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창]삶의 의미를 생각케 한 '쿠바여행'


쿠바에서 보는 보름달도 한국에서 보는 것과 같았다. 멀리서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무심하게 들린다. 한국을 떠난지 5일. 이제 조금씩 집 생각이 난다. 쿠바여행 계획은 마감 하루 전 극적으로 결정하였다.

한ㆍ쿠바 문화복지재단에서 지원하는 쿠바의 생태공동체순례(生態共同體巡禮) 계획 덕분이다. 북한을 가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웃 엿보기 차원인가 그동안 쿠바에 대한 눈을 떼지 못했었다.

<노인과 바다>의 흔적, 칵테일의 천국 '쿠바'

쿠바는 황홀하다기 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된다. 분(粉) 보다 더 고운 긴 해안의 백사장, 카리브 해의 이글거리는 태양, 파란 하늘에다 코발트빛의 바다, 160개의 작고 아름다운 섬, 아프리카 최대 노예시장에 스며든 슬픔과 낭만이 흘러내리는 음악, 500년 된 고풍스런 스페인식 건물,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의 흔적이 있는 곳. 모히토ㆍ다이퀴리ㆍ쿠바괴브레 등 칵테일의 천국.

1492년 10월 27일 해질녘 콜럼버스가 바닷가 저편 조그마한 섬을 발견했을 때 “인간의 눈이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탄성을 질렀다. 미인은 용감한 자의 것이라 한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20세기 초에는 미국의 수중에 있었다.

미국끝 마이애미에서 서울 ― 대전 사이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곳은 강한 나라, 돈 많은 외국자본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조그마한 섬나라이다. 이는 쿠바 혁명전 미국에서 만2천명의 땅 투기꾼이 이곳에 몰려와 전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한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정부는 부패하고 강대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횡포를 일삼는 소수 기득권층의 독무대였다.

1956년 11월 별이 유난히 총총히 빛나던 밤, 사랑이 담긴 희망으로 투쟁을 선택한 용기 있는 82명의 혁명동지가 쿠바해안에 상륙한다.
적에게 노출되어 거의 죽고 12명만이 생존하였으나, 그 숫자는 쿠바의 독립을 위해서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였다. 2년 후 그들은 혁명을 성공시킨다.

뜨거운 동지애로 묶였던 체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와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그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긴 말이 필요 없이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억압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 민중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어낸다.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베레모와 별, 붉은 스카프로 상징되는 체 게바라를 존경한다. 확고한 신념으로 행동하는 지식인, 혁명에 대한 열정, 사심 없는 헌신성, 도덕적 고결함이 한테 뭉쳐진 신화 같은 존재이다. 그는 결코 전쟁광이 아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리얼리스트, 이웃의 어려움을 슬퍼하는 휴머니스트. 커다란 이상을 가슴에 품고 행동하는 양심가이다.

체게바라는 쿠바에서는 신과같은 존재

2년 전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에서 그를 보았다.

1951년 의과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500cc 오토바이를 타고 8개월간 남미 여행을 한다. 부조리ㆍ불평등ㆍ가난ㆍ무지의 현장을 보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간다.

다만 그는 슈바이처나 간디 대신 레닌과 마오쩌둥을 선택한다. 그는 자기조국은 아니지만 쿠바의 해방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싸워 성공했으나, 볼리비아에서는 게릴라로 가담, 포로로 잡혀 사살된다.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만은 신이다.「체 게바라를 위하여」라는 노래와 모자, 티셔츠, 각종 관광 상품에 그가 있으며 ,커다란 초상화가 광장에 걸려있었다. 「체 게바라 연구소」가 설립되어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 이다. 그곳에서 체 게바라가 죽었을 때 4살이었던 딸을 만났다. 부전여전(父傳女傳) 이라는 인상이다. 딸의 이름은 알레이더. 자기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다.

나는 알레이더에게 체 게바라 혁명정신을 쿠바에서 아직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비판의 뜻으로 한 질문이다. 사실 혁명 후 종주국을 제국주의 미국에서 공산국가 소련으로 교체하는데 불과했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실패로 쿠바경제가 옛날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적도 있었다. 일부이지만 영리목적의 소규모 시장을 허용하고 있다.

“여건이 변하고 사정이 있어도 국민을 위한 정치ㆍ평등하게 살아가게 하는 제도는 살아있습니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진리는 시장위에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유연하게 대응한다 해도 부(富)의 분배(分配)에 있어서만큼은 사회주의 원리가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쿠바는 그동안 두 번의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ㆍ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이다. 미국은 좌파혁명 열기가 중남미로 확산 될까봐 철저하게 견제하고 봉쇄하고 있다. 경제봉쇄로 종전 수입물자의 80% 이상을 공급받지 못하는 여건에서 달리 살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소련의 막대한 원조와 보조금에 의지했다. 그 마저도 고르바초프 이후 소련이 몰락하자 중단되어 몹시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앉아 울고만 있지 않았다.

자립하여 살 수 있는 새로운 여건에 도전한다. 생태도시(生態都市)로 거듭나는 것이다. 도시 자투리 땅 30만평에 지렁이와 무농약으로 가꾸는 유기농(有機農)으로 채소류를 생산, 세계 최대의 도시농업을 일구었다. 공급이 중단된 석유를 대신해서 수력ㆍ풍력ㆍ태양열 같은 자연을 이용, 전력을 생산하고, 자전거로 이동수단을 바꾼다.

부족한 의약품은 전국각지의 1천여 곳 농장에서 약초를 재배, 대체의료를 연구하고, 동양의약과 통합치료를 하고 있다. 50년 후 자원이 고갈되면 예상되는 미래를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경제봉쇄 때문에 물자는 모자라고, 생활은 어렵다. 미국의 경제봉쇄만 아니라면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기죽지 않고 밝게 사는 쿠바인들이 대단하다.

한미 FTA 결과가 우리사회 미치는 영향도 엿보게 해

쿠바의 체 게바라하면 우리는 박현채(朴玄埰)이다. 1934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그는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보고 노동자로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아버지의 설득으로 중학교에 진학한다. 한국전쟁 중 그는 소년전사 빨치산이 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년 빨치산 문화부 중대장 조원제가 바로 그 사람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현채는 195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 민족경제(民族經濟)ㆍ자립경제(自立經濟)를 주창한다. 자립경제의 핵심은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 시장경제에 대항하는 소농중심의 자치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박현채는 국가주의와 시장경제로서는 서민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꼭 쿠바의 현 체제를 옹호하는 느낌이다.

요즘 개혁이라고 하면 으레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이다. 그러나 얼마 전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빈부격차의 양극화 문제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세계화 속의 신자유주의의 큰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라위 에브델라 교수도 신자유주의가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특유의 성질로 인하여 부자들만의 세상으로 변질시키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한미 FTA 결과가 우리사회에 미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자유가 우리의 성장을 크게 한다해도, 미국시장이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일지라도 패자(敗者)들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그만큼 중요하다.


'관타나메라' 촌뜨기 관타나모 아가씨를 노래하다

쿠바의 노래는 삶의 슬픔이 진하게 덧입혀진 것들이 많다. 애잔하면서 아름답다. 식사 중 너댓명의 싱어들이 앞에서 부르는 노래 중에서 내가 아는 노래가 있어 흥이 났다. <관타나메라>이다. 한국에서는 20여년전 한여자와 두 남자가 함께 부르는 <세샘 트리오>가 이런 남미풍의 노래를 불렀다.

관타나메라(Guantanamera)는 촌뜨기 관타나모 아가씨라는 뜻이다. 우리로 보면 <울산 아가씨>격이다. 400년 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위하여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근대주의 문학의 선구자, 호세 마르티(Jose Marti)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쿠바 국민들이 애창하는 비공식 국가(國歌)이다.

관타나메라.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낙네여
나는 종려나무 고장에서 자라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랍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내 시 구절들은 연두빛이지만,
늘 정열에 활활 타고 있는 진홍색이랍니다.
나의 시는 상처를 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사슴과 같습니다.

관타나모 아가씨는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을까? 1898년 미국은 아바나 항에서 스페인과 전쟁을 해서 이 땅을 뺐으려고 일부러 미군함정을 폭발한다. 이 전쟁에서 이긴 후 관타나모를 군사기지로 영구임대 사용한다. 임대료는 한달이 아닌 1년에 4085달러. 우리 돈으로 400만원 정도. 그때나 100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이 푼돈으로 우리의 강화도 같은 면적을 합법적으로 강탈하고 있다. 관타나모 미수용소. 오늘날 강대국 미국이 보여주는 야누스적인 모습이다. 겉보기보다 무서운 나라이다.


쿠바는 우리나라와 먼 거리에 있는 나라이다. 비행기로 20시간 가까이 걸린다. 사회주의 체제로 우리와 수교도 안 된 상태이다. 한국인 관광객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이곳에서 한국의 피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저녁 시간을 이용 이 분들을 만났다.

일제 강점기인 100년 전 멕시코로 이민 왔으나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이웃 쿠바로 이주한 한인들의 후손들이다. 자기 할아버지ㆍ할머니가 1905년에 이곳에 왔다는 68세인 한 분은 여느 한국인과 같았다. 소련에 유학, 30년간 군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연금으로 생활한다. 그는 한인 사업가가 개설한 한글학교를 다니고 있다. 식탁에 있는 물건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기억하며 또박또박 우리나라말로 말한다. 우리는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같은 핏줄임을 확인했다. 눈물이 났다.

쿠바에서 미국달러는 통용이 안 된다. 인천공항에서 달러로 환전한 후, 밴쿠버 공항에서 다시 캐나다 달러(Canada Dollar)로, 쿠바공항에서 페소(peso)로 바꾸었다. 그런데 10페소짜리 화폐에 전기혁명이라는 고딕체 글씨 아래 이동식 발전기 도안이 들어있었다.

쿠바는 전력이 부족하다. 지난 세계올림픽 대회기간 중 정전으로 방송이 중단되어 국민의 원성이 크게 일자 관계 장관을 해임시킨 사례도 있을 정도다. 이 화폐속의 발전기가 한국의 현대중공업(現代重工業)이 만든 발전기(發電機)라며 북한 대사관에서 7년간이나 근무하고 우리나라에서도 1년 동안 살아 한국말을 곧 잘하는 쿠바현지 안내인 펠리페씨는 말한다, 몇일 전 호텔식당에서 현대중공업 직원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발전기 설치를 하기위해서 왔단다. 아바나 시내에서 심심치 않게 현대자동차를 보는 느낌도 좋다. 세계 곳곳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쿠바의 포로가 되다

세계 유일의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인기는 여전하다. 생활의 질에 있어서는 수준급인 의료와 세계 최저의 문맹율, 그리고 이는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제공하고, 기초생활 물자는 배급으로 염가에 보급한다. 그러면서 비효율적인 관료체제에 대한 개혁과 각종 NPO(Non Profit Organization)를 비롯한 커뮤니티 중심의 지방분권을 실시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경직성을 탈피하기위해 시장과 경쟁원리를 끌어들여 효율을 높이고 있다.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역동적인 경제와 평등과 연대가치를 조화시키는 앤서니 기든스(Antony Giddens)의 <제3의 길>처럼 쿠바에서는 사회주의 존재을 지속시키기 위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남미의 극심한 빈부의 차이와 다국적 기업의 횡포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주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 강대국에 흡수된다는 종속이론(從屬理論)에 동조하게 될 것이고, 아무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우월하다해도 세계 유일의 피델 카스트로 사회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미련은 남을 것 같다.

피델 카스트로는 19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할 때 국민들이 굶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국방비의 55% 삭감하여 민생으로 돌렸다. 2001년 허리케인 미셸이 급습해서 미국은 수천 명이 죽었어도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의 주도하에 주민 300만 명을 피난시켜 단 한사람도 죽지 않게 했다. 국가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다. 핵개발을 하느라 수많은 동포들을 굶기고 죽게 하는 북한의 집권층 하고는 다르다.

이글을 쓰면서 나는 쿠바의 포로가 된 기분이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에 자리 잡을 것 같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나라.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느리게 사는 사람들. 흐르는 강물처럼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풍경들. 시가(Cigar)를 입에 문 노신사의 내뿜는 연기가 황홀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쿠바는 우리를 유혹할 만한 것들이 많다. 체 게바라. 바람과 햇볕, 리듬, 술, 바다를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나라이다. 그러면서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의 이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로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임영호: 한남대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한남대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74년 총무처 9급 공무원 시험합격, 79년 총무처 7급 국가 공무원 합격, 81년 제2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대전시 법무담당관, 생활체육과장, 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보건사회국장, 교통국장, 민선 2기 3기 동구청장 등 역임. 현 링컨리더쉽연구소 소장, 한국빈곤문제연구회장, 대전대 대우 교수, 저서 -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 (연락처) 011-9483-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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