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손에 이끌려 야학교사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된 사람이 있다. 올해로 야학교사 26년 째. 이제는 ‘대전 야학의 산증인’이라 불린다.

대전야학의 산증인 한인택 교사
중리중학교 도덕 교사인 한인택 씨(45). 충남대 교육학과 2학년 때인 1980년 3월에 한국BBS충남연맹 부설 야간학교(현 제일중고등학교)의 교사가 됐다.

이 야학은 1974년 당시 연맹 회장이었던 고 이웅렬 중도일보사 회장이 경암빌딩 지하에서 개교한 것. 초기에는 야학의 싹을 틔운 홍성호 목사가 관리 하다가, 1979년부터는 대학생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나 가야 볼 수 있는 긴 나무의자, 120명에 달하는 10대, 20대의 여공(여성 공장근로자)들, ‘교복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표정. 이것이 한 교사가 본 야학의 첫 인상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운영을 하면서부터는 자격증을 따는 쪽으로 운영 방침을 전환했죠. 검정고시 말입니다. 그 뒤 검고 합격자들이 배출되면서 신바람이 났고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교회 나무의자에 교복입은 여공 모습 '생생'

한 교사가 들어온 지 2년 지난 1982년, 충남도청에 근무하는 박상도 전 교장(2005. 6. 23퇴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 당시에는 5공 정권의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야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대부분 재정문제로 곧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BBS의 우산 속에 있는데다가, ‘방패막이’를 자임하고 나선 분이 계시니 정말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 후로 고등반도 개설하고, 박 교장선생님은 학교 건물, 부지 물색 등 어렵고 힘든 일은 앞장서 도맡아 하셨습니다.”

박상도 전 교장과의 운명의 만남

야학은 군 복무를 마친 한 교사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학생들의 나이가 20, 30대로 높아져 대학 2, 3학년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술에 취한 몇 몇이 젊은 교사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전시 동구 용전동에 위치한 한국BBS 대전충남연맹 부설 야간학교인 제일중고등학교 전경. 연맹은 올해 1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건물 개보수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 교사의 교육에 대한 끼는 여기서 발휘된다. 그동안 맡았던 교무 일을 넘기고, 문제의 어른반 담임을 자처해 그들을 평정(?)해 버린 것. 한 교사의 뒤에는 든든한 복학생 교사 서 너 명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1987년 첫 교직 발령을 받은 한 교사는 처음 고민에 빠진다. 정규교사와 야학교사를 겸임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강의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 만큼 야학에 대해 애정을 쏟아왔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한 교사는 현재 매주 월요일 한문강의를 하고 있다.

한 교사는 이젠 야학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전에는 돈 없어 못 배운 사람들이 주를 이뤘지만,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나 만학을 하는 성인 등 이제는 그 배경이 다양해져 새로운 교육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극박한 현대인에게 자성의 경종 울려

“검정고시 위주로 가르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의 야학은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야학, 즉 컴퓨터나 원예 교육 등 생활 속의 야학이 되어야 그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한 교사는 야학에 대한 두 번째 고민에 빠졌다. 늘 믿고 의지했던 박상도 전 교장의 갑작스런 퇴임으로 공허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교사는 알고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학만이 가져다주는 자유스러운 야학교육의 매력을 자신은 결코 놓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교육 봉사 26개성상. 강산이 바뀌어도 세 번은 바뀔 세월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알리려 하지 않고 묵묵히 변함없이 참 교육자의 길을 걷는 한인택 교사. 그의 삶은 황금만능주의의 환상을 좇아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자성의 경종으로 울리고 있다.

짧으면 6개월, 길어야 4, 5년에 그치는 야학교사의 생명력을 볼 때 그 울림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한인택 교사 : 016-426-8579 / 042-626-5473(중리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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