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조나라는 진의 보복이 두려워 감히 그를 받아줄 수 없었다. 초회왕은 하는 수 없이 위나라로 발길을 돌렸지만 진소양왕이 보낸 군사들에게 잡혀 다시 함양성으로 압송되었다. 결국 초회왕은 속앓이를 하다 화병을 얻어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초회왕이 납치 된지 21년이 지난 후 진나라는 초를 수차 공격하여 수도 영(郢)을 점령하는 등 초나라의 세력을 끊임없이 약화시켜왔다.진왕은 한때 연나라를 정벌하던 군사들을 왕분이 이끄는 군대에 통합시켜 초를 공격, 10개의 성을 얻은 적도 있었다. 때문에 진왕은 초나라의 침공에 단단한 자신감을 가지
그는 초회왕에게 친서를 보내 화친할 것을 청하고 무관에서 동맹을 맺기로 약속했다. 화친하려던 마음이 간절했던 회왕은 대신들의 의중을 물었다.“아니 되옵나이다. 대왕마마. 진나라는 간교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이어서 필시 무슨 속내가 있을 것이옵나이다. 속지 마시옵소서.”중신들은 기를 쓰고 말렸다. 그들은 지난날 장의가 속였던 것을 반추시켰다. 하지만 회왕은 달리 선택할 길이 더 이상 없다며 약속한 날 무관으로 향했다.무관은 좁은 계곡에 형성된 국경도시였다. 신하들을 거느린 회왕의 무리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이 나와 그
“왕후, 진이 쳐들어온다면 싸워야지 않겠소. 그렇다고 과인을 능멸한 자를 그냥 살려 보내란 말이오?”회왕이 격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그래도 그를 놓아주고 진과 화해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옵니다. 이 일은 분노로 해결할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왕후는 끊임없이 회왕을 설득했다. 하지만 회왕의 분노는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다.몇 날이 지났다. 장의의 압송행렬이 궁성으로 들어올 즈음이었다. 왕후 정수는 회왕을 찾아가 단호하게 말했다.“대왕께서 그토록 고집을 피우신다면 태자와 저는 강남으로 건너가 진으로부터 죽음을 면하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굴로 들어가란 말이 있질 않나이까. 대왕마마. 꼭 살아와서 충성을 다하겠나이다.”“그래도 아니되오. 짐이 그대를 잃는다면 검중지역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걱정 마시옵소서. 소신에게 나름대로 방책이 있사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혜문왕은 여러 차례 허락하지 않았으나 장의는 뜻을 굽히지 않고 왕을 설득했다. 결국 장의는 혜문왕의 윤허를 받고 그길로 초나라로 향했다.진나라 중신들도 승상이 초나라에 들어가면 필시 죽을 것이라며 가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집대로 초나라로 말을 몰았다. “이 몸
사신은 울분을 되새기며 초나라로 돌아가 버렸다.그는 초회왕에게 이런 사실을 그대로 보고했다. 그제야 회왕은 장의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격분한 초회왕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군사를 보내 진나라를 정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형세는 이미 초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진이 제나라와 동맹을 맺었으니 진을 친다면 제나라가 도리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지경이었다.이점을 안 진진이 초회왕에게 진언했다.“대왕마마. 엎질러진 물을 이제 와서 어찌하겠나이까. 도리어 영토의 일부를 진에게 주고 화친을 맺으심이 가할 줄 아뢰옵나이다.”“뭐라 영
물론 초나라 사신은 초회왕에게 장의가 크게 다쳐 약속을 이행치 못하고 있다는 전갈을 보냈다. 그 말미에 초나라가 제나라와 절교를 분명히 하지 않아 약속을 이행치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초회왕은 사신의 전갈을 받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단정 짓고 이번에는 제나라에 사람을 보내 왕의 면전에서 그를 크게 꾸짖었다.“제나라 왕은 듣거라. 초나라는 그대의 나라와 동맹을 파기하고 이제부터 진나라와 동맹을 맺을 생각이건만 어찌하여 그 끈을 놓으려하지 않느냐. 이것은 무례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의적인 모욕을 당
“대왕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장의의 말에 속지 마시옵소서.”그러자 조당이 서리를 맞은 듯 조용했다.“그 무슨 말인고?”“진나라가 우리를 가벼이 보지 못하는 것은 제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옵나이다. 만약 제나라와 절교하면 진은 우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옵나이다. 그리 된다면 어찌 진이 우리에게 땅을 내주겠나이까. 만약 우리가 장의에게 속게 된다면 서쪽으로 제나라와 등을 지고 북쪽으로는 진나라라는 우환을 접하게 될 것이옵나이다.”장의는 뜨끔했다. 초나라에 자신의 계략을 읽고 있는 자가 있구나 생각하며 더욱 간교하게 말을
그리고 난 뒤 여러 해가 지났다.장의는 진나라로 들어가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제야 장의는 초나라 재상에게 그날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내용의 전갈을 정식으로 통지했다.“지난날 나와 당신은 한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셨소. 그때 나는 당신의 옥벽을 훔치지 않았소. 그럼에도 당신은 죽도록 곤장을 쳤소. 그러니 이제 당신의 나라를 잘 지키시오. 기회가 오면 내가 당신의 나라를 훔치겠소.”소름끼치는 보복성 서찰이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당시 진나라가 초나라를 치기위해서는 먼저 초. 제 동맹을 와해시켜야 했다. 초. 제 동맹은 초나라를
□초나라를 접수하다.빈객들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또 재상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지도 않았다. 재상은 그런 장의를 눈여겨봤다. 술자리를 파하고 며칠이 지났다. 재상은 그제야 자신의 집에 있던 옥벽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날 함께 술을 마셨던 빈객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우리 집에 선대부터 가보로 전해져오는 옥벽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날 없어진 것을 훗날 알았소. 누구의 소행으로 추정이 되는지 빈객들께서는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오.”재상이 빈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빈객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지 않았다.
“수공이라면 피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위왕은 어깨를 떨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분이 지루한 기다림 속에 함락을 넘보고 있는 동안 서서히 물이 차올라 대량은 온통 물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성곽은 무너져 내렸고 여기 저기 위나라 백성들의 사체가 떠다녔다. 연일 성곽내부에서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꼬리를 이었으며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도 하늘을 찔렀다.“아직 백기가 나붙지 않았느냐?”왕분은 진영에서 대량성을 굽어보며 말했다.“장군 아직 백기를 내걸지 않고 있사옵니다.”“기다려라. 그러면 저들이 백기를 내걸 것이다. 그렇지
물론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매일같이 잔치를 베풀고 아녀자들과 음란한 밤을 보내기 일쑤였으므로 어떤 출정보다 흥미진진했다.“내 수많은 전란을 치러봤지만 이번만큼 재미를 본적도 없구만.”늙은 병사가 말했다.“그럼요. 왕분 장군께서 살펴주신 덕분이지요.”병사들은 너도 나도 왕분을 칭송했다.“전장에 나온 졸개가 여자 맛을 본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이야깁니까?”젊은 병사가 말을 거들었다.“그래도 조심해야 하네. 왕분 장군께서는 좋을 때는 좋지만 군율에는 엄한분이야. 그러니 각자 알아서 군율을 잘 지키도록 함세.”늙은 병사가 충고했다. 때
그러나 왕분의 침공은 그곳에서 멎었다. 성을 향해 총공세를 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냥 대량성을 포위한 채 그렇게 있었다.졸지에 기습을 당해 뒤통수를 맞은 위나라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슨 영문으로 갑자기 수도를 포위했는지 혹은 이번 침공이 정말 정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위협을 가하기 위한 것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왕좌왕 하며 진나라 병사들의 움직임만 성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위나라 수도 대량은 황하에 비해 지대가 낮아 큰비가 오면 물난리를 자주 겪는 그런 곳이었다. 넓은 평
□위나라를 거두다.위나라는 중원제국 가운데 가장 강대한 국가였다. 위혜왕(기원전 369-319)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중원의 패권을 장악하기도 했었다. 진나라가 동진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부딪친 강력한 나라가 위나라였다.하지만 세월이 흘러 전국시대 말기에는 국운이 쇠약 해져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심지어 진왕 16년에는 위나라 경혼왕이 여읍을 진나라에 바치며 침략하지 말아 줄 것을 간청할 지경에 이르렀다.진왕이 조나라를 치러 갈 때 길을 열어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진왕은 그동안 위나라 침공을 미루어
“내 그대를 사로잡으려다 일을 그르쳤노라. 그대가 빼앗은 제후들의 영토를 돌려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내어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는데. 원통하도다.”형가가 채 말을 끝내기도전에 진왕의 장검이 그의 목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태자 단의 계략에 의해 암살이 기도됐다는 사실을 안 진왕은 격분했다. 그는 곧이어 조정에 중신들을 모아놓고 연나라를 치는데 한시도 지체하지 말 것을 명했다.“과인이 오늘 끔찍한 일을 당할 뻔 했소. 연나라 태자가 자객을 보냈다는 것은 용서 못할 일이오. 당장 연을 쳐서 연왕과 태자를 잡아오시오.” 진왕의 얼굴이 어느 때보
형가가 왕이 앉은 단 앞에 이르자 내관이 함을 받아들어 진왕 앞에 내보였다. 진왕은 그가 번어기란 것을 확인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단아래 무릎을 꿇고 있던 그들에게 다가갔다. “번어기의 수급을 거두어온 그대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 그대들의 이름이 무엇이라 했는가?”“연에서 온 형가와 진무양이라고 하옵니다.”“형가와 진무양이라. 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구나. 아무튼 잘 왔노라. 독항지역의 지도도 구해 왔다고 했느냐?”“그러하옵나이다. 대왕마마. 독항지역의 지도는 기밀이라 구하기 어려웠으나 내밀한 친구가 이를 구해주어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이 품고 있던 예리한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누구라도 자객이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 매일같이 갈아놓았던 칼이었다. 그러므로 칼날이 종이 짝처럼 날카로웠다. 촛불에 번쩍이며 눈을 파고들었다. 번어기는 잠시 사념에 잠긴 듯하다 이내 예리한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단칼에 손잡이까지 깊이 박혔다. 그는 비명도 없이 그 자리에 조용히 널브러졌다.이를 지켜본 형가는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간단하게 제례를 올렸다. 곧이어 눈물을 머금고 그의 수급을 거두어 미리 준비한 함에 담았다. 아울러 미리 구해
“그 비책이 무엇이오?”“진왕은 반역을 꾀하고 우리나라로 도망쳐온 장수 번어기를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를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금을 내리겠다고 공포한 상태입니다. 이번에 그의 수급을 거두고 우리의 독항지역 지도를 가지고 진왕에게 간다면 그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형가가 말했다. 하지만 태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 할 수는 없소. 그는 내가 진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를 도운 사람이오. 그런 사람을 제물로 희생시킬 수는 없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태자 단이 잘라 말했다.“태자마마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술상을 차리고 그와 단둘이 대적하며 술을 마셨다.술자리는 이른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취기가 오르는 동안 단은 수시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의중을 내비치지 않았다. 다만 형가의 인물됨만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거사를 완벽하게 이뤄낼 수 있는 인물인지 혹은 변절할 인물인지를 가늠했다. 술자리는 3일 낮밤 동안 계속됐다. 술이 취해 떨어지면 태자궁의 어린 나인을 붙였다. 단은 형가가 그녀를 탐하며 내뱉는 취설도 모조리 보고토록 했다.“내 무슨 영화로 너같이 고운 나인과 접하고 있단 말이냐?”취
□ 형가의 암살기도와 연의 멸망.“연나라를?”“그러하옵나이다. 연나라는 본시 조나라와 인접하고 있어 왕전장군이 벌써 그들의 코밑에 가 있나이다. 이 여세를 몰아 연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위나라를 거두심이 가할 줄 아뢰옵나이다.”“그도 좋은 생각이오.”진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중신들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위나라를 치고 숨을 돌린 다음 연나라를 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논의는 며칠 계속됐다. 진왕은 왕전이 아직 조나라를 완전히 평정치 못하였으니 그 일이 끝난 뒤 다시 논하기로 하고 회의를 중지시켰
진왕은 어머니의 손을 더욱 거세게 잡으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애와 정분을 쌓아 자식을 둘씩이나 낳고 그것도 모자라 노애가 반란을 일으키려할 때 그것을 묵인했던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게다가 선왕의 왕후로 있으면서 문신후 여불위와 정을 통하며 섭정했던 시절이 스치자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어린 자신을 돌보기는커녕 도리어 권력의 중심에 서기위해 자신을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어머니. 그때는 어머니가 아니라 정적이었다. 그래서 유독 정이 나지 않았다. 뇌리를 스치는 사건들이 가슴속 깊은 곳에 담겨있던 분노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