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앞으로는 각 시도(市道)의 국장 자리를 시도의원이나 민간인이 맡을지도 모른다. 지방정부에 ‘지방장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경기도는 남경필 지사가 들어온 이후 도의원 5~10명을 지방장관으로 임명하려 시도해왔으나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행정자치부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이 강화되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지방분권 공화국’이 목표라며 강력한 분권 의지를 거듭 밝혔다. 지방분권 개헌을 위한 로드맵 초안도 내놨다.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 등 4대지방자치권을 헌법에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과감하게 넘기겠다는 게 문 대통령 입장이다. 그 권한의 수준은 개헌 로드맵이 완성되고 입법과정을 거쳐야 구체화될 것이다.

대통령이 장관 임명하듯 시도지사가 민간인 지방장관 임명?

‘지방분권 공화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개헌이 이뤄진다면 지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지방장관제 시행도 그 중 하나다.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하듯 시도지사가 지방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자치단체 산하 공기업 사장처럼 민간인이 지방장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경기도 방식처럼 시도의원들이 지방장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지방장관제는 사실상 의원 내각제에 가깝다.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지방정부’가 되려면 인구가 500만 명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전 충남북이 합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김 의원은 지방분권이 성사되면 충청권 시도(市道) 통합운동을 펼치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전체 통합이 당장 어렵다면 대전 충남만이라도 먼저 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방장관을 두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도통합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인사 문제만이 아니라 지방 살림에 필요한 재정 문제도 지방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원칙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걷히는 세금의 80%를 중앙정부가 걷고 20%만 지방자치단체가 걷고 있다. 앞으로는 지방정부가 40%까지 걷어서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지방조례)을 만드는 것도 주민들을 위한 복지 계획도 이젠 지방 스스로 할 수 있게 하자는 게 분권의 방향이다. 

모두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방에서 요구해온 내용들이다. 내년 개헌이 성공한다면 지방으로선 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1990년 대 초 김영삼 정부에 의해 지방자치가 부활되었으나 지방분권의 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시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만 선출직으로 바뀐 정도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지방분권 공화국’수준으로 바뀐다면 지방자치 부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언론 활성화 없다면 분권은 약 아닌 독 될 수도

그러나 이는 아직 멀리서 바라보는 푸른 초원에 가깝다.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현장에는 흙탕물이 괴어 있고 위험한 독충도 있는 안전하지 못한 초원이다. 여기에서 즐기려면 여러 ‘준비물’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커지는 지방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장치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지방언론이다. 

언론이 없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신문 방송이 없다면 여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야당은 어떤 궁리를 하며 싸우는지도 알 수 없다. 4년마다 이뤄지는 국민의 심판은 기본적으로 이런 언론 정보가 기준이 된다. 언론이 아니었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일어날 수 없다. 언론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지방에선 이런 역할을 해줄 언론이 거의 없다. 지방의 ‘슈퍼갑’인 시도지사가 언론의 최대 스폰서가 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시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나마 국회 국정감사라도 받아야 알 수 있는 지경이다. 지방에도 인터넷과 SNS로 정보가 넘쳐나지만 지방권력에 관한 한, 언론은 암흑시대로 돌아가 있다. 

지방언론을 살리지 않으면 지방분권은 지방권력을 위한 분권일 뿐이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권력은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다. 이미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상당수는 그런 상황에 들어가 있다고 본다. 지역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구속되고 있다는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공사 비리, 인사 비리가 갈수록 판을 치고 있다. 

시도마다 감사원 분원 설치 바람직

문재인 정부는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을 보다 수월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나 현실적 효과는 의문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불필요한 분란의 도구만 될 수도 있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시도마다 ‘감사원 분원’을 두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강화하고 상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방공무원 출신 지인 한 분에게 물어보니 같은 의견이다. 감사원 감사는 공무원들이 인정하는 가장 권위 있고 전문적인 감사라고 한다. 여타의 중앙부처 감사는 차라리 줄이고 감사원 감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필수품’은 언론이다. 지방언론 활성화 없이 지방분권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제도나 법률 하나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다. 만약 내년에 시도지사 민간인을 ‘지방장관’으로 지명하고 인사청문회가 열린다면 어떤 장면이 벌어질지 대전시민들은 벌써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런 장면을 바꿀 수 없다면 지방분권에 기대할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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