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창]국난극복의 현장 '강화도'

6월초 봄날이 다 간 날,나는 강화도에 갔다. 그저 막연하게 인천 앞바다에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떠났다. 3시간을 달리자 인천이 아닌 김포에 붙어있는 섬아닌 섬이라는 것을깨달았다. 육지로 연결하는 두 다리중 아래쪽에 있는 초진대교를 건느면서 보이는 풍경은 여는 육지의 농촌 들판과 같았다.

강화는 개국ㆍ우리 문화의 상징ㆍ국가수호의 섬이다.

단군께서 쌓았다는 첨성단ㆍ고인돌과 같은 선사시대 유물ㆍ세계 문화사에 빛나는 팔만대장경ㆍ고려상감청자,가히 우리 민족ㆍ국가를 대표하는 것 들인데 정작 내가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은 좁은 강화해협를 둘러싼 많은 진지(陣地)와 포대(砲臺)들이다. 말로만 듣던 나라를 지켜온 국난극복의 현장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은 거의 없고 외침만 무려 900번이상 당한 고난의 역사. 조선시대까지는 동북아의 두 큰세력인 중국과 북방민족이 우리를 자기 세력에 편입시키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쟁이고,근대이후에는 러시아ㆍ미국ㆍ영국ㆍ일본등 제국세력의 열강의 다툼속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강화도는 전쟁의 화마에 휩싸인다.

몽고의 침략으로 강화도 천도ㆍ삼별초의 항쟁ㆍ정묘호란ㆍ병자호란의 피난처,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병인양요ㆍ신미양요ㆍ운요호사건에 강화도는 그때마다 최전선이고 망신창이가 된다. 나는 초지진ㆍ덕진진ㆍ손돌목대를 돌아보고 비교적 잘 가꾸어진 광성보(廣城堡)에서 무명용사의 묘인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에대한 설명을 듣고 당시의 전쟁상황를 상상하면서 눈물이났다.

 


.미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John Rodgers)제독은 1871년 4월 콜로라도호로와 군함4척에 1천1백3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도에 나타난다. 그들은 함포와 신식무기로 무장한 19세기 제국주의 국가 군인들이고 우리는 임진왜란시보다 조금 개량된 포와 창칼ㆍ짐승을 잡는 오압지졸 포수들로 싸운다. 그들은 4월 24일 초지진을 함포로 박살내고 광성포대를 습격했다.

결과는 뻔한것. 48시간의 긴 싸움끝에 어재연(魚在淵)장군과 동생 어재순를 비롯한 350명이상이 사망한데 비해 미군은 4명의 사망과 10명내외의 부상자들이 피해의 전부다.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이전투에 참가한 미군이 쓴 글은 내 마음를 흔든다.

조선군대는 놀랄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맨손으로 대항하고 결코 생포되지 않으려고 물에 떨어져 죽거나 자결하는 가하면, 부상자는 우리에게 흙을 뿌렸다.우리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며 오히려 장렬하게 죽은 조선군사에게 경의를 표한다.

 


신미순의총은 미군이 불태워버린 51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병사들을 일곱무덤으로 나누어 묻었다. 여기서 나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쇄국정책의 잘잘못을 말하고 싶지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떤 마음을 가져길래 그토록 죽음을 기꺼히 바치면서 싸울 수 있는 가이다.

한나라의 지도자는 국가에대한 자신의 이데오르기를 밝혀야한다.

그 믿음을 국민에게 전해야 어떠한 행위에도 강력한 힘이 된다. 대원군은 기본적인 원칙을 바탕으로 믿음을 전달하여 그 병사들이 용감하게 싸운 것이라 생각한다. 애국심이 우러난 것이다. 대원군은 어재연장군에게 높는벼슬을 하사하고 죽은 병사들에게도 최선을 다해주었으며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국민들에게 국가의 통치이념을 알렸다.

약소국가의 국민들은 국경밖으로 나가면 서럽다. 자기나라의 위신과 영향력이 작은 까닭에 다른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만약 자국정부까지도 무관심하고 무시한다면 애국심은 고사하고 나라가 있는지 없는 지 모를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를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손해를 입었을 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마음에 국가는 없는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것이 서해교전 전사상자들과 가족이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서해를 지키던 해군 참수리 357정에 북한경비정이 도발하여 많은 장병들이 죽었다. 국민은 축구공에 광분했고정부는 북한을 의식해서인지 의미를 축소시켰다. 전사자의 한 아내는 이 나라가 죽기보다 싫어 훈장을 반납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갔다.

4년전 동티모르에서 실종된 병사의 어머니는 시신을 못 찾아 매일 눈물로 지새우고 있는데 국방부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고 한다. 미전향 장기수는 북에 보내면서 나라를 위해 싸운 북에 남아있는 국군포로에 대하여는 남북대화의 의제로 삼는 성의를 아직 보이질 않는다.

10년전 있었던 로버트김사건도 그렇다. 미군 해군에 근무하면서 주미한국대사관에 기밀를 넘긴 죄로 1996년 체포된 그가 비록 미국법을 어겼지만 그의 행위는 모국에대한 사랑에서 나온 만큼 우리정부는 그를 더욱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근자엔 아프리카나 말래카 해협에 해적이 출몰한다.우리 선박이 나포되거나 선원들이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정부의 관심과 대책이 불만족스럽다.

강한 나라 일수록 하나 단 한명의 국민에게도 최선을 다한다.

더구나 나라를위해 무엇인가했으면 그는 애국자로써 응분의 대우를 받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2차 대전당시 세 형제가 나란히 전사하자 막내 라이언을 구하고자 특공대를 조직하여 싸움이 치열한 최전선으로 투입시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듯, 미국은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을 진정한 애국자로 최대한 예우한다.

2차 대전ㆍ625전쟁시 전사자의 시체를 찾기위해 「그들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며 미국을 팔아서라도 찾을 것같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리고있다.

그결과로 지난 해에는 62년동안 추적끝에 제2차 세계대전중 남태평양에서 숨진 병사3명의 유해를 수습하고 군 최고의 의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이스라엘도 20년전 출격했다가 실종된 한 조종사를 지금도 정부가 발벗고 찾고 있으며 자기 나라를 위해 첩자 노릇을 한 유태계 미국인을 석방시키기위해 끈질긴 노력을 하였다.

 


우리도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 있었다. 얼마전 이번 현충일 전날에 노무현대통령이 처음으로 노병과 전사자자녀와 함께 6.25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들의 시신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나라를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제1의 가치로 삼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한다. 그것이 체제수호의 방패이다.

마니산 정상 첨성단에 오른 것을 끝으로 대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에서 하늘과 단군에게 제사지내는 것도 백성이 하나로 뭉쳐 국난을 당했을때 그것을 극복하게하는 원동력이다.

주자학을 비판하는 것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조선 말기에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명학(陽明學)을 개창한 하곡 정제두(霞谷 鄭齊斗)선생도 한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에 중심을 두고 공부한 느낌이든다. 그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우열을 인정하지 않고 4민평등(四民平等)이라는 당시에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다.

강화도를 떠나면서 강대국에 끼인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는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하는 애국심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강한나라-애국심이 넘치는 국민이 사는 나라이다. 강화도는 애국심의 흔적이다. 보훈의 달 6월에 강화도가 더 크게 보인다.

임영호: 한남대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한남대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74년 총무처 9급 공무원 시험합격, 79년 총무처 7급 국가 공무원 합격, 81년 제2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대전시 법무담당관, 생활체육과장, 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보건사회국장, 교통국장, 민선 2기 3기 동구청장 등 역임. 현 링컨리더쉽연구소 소장, 한국빈곤문제연구회장, 대전대 대우 교수, 저서 -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 (연락처) 011-9483-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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