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아라코남 여성노동자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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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에 파묻힌지 15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숨쉬고 있던 신생아'
'사고와 자살을 위장한 아내 죽이기'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 신부가 친정부모에게 행패부린 시댁식구 고소하기'
'물소 한 마리의 5분의 1 가격인 10만원에 팔려가는 소녀'
여름 밤 납량특집이나 엽기 시리즈가 아니다. 최근 인도와 세계 여러나라의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사건들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 악명 높은 다우리(dowry), 지참금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딸을 시집보내려면 가산이 기울 정도의 지참금을 주어 보내야 하는 인도의 전통적 결혼 풍습은 인도여성의 질곡과 인권유린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단지 여자아기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자마자 질식, 독살시키거나 굶겨 죽이고, 아니면 하수도나 쓰레기장에 버린다. 가난한 부모에게 여자아기는 일도 못하면서 키워서 시집보내려면 지참금만 마련해야 하는 '화근덩어리'인 것이다.
오죽하면 한 아버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딸을 키우는 것은 남의 밭에 물주기나 마찬가지"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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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기는 화근 덩어리
일찍이 여성총리를 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적지 않은 여성운동가와 여성단체들이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인도.
그리고 지금 인도는 급속한 속도로 서구화가 진행 중이다. 세계 제2의 IT산업 강국을 꿈꾸며 경제적 발전을 꾀하고 있는 가운데 대도시에서는 서양식 카페테리아 식당과 맥도널드 햄버거점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청바지와 운동화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인도사회 심층에 굳건히 남아있는 카스트제도만큼이나 여전히 견고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굳어진 인습과 전통은 법과 제도도 무력하게 만든다.
특히 가부장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농촌과 빈민층 여성들의 삶은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없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온갖 궂은 일은 다 하면서도 대우는커녕 무시와 억압으로 여성들의 목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도 여아 살해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타밀나두주에 있는 '아라코남 여성 노동자 공동체'는 바로 이같은 가난한 인도농촌 여성들의 취약한 인권과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자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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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체 게바라, 맑스, 레닌 사진이
카삼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공동체를 찾아가는 길에서 이번엔 우리가 거꾸로 구경거리가 됐다. 외국관광객이 별로 찾지 않는 작은 도시여서 그런지 길을 지나는 인도인들마다 그 커다란 눈을 일행에게서 떼지 못한 채 뚫어져라 바라본다. 살다보니 별 신기한 구경도 다한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공동체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었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동체에 대한 안내를 받기위해 들어선 자그마한 회당의 벽 이곳저곳에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사진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우선 체 게바라 사진이 여성의 연대와 권리를 주장하는 포스터들 사이에서 시선을 끌었고 맑스와 레닌의 사진도 있었다.
이곳은 인도 헌법의 기초자이자 사회개혁가이며 카스트를 인정하는 힌두교에 반대해 신불교운동을 펼쳐던 암베드카 박사의 영향이 큰 곳임에도 노동자 공동체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라코남 여성 노동자 공동체는 SRED(Society for Rural Education and Development)의 이름으로 1979년 시작됐다. SRED는 가난한 농촌의 교육과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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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스스로의 삶 살도록
공동체의 목적은 여성들을 교육시켜 자존감과 자립심을 갖도록 하며 사회발전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동체 안과 밖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직업교육을 포함한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이다. 공동체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마을에 들어가면 리더가 되어 그들을 설득하고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변화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클리닉을 운영 무료 진료와 위생문제, 가족계획 등을 계몽하고, 야학을 개설하고,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등 사회개혁운동에 열을 쏟고 있다.
공동체 운영은 기부금과 생산품의 수출과 판매로 충당하고 있는데 특히 의상, 식탁보, 냅킨, 앞치마 등 외국에서 주문받아 생산하는 봉제업은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디자인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품질도 뛰어나다.
공동체에 들어와 비로소 쓰기와 읽기를 배우고 현재 미싱일을 하고 있는 마노(23세)의 꿈은 자신의 점포를 갖는 것이다.
"남자 형제들이 학교에 갈 때 나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라코남에 와서 처음 글을 배워 내 이름을 쓰고 책을 읽었을 때 너무 기뻤다."며 자신의 재봉틀 앞에서 수줍게 포즈를 취한 마노는 지금도 만족스럽지만 그러나 앞으로 더 독립적으로 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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