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던 차에 진나라가 공격해오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수도 임치가 포위된 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항차 이일을 어찌하면 좋겠소?”만취한 제왕이 울면서 물었다.후승은 즉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연신 술잔을 들이키며 무언으로 대답하고 있었다.분위기가 심각한 것을 알아챈 나인들은 고개를 떨구고 훌쩍거리며 술을 따랐다. 속이 내비치는 옷을 입고 애교를 떨어야 할 일이었지만 내려앉은 분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왕은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어깨가 흔들리도록 슬피 울었다. 나인들은 함께 울며 고운 천으로 제왕
그녀는 이렇게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 강경한 태도로 진의 도전에 회답했다. 제나라는 군왕후가 살아있는 동안 진을 잘 견제 했다. 이 때문에 건왕이 재위한 40년 동안 큰 전란을 격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다음부터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제왕 건(建)은 유약하기 이를 데가 없어 막중대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줄곧 재위동안 어머니 군왕후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다. 그러다 군왕후가 임종에 이른 무렵이었다.군왕후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왕, 국사를 책임지고 수행할 대신을 찾으시오.”“알겠나이다. 왕후마마. 염려를 거
제양왕은 6년이 지난 후 연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연나라를 공략하여 잃어버렸던 옛 땅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옛날의 제나라 위세를 회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왕으로 재위하던 19년 동안 제나라에는 변란 없이 평화로웠다.제양왕이 죽고 태자 건(建)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건은 유약하여 어머니 군왕후에 의존하여 정치를 펼쳤다.군왕후는 본시 대담하고 지기가 넘쳤으며 적극적이었기에 모든 정치를 직접 관장했다.한번은 진나라 소양왕이 사신을 통해 군왕후에게 옥을 깎아 고리로 만든 옥련환을 선물로 보냈다. 그러면서 친서를 동봉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세상이 조용해지자 법장이 태사를 찾았다. 태사는 사랑채에 혼자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오늘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태사 나으리를 찾아뵈었사옵니다.” 법장이 무릎을 꿇고 태사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태사는 그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딸 문제도 있고 해서 몸을 돌리고 앉아 책을 보는 척했다.“할 말이라니?”태사는 책장을 넘기며 무표정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혹여 딸을 달라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눈길도 한번 주지 않았다. 속으로 벼락을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상하게 들어줄 일도 아니었다
사실 법장은 당돌하면서도 총명한 ‘군’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하인인지라 그녀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참에 ‘군’이 먼저 유혹을 하고 있으니 못이기는 척하며 받아줄 따름이었다.법장은 ‘군’처럼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팔딱거리는 부푼 가슴과 가냘픈 허리가 손끝에 예민하게 닿았다. 그녀의 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있었다. 손이 열기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젊은 남녀의 숨길이 불규칙적으로 부딪혔다.말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두 사람은 짐승처럼 뒤엉켜 어둠이 부서지도록 서로를 탐닉했다. 그녀는 이미
삼경이 막 지날 시각, ‘군’은 대문 밖에 나와 그를 기다렸다. 세상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중천에 뜬 보름달만 유난히 밝은 날이었다. 잠자리를 뒤척이다 법장이 상전과의 약속을 어길까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밖을 나왔다. ‘군’은 어둠이 내린 밤이라 그런지 대담했다. 법장의 손을 덥석 잡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방앗간 쪽으로 그를 데려갔다.“아씨 어디로 가시려구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나 나누자꾸나.”하인인 신세에 태사의 따님이 이끄는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군’은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아랫것 임에도 너무나 곱다고
"그대의 이름이 뭔고?”“저는 상교라고 하옵니다.”“고향은 어디며 선친께서는 무엇을 하였기에 젊은이가 걸식을 하고 다닌단 말인고?”태사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저는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선친을 알 수 없으며 고향도 제대로 알지 못하옵니다. 다만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을 뿐이옵니다.”“뿌리도 없는 나무를 거두어 내 무엇에 쓸고?”“태사 나으리. 비록 뿌리는 없지만 둥치는 튼튼하니 키운 다음 재목으로 쓰시면 되지 않겠나이까. 나무는 둥치를 쓰지 뿌리를 쓰는 것은 아니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태사는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금방 알아보았다.
제나라도 한때는 강성했던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284년 한. 조. 위. 연. 진 5개국이 연합하여 제나라를 친 이후부터 약화일로를 걸었다. 당시 연합군이 제를 치게 된 것은 연나라 때문이었다. 제와 연은 묵은 원한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 원한은 망국으로 치달을 뻔 했던 ‘대 사건’을 중심으로 빚어졌다.옛날 연나라 왕 회(瞺)는 무능하여 재상 자지(子之)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여 정사를 펼쳤다. 얼마나 무능했던지 나중에는 그를 옥좌에 앉혀 국사를 처리토록 하고 자신은 재상의 신하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손으로 제대로 국
한편 이사는 진왕의 부름을 받고 대전에 나갔다.진왕은 제나라만 남았으므로 계책을 찾고 있었다. 그는 용상에 앉아 있다 이사를 보고 반기며 앉을 것을 권했다.이사는 큰절을 올리고 단아래 조용히 앉았다.먼저 입을 연 것은 진왕이었다.“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제나라뿐이오. 과인이 많은 군신들과 공략방법을 숙의했지만 탐탁지 않아 그대를 불렀소. 군신들은 전 병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멸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어찌 내키질 않소. 좋은 계책이 없겠소?”차를 권하며 물었다.이사는 늘어진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찻잔을 받아 마시고 나직하게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어린 내관이 중년 상궁의 손에 이끌려 내실로 끌려가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눅 든 아이처럼 기어들어 갔다. 미소년이라 칭얼거리는 소리 같았다. “잠시만 쉬었다 가래도.”상궁은 풋내 나는 사내의 가슴팍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심장이 화급하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순진하기는. 내 너를 어쩌려는 것이 아니질 않느냐.” 상궁이 몸을 뒤로 빼는 사내의 허리를 다부지게 안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내관은 끌려가며 버둥발을 쳤다. 흘러내리는 내시 복을 주체하지 못해 어
계집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조고는 본시 환관으로 궁에 들어왔으므로 씨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사내구실조차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계집은 조고의 바지춤 속으로 손을 넣어 차고 있던 은장도를 만지작거렸다. 밋밋하게 생긴 은장도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직 쓸 만했다. 칼날도 폐부를 찌르기에 충분했다.“임자. 노리개 없는 은장도는 만지는 맛이 좀 덜하지 그려.”조고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무슨 말씀을요. 노리개를 화려하게 달았다고 다 좋은 은장도인가요?”계집이 배시시 웃으며 농담을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은장도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조고
□마지막 왕국 제나라이제 남은 것은 제나라뿐이었다.진왕은 뛸 듯이 기뻤다. 천하평정을 위해 칼을 뽑은 지 10년 남짓. 벌써 6국 가운데 5국을 멸하고 제나라 만 남았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왕은 매일 승전보를 전하는 장수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들을 격려했다. 아울러 적국에서 수탈한 재물들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그 속에는 물론 계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진왕의 군대는 사기가 충천했다. 함양궁도 분위기가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왕의 심기가 불편할 때는 내관들조차 대전에 드는 것이 죽음만큼이나 싫었지만 늘 웃음소리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태자 단의 수급을 거두어 진왕에게 바치면 멸국 만은 면할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어찌 그렇게 한단 말이냐?”연 왕이 역정을 내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대왕마마. 지금 도망을 가고 있지만 그 끝은 어디오니까? 멸국 말고 또 무엇이 있겠나이까? 태자의 목을 바쳐 사직을 보전할 수 있다면 태자의 입장에서도 보람이 있는 일이 아니겠나이까? 지금 남은 방도는 그것뿐이옵나이다. 시간을 번 다음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옳을 것이옵나이다.”공자 명은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를 물러났다.연 왕은 명의 책략을 곰곰이 되씹다 다시 그
이듬해였다. 진왕은 여세를 몰아 연나라의 잔당을 멸하겠다고 결심했다.형가의 암살 기도가 있었으므로 더 이상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총력전을 벌여서라도 연나라를 없애야 했다. 그것이 보복의 끝이었다. 진왕은 추가 병력을 왕분에게 내려 보내고 끝까지 추격하여 연왕과 태자를 생포하라고 명령했다.한편 형가의 암살기도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쫓기고 있던 연왕과 태자 단은 정예병들을 이끌고 요동반도로 달아나 몸을 숨기고 있었다.그들은 달아나면서 책략을 구사했지만 전세를 전복시킬 방도가 나오질 않았다.신하들은 전전긍긍하며 자신들의 살길만을
“나는 지금 이 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로 가고 있는 길일세. 지금 나라 안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가. 60만 대군이면 궁성을 지키는 병사들과 변방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병사들이 나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야 그렇사옵니다만.”“임금이 생각할 때 아무리 믿는 장수라 할지라도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초나라에 가서 나라를 세울 수도 있고 혹은 회군을 하여 왕권을 탐할 수도 있다고 말일세. 그런 가운데 조악한 무리들이 간계를 부려 내가 흑심을 품고 있다고 간한다면 나는 어찌되며 이번 전쟁은 또
왕전은 여러 차례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이번 출정에서 초나라를 멸하고 돌아오면 신에게 좋은 전답과 저택을 내어 주시옵소서. 그 약속만은 지켜주셔야 하옵니다. 대왕마마.”의외의 청이었다.“아니 좋은 전답과 저택이라니…….장군께서도 사욕을 갖고 있단 말이오?”“사욕이 아니옵니다. 제 자손들을 위한 것이오니 부디 청을 거두어주시기 바라옵니다. 대왕마마.”왕전은 더욱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조아렸다.진왕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즉답하지 않고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늙은 장군의 모습이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노망기가 든 것은 아닐까
아직 속세의 미진조차 묻지 않은 몸이기에 손끝이 매끄러웠다. 한입에 들어갈 듯 앙증맞은 몸매가 조바심을 더했다. 제 말로는 다 익었다지만 왕전의 눈에는 아직 솜털을 뒤집어쓴 병아리였다. 왕전은 깨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생금을 만지듯 어린 계집을 누이며 바지춤을 풀었다. 전장에서 단련된 몸이라 아직은 쓸 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난 황소처럼 박동이 달아오르는 것으로 보아서도 아직은 살아 있었다. 다소 몸이 처지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린 계집 하나쯤이야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치루는 것은 마음 같지
졸지에 손녀 같은 계집을 대하고 있자니 말문이 막혔다. 왕전은 허허로이 술잔을 들었다.“한잔 길게 들이켜시고 소녀도 한잔 주시옵소서. 이시대의 명장이신 왕전 장군님의 잔을 받는다는 것은 크나큰 영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그래 내 잔 받기를 소원하더냐?”“그렇사옵니다. 지아비로 모실 대장군님이신데…….”“지아비라니?”“이 밤에 수발을 모시면 지아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허 그 참. 보자보자 하니 더욱 맹랑하구나.”계집은 술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안주를 집어 노장군의 입에 가져갔다. 음식을 흘리자 이내 자신의 저고리 자락으로
진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내관 조고는 서둘러 왕전에게 진왕이 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보냈다. 왕전은 몸이 몹시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사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왕의 명이었으므로 끝내 거부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며칠이 지난 다음 노구를 이끌고 진왕 앞에 나아갔다. 수염을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아 초췌한 모습이었다.“왕전장군 지난번에는 대단히 미안했소. 장군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내 불찰이었소. 이번에 60만 대군을 줄 테니 꼭 초나라를 멸하도록 하시오.”진왕은 왕전에게 말했다. 하지만 왕전의 대답
이를 지켜본 진왕도 더는 그를 만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그렇게 하도록 윤허했다. 왕전은 그길로 사직하고 고향 빈양으로 내려갔다.진왕은 이신을 총사로 하고 몽염을 부장으로 삼아 그들에게 20만 명의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치도록 했다.초나라 정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로 군사를 몰아간 그들은 처음에는 계속 승리를 거듭했다.이신이 평여 지역을, 그리고 몽염이 침 지역을 공격하여 초를 크게 격파했다.승전보가 전해지자 진왕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자부했다.하지만 그것도 얼마지 않았다. 적을 얕본 이신이 경솔하게 너무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