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라는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지만 만약 필자가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면 영화제목은 '게으른 대통령'쯤 될 것이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계의 소망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판국에 '게으른 대통령'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새대통령만큼은 너무 부지런하지 않았으면 싶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녹록치는 않았으나 국무총리의 국회인준도 통과됐고 파격성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하마평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내각도 발표됐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늘 그렇듯이 새로 시작하는 일 앞에서는 희망과 기대감이 크게 마련이다.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를 새로 문 열어도 주인이나 고객 모두 일정 부분 기대감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주인장이야 어떻게든 장사가 잘돼 투자 한 것 이상으로 돈을 벌기를 소망할 터이고 손님들은 손님들대로 다른 가게와는 다른 품질과 서비스, 가격을 원할 것이다. 손님들의 취향 또한 각양각색일 것이다. 어느 사람은 야채를 많이 갖다 놓으라고 할 테고 어느 사람은 유제품 품목이 많기를 바랄 테고 또 다른 사람은 다른 품목을 요구할 것이다.

각계 요구사항 봇물처럼 쏟아져

그러나 조그만 구멍가게로서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주문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구멍가게의 규모와 자금력 등등을 고려해서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주인장의 경영철학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멍가게의 여건을 헤아리지 못한 채 당장 돈 벌 욕심에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다가는 아마도 황소를 흉내 내는 동화속의 개구리처럼 배가 터져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새대통령이 당선되고 인수위가 출범하자 정리되지 않은 갖가지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각계각층의 요구가 홍수를 이뤘다. 재계는 재계대로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교육, 문화, 과학, 여성계 등등 각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요구사항들을 숨돌릴 사이없이 쏟아내고 있다. 게중에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바램들도 있지만 5년 임기동안 하나에만 매달려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 사안들도 부지기수다. 이것들을 다 수용하려면 몇 십 년 장기집권으로도 부족할 판이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5년뿐이다. 새정부는 5년 안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저것 다 손대다가는 죽도 밥도 아닌 얼치기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더구나 젊은 대통령 곁에는 연륜과 경륜보다는 아직은 패기가 넘치는 30-40대가 적지 않게 포진해 있어 자칫하면 의욕과 힘이 넘쳐 물불 가리지 않고 많은 일들을 벌이며 앞만 보고 돌진해 나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서 대통만이라도 좀 게을렀으면 좋겠다.

의욕 넘쳐 과욕 되지 않았으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덕목으로는 시대와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국정수행 능력과 지도력, 도덕성 등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식적인 대통령상과는 달리 비록 농담처럼 주고받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부지런한 대통령과 게으른 대통령론이 새삼 마음을 끈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에는 4부류가 있다고 한다. 물론 우스개소리지만 말이다. 첫째가 머리도 좋고 부지런한 대통령, 둘째는 머리 좋고 게으른 대통령, 셋째 머리 나쁘고 게으른 대통령, 넷째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대통령이다.
이중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상은 상식대로 한다면 당연히 첫 부류다. 명석한 두뇌와 몸을 사리지 않고 맹렬히 일하는 대통령. 일반인이라면 당연히 첫 손 꼽히는 덕목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대통령상은 두 번째 부류인 '머리 좋고 게으른 대통령'이다.
물론 최악은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대통령이다. 이쯤 되면 필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이다.
앞뒤 안 재고 안해도 될 일까지 부지런을 떨어가며 각종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야말로 국정을 혼란과 소모로 몰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대통령은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좋고 부지런한 것도 이에 못지 않다.
의욕이 넘치면 과욕이 되기 십상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함정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래서 새대통령은 좀 게을렀으면 싶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농익은 정책으로 시생착오를 최소화 시킨다면 국민들이 조금은 덜 피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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