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팔자 고치는 좌우명] <14> 행동하는 양심

한국 민주주의의 대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발자취는 한국의 현대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의 호적상 출생일은 음력 1925년 12월 3일이다.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파란만장한 정치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철학박사·중화서당 원장
1971년까지 6·7·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1년에는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와 경합을 벌였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 후 투옥과 감금을 되풀이 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주도하였다.

1987년 12월 평화민주당을 이끌면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또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 1월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초청되어 출국하였다. 

귀국 후, 1994년에는 아태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다가 1995년 7월에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여 정치활동을 재개하였다. 1997년에 이른 바, DJP연합을 결행하였다. 즉 충청권의 맹주로 자민련을 이끌던 김종필, 그리고 영남에 기반을 둔 박태준과 정치적 연대를 이루었다. 김종필과 박태준은 본래 김대중과는 반대 진영에 있던 인물들이다.

그는 이들과 정치적 연대를 이룸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이 여세를 몰아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선거에 나가 출마한지 4번째 만에 결국 당선되었다. 이로써 오랜만에 여야가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재임기간인 2000년에는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김대중 대통령 좌우명
사주로 볼 때, 그는 한겨울의 을목(乙木)이다. 을목은 음의 목이다. 음의 목은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나며, 유연한 성질을 가진다. 또한 계절로 보면 그는 한겨울에 태어났으니,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인동초는 음의 목이다. 인동초는 줄기가 유연하지만 겨울을 능히 견뎌낸다. 인동초야 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잘 참아낸 김대중의 모습에 가장 근사한 사물이라 하겠다. 그의 사주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병화(丙火)가 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비록 타고난 본색은 유연한 나무이지만 동사(凍死)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연한 나무이지만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그의 좌우명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그의 좌우명은 '행동하는 양심'이다. 겨울에 태어난 부드러운 나무는 얼어서 의기소침할 수 있지만, 그의 좌우명이 이러한 약점을 보완해주었다. 그의 좌우명은 행동을 중시한다. 좌우명은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좌우명은 그의 삶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는 타고난 기질과는 달리 적극적이고 또 도전적인 형태로 삶을 전개시킬 수 있었다. 좌우명의 저력은 여기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다. 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는 피치 못할 현상이다. 그는 유연하지만 끈질기게 자신의 길을 걸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또한 그는 큰 포용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정적(政敵)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경제개발의 성과를 그는 흔쾌히 인정하였고, 또 정치적으로 자신과 반대편에 서있던 인물들에게는 화해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면은 극단적인 대치 속에서 위태한 줄 달리기를 하는 오늘날의 편협한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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