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40>질병과 환자의 개념 변화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중세시대의 교과서나 삽화에는 질병이나 환자가 악마나 괴물로 묘사돼 있다.

과거부터 질병은 신의 저주로 사람의 몸에 악마가 깃든 것이고, 암이나 종양은 악마의 장난 산물로 생각해왔기 때문인 듯싶다.

같은 관점에서 의사는 이러한 병을 막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즉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몸에 깃들어 환자의 몸을 잠식한 불가사의한 악마와 싸우는 ‘퇴마사’였다.

14세기 체코의 사본인 <클레멘티눔(Clementinum)>에서도 흑사병은 악마로 묘사돼 있다.

그림1.‘흑사병 희생자를 목 졸라 죽임(Death strangling a victim of the plague)’ 1376년,

그림 1에서 환자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흑사병 악마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처럼 중세 사람들은 병이란 몸에 깃든 악마가 창이나 칼등으로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의사는 환자의 몸과 머릿속에 깃든 악마와 싸우는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정신병에 걸린 여자를 마녀로 몰아 고문하고 화형에 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림2.‘도움 받을 데가 없다(No hubo demedio)’ 1797~1799년경,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연작 중 24번째 판화,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 1746-1828)는 마녀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2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연작 중 하나인 ‘도움 받을 데가 없다(No hubo demedio)’에서는 상의가 벗겨진 채 끌려가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그녀 역시 교회나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로 몰려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현대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질병과 그 원인, 의사와 치료 방법 사이에 오해가 있었지만 1800년대에 들어와 인체해부학과 이에 따른 병리학, 생리학, 수술, 세균학과 약물이 발전했다.

이에 따른 내과학과 외과학의 발전으로 질병과 암의 ​원인과 진행 과정이 밝혀지면서 질병에서 악마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특히 정신 신경과의 발전으로 정신병을 악마나 신의 저주로 보는 관행이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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