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대학 졸업시즌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학 도서관은 취업을 코 앞에 둔 준비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책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공무원 시험' 준비서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예비졸업생들만이 아니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태반이다.'대학가에 부는 공무원 열풍' , 충남대학교 신문사 손주영 학생기자의 기사를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이야기1. K군이 어떻게 공무원 준비를 하게 되었을까?

군대에 갔다 복학을 하고 돌아와서 K군에게 막상 닥쳐 있는 것은 취업. 앞날에 대한 갑갑함이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고 주위의 압박은 더 심해진다. 하지만 막상 취업을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요즘 같은 세상, 부쩍 주위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마침 시사프로에서 공무원 열풍이 흘러나온다. “지난달 중순 서울시 7-9급 채용시험 1천1백86명 모집에 11만8천4백 명이 지원해 서울시 공무원 채용 사상 최고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공무원 열풍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토요일 저녁, 제대하고 처음으로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반가움에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즐기다 취업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여자애들은 벌써 취업이 되었거나 면접 보러 다니기 바쁘단다.

다른 동창들도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공기업, 대기업을 준비하는 등. 토익준비에 혈안이 되어서 요즘은 거의 학원 다니는 게 일과란다.

그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공무원 시험에 붙은 사람의 무용담이 흐르고 “우리학교 학생은 한 2년만 빡빡하게 하면 붙는다”는 말이 오간다.

“너는 전공 쪽으로 가고 싶다고 했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말 공무원 시험 준비해 볼까?’ 생각해본다.

이야기2. 노량진에서 들어 본 ‘공무원을 택한 이유’

공무원 열풍이라고 연일 말하지만 노량진역에서 내리자 주변에서 생선냄새보다 더 빨리 각종 고시학원을 찾을 수 있다. 큰 건물마다 가장 큰 간판은 역시 학원들. 고시원들이다.
재수학원 각종 고시학원을 찾아서 지방에서 온 학생들의 규모가 대충 짐작이 간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도 온통 하숙집과 자습실, 오랜만에 보는 전봇대에 붙여진 ‘잠만 잘 학생 하숙’이란 글씨, 집집마다 걸려있는 ‘하숙’이란 말들. 담에는 토익문제집 광고가 빽빽하게 붙여져 있다. 학교에서나 볼 법한 전단지 알바생들이 학원 전단지를 나눠준다.

트레이닝복과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학생들. 고3 수험생으로 돌아간 듯한 갑갑한 심정이다. 고시원에서 만난 송모씨는 “1년 전에 비해 고시생이 한 세 배 정도 늘어 난 것 같아요”라며 말한다.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2년 12월 31일 현재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이 평균 44.5:1에서 2004년 11월 15일 현재 평균 85.3%로 거의 두 배가 몰렸다. 공무원 열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으므로 지금은 더 높을 것이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배출을 많이 했다는 H학원을 가보니 이제 수능을 며칠 남기지 않은 고3교실 분위기 보다 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오후 자습시간에 강의실에서 짐을 잔뜩 올려놓고 편한 복장으로 공부하는 분위기는 창문을 통해 보아도 긴장된다.

임필성(30)씨는 “회사생활을 하다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러 왔다”며 “신분보장이 확실한데다가 자기가 노력하면 한만큼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이제 공무원 시험으로 길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사기업에서의 불안감이란 만만치 않다.

“의외로 다른 길로 갈 아이들, 연구소에서 활동도 했던 인재들이 보여요. 동아리 후배 10명을 이곳에서 봤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안정적’이라는 장점 때문에 사회적 인재가 공무원에 몰리고 있다.

“고시원은 딱 싱글침대 두 개 놓을 정도에요. 갑갑해서 살만한 공간은 못되죠” 좁은 공간에서 아침에 8시 일어나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이들.

기계공학과를 나왔다는 문준석(서울시 신림동·26)씨는 “주위에 과친구 4명 정도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며 “일반 회사를 가도 5,60대까지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공무원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이야기3. 공무원의 철밥통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이렇도록 공무원의 몸값이 말 그대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닫는’ 원인은 바로 안정성이다. 미래에 대한 보험. 아직까지 평생직장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안정성’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공무원의 신화도 점차 깨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노후준비를 하고 있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공무원은 철밥통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무원으로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예가 바로 공기업의 민영화이다. 2000년 10월 포스코가 민영화 되고, 2002년에는 한국통신이 KT로 민영화 되었으며, 올해 초에는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공기업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정부의 단계적 공기업 민영화의 정책을 보여준다.

공기업이 민영화 된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 말고도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에서 공무원의 미래와 연결된다.

결국 이러한 민영화는 정부가 ‘작은 정부’로 이행된 모습이며, 자본과 시장의 흐름에 맡기는 세계의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영화는 곧 정부조직의 구조조정과 연관될 것이며, 정부조직이 상업화 또는 민영화 될 경우, 시장의 원리에 따라 공무원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동의 유연성 강조가 필수 일 것이며 인원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야기4. 안정성에 너무 연연해서는 안돼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에서 정부조직이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본격적인 작은정부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은 바로 공무원의 인원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직업선택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뚫릴지도 모르는 철밥통에 너무 연연할 필요 없지 않을까?

공무원 열풍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현재 와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 준다.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전한 고용의 문제, 청년실업. 공무원 경쟁률이 80:1이 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만으로 보긴 힘들다. 개인이 마음 놓고 일 할 수 없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를 대응하는 개인의 현명한 선택도 이 시대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필수 조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되도록 직업을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변할 가능성이 있는 ‘안정성’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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