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목요언론인클럽,현충원 종군기자 묘소 참배

6.25참전 종군기자들 모임인 중군기자 동우회(회장 한영섭) 회원들이 목요언론인클럽(회장 이정두) 회원들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하늘 위로는 총탄이 왔다갔다 하는데 칼만 안들었을 뿐이지 펜대 들고서 죽을 고비 여러번 넘겼어”

1950년 6.25 전쟁 당시 펜대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4인의 전 종군기자들이 현충원을 찾았다.

50여년의 세월을 비켜갈 수 없듯 이들의 얼굴에도 그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충원에 묻힌 동료기자들을 참배하기 위해 먼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왔다.

목요언론인클럽(이정두 회장) 주최로 진행된 이 날 참배는 전장에서 산화한 언론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6.25참전 종군기자 동우회 회원들을 초청,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현재 대전 현충원에는 김우용 전 서울신문 기자, 방락영 전 조선일보 기자, 최기덕, 최경덕 전 동아일보 기자 등 총 4명의 종군기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임학수(88) 전 동아일보 기자는 57년전 그 날을 회상하며 “참 하늘이 맑았다” 고 말문을 열었다. 동료기자들의 묘지를 한군데 씩 둘러보며 이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함께 전장을 누볐던 동료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이 친구는 참 술을 잘 먹는 친구였는데....신문기자인데도 거짓말을 잘해서 내가 살아 생전에 별로 안좋아했어(웃음)”

살아 생전에 동료가 즐겨 마셨다던 흰 막걸리를 묘지 비석에 붓던 임 전 동아일보 기자는 “최경덕 이 친구는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였다” 며 “한국 신문 사진의 태두였다” 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는 전쟁 당시 동료들과 찍었던 사진들과 전쟁후에 받은 표창장들을 직접 가져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던 김진섭(90) 전 동아일보 기자는 “6.25 전쟁당시 종군 나갈 때 기분이 새롭게 기억난다” 며 “하늘에 총탄이 왔다갔다 하는데 전선 입구부터 긴장이 되더라” 며 “총 쏘는 것도 보고 사람죽는 것도 보고...말 할 수 없었다. 총만 안가졌을 뿐이지 안 올라갈 수 없었다” 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종군기자도 제한이 많았어. 제식훈련도 받고, 위험지역에서 피할 수 있는 기능도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었지”

전쟁 당시 이들은 한창 나이인 20대 후반. 전쟁 터에서 기사 송고는 "또 다른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고 말한다. 

"거의 외신을 통해 나갔지. 사람이 죽으면 사망이 아니야. 소모, '몇 명 소모' 라고 쓰고 그런다음 병력이 보충이 됐어" 

아직도 생생한 듯 전 종군기자들은 전쟁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들을 구구절절이 들려주었다.  

한영섭(80) 현 종군기자 동우회 회장(전 KBS 기자)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며 “죽을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포위를 당해 교전하면서 탈출하고...전선에 투입된 사람들은 구분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고 말했다.

6.25 전쟁 당시 펜대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종군기자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진섭 전 동아일보 기자, 한영섭 전 KBS 기자, 계성일 전 자유신문 기자, 임학수 전 동아일보 기자)

계성일(78) 현 종군기자 동우회 부회장은 "내년에도 오고 내후년에도 오고 죽을 때까지 여기에 묻힌 친구들을 찾을 것" 이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목요언론인클럽 이정두 회장은 "현충원에 선배기자들이 잠들고 있다는 사실을 올 해 처음으로 알았다" 며 "앞으로 매년 연례행사로 참배할 예정이다" 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 날 종군기자 동우회는 목요언론인클럽에 언론인 장학사업을 위한 금일봉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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