意識)이 마비된 것 같다.

그래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고건씨를 평가하려고 한다.

역사의식이란 우리 민족과 국가의 과거역사를 반성하고 앞으로 발전하기 위한 역사의 방향을 깨닫고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역사의식은 역사방향의 길잡이가 되고, 역사의 방향은 정의(正義: 역사정의와 사회정의)의 길이 된다. 


우리나라 역사의 방향

그러므로 우리 민족과 국가가 발전하기 위한 역사의 방향을 네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1. 자유와 인권 정의와 평등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2. 남북한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기 위하여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평화공존과 평화통일

3. 친일반민족행위 등 과거 잘못된 역사청산과 1948년10월 제정되어 이승만독재12년과 군사독재32년 등 44년간 생사람 잡던 국가보안법폐지 및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던 사립학교법개정 등의 개혁추진

4. 우리나라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미간 동맹국이라고 할지라도 동북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전쟁에 말려들지 않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동북아균형자역할 


역사의 반역자

앞에서 본 역사의 방향같이 우리나라 헌법도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인권 정의와 평등을 보장하고 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소장 등의 군사독재자들은 32년간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는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즉 역사의 방향을 거꾸로 갔다.

이런 독재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재자 밑에 있는 고위직 인물들에게 방침을 하달하면 고위직인물들이 정책과 계획을 만들어 지시하고 감독하여 독재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건씨도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등의 독재자 밑에서 전남도지사와 청와대 정무수석 내무부장관 서울시장 농수산부장관 산자부장관 등 요직에서 군사독재가 지속되도록 공헌을 했기 때문에 역사의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의 방향을 역류(逆流)하였기 때문이다.

즉 군사독재시대 민주화운동하던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구속되어 고문으로 죽어갈 때 자유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고위직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고건씨 개인의 입신영달(入神榮達)을 위한 것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보면 군사독재에 얼마나 헌신을 잘 했으면 군사독재 거의 전(全) 기간 고위직에 있었을까 짐작이 간다.

그 당시 각 기관마다 중앙정보부(안기부)와 보안사 요원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며 기관장과 고위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보고한 것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독재의 방침에 위반되는지 아닌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리고 고건씨는 노무현정부 초기에 국무총리를 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국회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인물을 고르다 보니 고건씨가 한나라당 의원들과 인맥이 통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또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밑에서 제한된 범위의 업무를 추진하는 자리이지만, 대통령은 헌법과 법령의 범위에서 내정과 국방 외교 및 남북관계 등을 누구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자리이므로 대통령의 영향은 모든 분야에 미친다. 그런데 고건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학계 등 각 분야의 수구세력과 오랜 인연으로 둘러 쌓여있으므로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개혁과 진보의 길로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군사독재의 생리(生理)

그 밖에도 내가 군사독재시대 겪은 군사독재의 생리 두 가지를 얘기한다.

서대문구 충정로3가 동(洞)사무장시절 1969년 대통령3선 개헌 투표가 끝난 후 당신은 왜 야당운동을 했느냐고 따지기에 야당운동한 일도 없고 업무상 관내 주민을 여·야 가리지 않고 만났을 뿐이라고 했지만 모두 승진이나 영전발령이 나고 나만 총무과에 대기발령이 나서 할 일 없이 여러 달 고생만 했다.

이와 같이 군사독재의 첫째 생리는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로 부족하여 국민을 여·야로 분열시켰다.

또 하나는 동대문구 주택과장시절 1975년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인데 2월초순 퇴근시간이 지나 캄캄한 밤에 구청장실로 빨리 집합하라는 구내방송을 듣자마자 달려가 보니 5·16쿠데타 주역인 포병장교출신 구자춘 서울시장과 인사담당인 내무국장 등 국장 3명이 버티고 있었다.

시장이 나에게 “주택과장은 요새 무엇을 하고 있나” 라고 물었다. 유신헌법을 찬성투표 하 도록 담당 동에 나가 홍보했느냐는 뜻이 숨어 있는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작년에 불량주택현지개량사업을 추진한 7개지역을 마무리 하며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대답했더니 “야 이 새끼야, 누가 너 보고 그런 것을 하라고 했어, 이런 새끼는 당장 공무원사회에서 쫓아버려 .......”라고 시장이 고성을 치며 노발대발했다.

이와 같이 군사독재의 두 번째 생리는 강압으로 위법부당하게 권력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군사독재의 고위직인물은 군사독재의 앞잡이로 공무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은 시비하고 역사가 거꾸로 가도록 앞장섰으므로 독재자와 똑같이 역사의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위직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군사독재시대 거의 전(全) 기간 고위직에 오래 있었던 고건씨는 역사의 반역자로 역사정의와 사회정의에 위반되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2006년6월16일

김 만 식 (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시집 『박통이 최고라네』 산문집『대통령은 아무나 하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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