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목요언론인클럽,현충원 종군기자 묘소 참배
6.25참전 종군기자들 모임인 중군기자 동우회(회장 한영섭) 회원들이 목요언론인클럽(회장 이정두) 회원들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 |
“하늘 위로는 총탄이 왔다갔다 하는데 칼만 안들었을 뿐이지 펜대 들고서 죽을 고비 여러번 넘겼어”
1950년 6.25 전쟁 당시 펜대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4인의 전 종군기자들이 현충원을 찾았다.
50여년의 세월을 비켜갈 수 없듯 이들의 얼굴에도 그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충원에 묻힌 동료기자들을 참배하기 위해 먼 거리를 한 달음에 달려왔다.
목요언론인클럽(이정두 회장) 주최로 진행된 이 날 참배는 전장에서 산화한 언론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6.25참전 종군기자 동우회 회원들을 초청,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다.
현재 대전 현충원에는 김우용 전 서울신문 기자, 방락영 전 조선일보 기자, 최기덕, 최경덕 전 동아일보 기자 등 총 4명의 종군기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이 친구는 참 술을 잘 먹는 친구였는데....신문기자인데도 거짓말을 잘해서 내가 살아 생전에 별로 안좋아했어(웃음)”
살아 생전에 동료가 즐겨 마셨다던 흰 막걸리를 묘지 비석에 붓던 임 전 동아일보 기자는 “최경덕 이 친구는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였다” 며 “한국 신문 사진의 태두였다” 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는 전쟁 당시 동료들과 찍었던 사진들과 전쟁후에 받은 표창장들을 직접 가져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던 김진섭(90) 전 동아일보 기자는 “6.25 전쟁당시 종군 나갈 때 기분이 새롭게 기억난다” 며 “하늘에 총탄이 왔다갔다 하는데 전선 입구부터 긴장이 되더라” 며 “총 쏘는 것도 보고 사람죽는 것도 보고...말 할 수 없었다. 총만 안가졌을 뿐이지 안 올라갈 수 없었다” 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종군기자도 제한이 많았어. 제식훈련도 받고, 위험지역에서 피할 수 있는 기능도 기본적으로 익히고 있었지”
전쟁 당시 이들은 한창 나이인 20대 후반. 전쟁 터에서 기사 송고는 "또 다른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고 말한다.
"거의 외신을 통해 나갔지. 사람이 죽으면 사망이 아니야. 소모, '몇 명 소모' 라고 쓰고 그런다음 병력이 보충이 됐어"
아직도 생생한 듯 전 종군기자들은 전쟁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들을 구구절절이 들려주었다.
한영섭(80) 현 종군기자 동우회 회장(전 KBS 기자)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며 “죽을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포위를 당해 교전하면서 탈출하고...전선에 투입된 사람들은 구분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고 말했다.
6.25 전쟁 당시 펜대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종군기자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진섭 전 동아일보 기자, 한영섭 전 KBS 기자, 계성일 전 자유신문 기자, 임학수 전 동아일보 기자) |
계성일(78) 현 종군기자 동우회 부회장은 "내년에도 오고 내후년에도 오고 죽을 때까지 여기에 묻힌 친구들을 찾을 것" 이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목요언론인클럽 이정두 회장은 "현충원에 선배기자들이 잠들고 있다는 사실을 올 해 처음으로 알았다" 며 "앞으로 매년 연례행사로 참배할 예정이다" 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 날 종군기자 동우회는 목요언론인클럽에 언론인 장학사업을 위한 금일봉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