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에 김장 850포기 담가 전달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몇 년전 만해도 김장담그기는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네 가정의 중요한 행사였다. 이웃에서 김장을 할라치면 동네 아줌마들이 전부 모여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날이기도 했다. 거기에 보너스로 김장양념에 보쌈을 싸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한마디로 김장담그는 날은 동네 잔치 날이었다.

아침기온이 많이 떨어진 지난 16일 오전 10시 목원대학교를 찾았다.
사회복지학과에서 15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서구·중구 일대의 빈곤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을 위한 김장 담가 주기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목원대 사회복지학과는 사람 사랑의 마음을 한데 모아 한 덩어리가 된 사회를 이룩하자는 취지로 '사랑 어우르기' 행사를 열고 있다. 사랑의 어울림이 필요한 목동, 중촌동, 용두동, 유성, 가수원, 월평동 등지의 빈곤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100-150여 가구에게 지난 9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김장 김치를 전달해 왔다.

"김장 처음 해봐요. 집에서는 엄마가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해서 한번도 안해 봤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 힘드네요"
황미화양(여·1학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장을 해본다고 했다. 황양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처음 해보는 김장일 것이다.
어제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 850포기를 씻는 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김장담그기에 들어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각자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황양은 김장담그는 기술이 없는 관계로 배추 나르기를 맡았다. 소금에 절인 배추가 꽤 무거울 텐데 힘든 내색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무척 예뻐 보였다.
"힘이야 들죠. 그래도 우리가 조금만 고생하면 어렵게 사시는 분들 올 겨울 김치걱정은 안해도 되잖아요.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라며 씻은 배추를 옮겨 담느라 정신이 없다.

김장담그기는 뭐니뭐니해도 양념 버무리기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하기에는 조금은 벅찬 작업이다.
이 중요한 작업을 위해서 사회복지학과 왕언니 박숙자씨(62·3학년)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고춧가루는 그만 넣어도 돼. 무채 썰은 건 더 넣어야지. 양념 버무리 걸 빨래 빨듯이 막 치대면 안돼. 골고루 섞어 줘"학생들 하는 모습이 안심이 안되는 듯 계속해서 잔소리다.

"우리 학생들이 참 착해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이 추운 날 저렇게 땀까지 흘려가며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니까 다 한번씩 안아주고 싶을 정도예요"
학생들 보는데서는 일 못한다고 혼만 내던 왕언니가 뒤에 와서는 학생들 칭찬에 침이 마른다.

오후가 되면서 한쪽에는 김치를 담은 상자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황양은 배추에 양념을 넣은 것인지 옷에다 버무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옷에 양념이 많이 묻어 있었다.
얼룩이 잘 지지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걱정에 "손빨래하면 깨끗해지겠죠. 아님 잘 모셔놨다가 내년 행사 때 또 입죠"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오후 5시 어느 정도 김치 담그기가 끝나갈 무렵 대부분 학생들의 옷에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고춧가루들이 묻어 있었다.

김치담그기가 끝난 다음날인 17일 오전 9시. 황양을 따라 월평동 사회복지원을 찾았다.
어제 미리 갔다놓은 31상자의 김치를 배달하기 위해서다. 황양이 도착하기 전 같은 조인 박정희(20·1학년), 박지은(22·3학년), 정수경(22·3학년)학생이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김장을 나누어줄 집을 확인하고는 상자를 들고 대상자의 집으로 향했다.
무거운 김치상자를 들고 이곳저곳 다니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안 무거워요. 남는 건 힘밖에 없는데 남는 힘 좀 써보죠"라며 황양이 농담을 건네 본다.

토요일 이른 시간임에도 독거노인들이 집을 비운 경우가 많았다. 들고 올라간 김치를 다시 들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면서도 싫은 표정이 전혀 없었다.

학생들에게 김장을 받은 김필려할머니(78)는 "아이구, 고마워. 나 같은 노인네한테도 김치 주는겨 잘먹을께"라며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1차 대상자 25가정 중 17가구에 대해 배달을 완료했다. 나머지 8가구는 사람이 없어 전하지 못했다.
"아쉽다. 빈집이 많아 김치를 못 주고 가서. 많은 사람들이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남은 김치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은 월평사회복지관에 의뢰해 다시 대상을 선정하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김치상자를 들고 아파트로 들어섰다.

몸은 지쳤지만 황양을 비롯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사람을 밝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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