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


정치개혁이 급 물살을 타고 있다. 5일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등 4당은 금년 중으로 정당법을 고쳐 각 당의 지구당을 모두 폐지하고, 내년 총선부터 완전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오는 12일까지 각 정당별로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여부 등 선거구제 개편 방안과 선거구 획정을 위한 의원정수, 정치자금법·정당법·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제 바야흐로 각 당은 정치개혁을 위한 방안들을 놓고 누가 과연 이 시대에 맞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인가, 경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대선자금 수사가 목줄에 걸려있는 정국의 영향 때문인지 정치자금법 문제나 선거공영제에 대해서는 4당 모두 별다른 당내 논란을 일으키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돈 들어가는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핵심조치인 '지구당 폐지'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인 중·대선거구제 채택에 대해서는 얘기가 좀 다른 모양이다.

정치개혁방안 놓고 정당들 경쟁 돌입

바로 한나라당이 문제다. 한나라당은 당내 의견 조율이 안 되어 '지구당 조직'과 '소선거구제'에 대한 미련을 털어 버리기가 쉽지 않은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조직선거와 지역주의의 기득권에 함몰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구당이 있어야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정당의 정강정책을 널리 알려 지지층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현실은 그게 아니다.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전무한 현실 속에서, 지구당이란 그저 위원장 한 사람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부조리한 조직일 뿐이다.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표본인 셈이다. 위원장은 용빼는 재주를 부려야만 지구당을 끌고 갈 수 있다. 결국 음성적 정치자금, 대가성 뇌물자금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가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랴. 지구당위원장에게 1천만 원을 건넨 사람이라면 누구든 못해도 1억 원어치의 반대급부를 노린다.

'지구당'은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표본

정경유착의 고리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나고, 협잡정치·뇌물정치·청탁정치의 싹이 바로 여기에서 자란다. '지구당'은 폐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부르짖는 정치개혁의 으뜸과제다. 또 하나, 한나라당의 일부가 소선거구제에 집착하는 것은 지역주의의 달콤한 꿀맛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상대적으로 넓은 밭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언제나 이기는 잘못된 게임에 중독된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발상의 축을 옮겨야 한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1등만을 승자로 정하는 게임법칙이 적용된다. 이론상으로 20%만 득표하면 당선이 될 수도 있고, 나머지 80%는 정치적으로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제도를 가지고는 내년 선거가 아니라, 그 다음 총선에서도 지역주의 정치, 지역당 구조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소선거구제가 지속되는 한 이념에 상관없이 지역당에 공천을 받으려고 몰려드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고, 공천은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불합리가 판을 칠 것이다.

소선거구제 지속해서는 '지역주의' 절대 못 깨

물론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선거구제는 적어도 지역주의가 지금처럼 정치논리를 지배하고 정치적 판단을 왜곡시키는 모순은 분명 개선시킬 것이다. 적어도 유권자들이 지역주의를 벗어나, 이념과 정강정책을 비교해가면서 후보를 골라내는 정치를 싹 틔워낼 것이다. 지역주의가 예전처럼 힘을 못 쓰게 하는 그런 변화야말로 우리 정치를 발전시킬 커다란 전환점이 될 터.

'영남당'의 오명을 벗어나려면 지금 생각을 바꾸시라. 호남 땅에, 충청 땅에, 강원 땅에 한나라당의 깃발을 떳떳하게 꽂고싶다면 '소선거구제'로 지켜온 지역당의 달콤한 유혹을 잊어버려야 한다. 긴 세월 이 나라를 좀 먹어온 지역주의를 청산하고 번영된 미래를 후손들에게 남겨주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소선거구제'의 외고집을 꺾으시라. 한나라당이 용기를 내야 이 나라 정치가 달라진다. 한나라당이 변해야 나라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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