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27>

여러분이 기자라면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1. 한강을 지나던 중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는 시민을 발견했다. 신고를 하거나 투신을 막겠는가? 카메라로 투신 모습을 찍겠는가?

2. 수백 명이 매몰된 지진 피해현장을 생중계하던 중 흙더미 속에서 신음하는 아이를 촬영하겠는가, 카메라를 내던지고 구조하겠는가?

3. 비리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불법 집회 혐의로 수배 중인 대학 총학생회장의 은신처를 알게 되었다. 그를 신고한 후 연행되는 모습을 보도하겠는가?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2013년 한 남성이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한강으로 투신해 숨지자 취재진은 자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굶주린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까지 받은 기자는 죽음 앞에 놓인 소녀를 외면했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면 2010년 아이티 지진 참사현장을 생중계하던 기자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던지고 흙더미 속 소년을 구해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JTBC 기자가 덴마크 소도시에 은신하던 정유라 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 장면을 보도한 것을 두고 취재윤리 논란이 일고 있다. 위 3번 사례처럼 정유라가 아니라 비리 사학재단과 맞서 싸운 대학 총학생회장을 신고했다면 기자는 '경찰 프락치' 취급을 받지 않을까? 반대로 취재를 눈치 채고 정유라가 도주했다면 국민들은 기자의 취재 욕심에 그녀를 놓쳤다고 원망할지 모른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에는 "우리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와 "우리는 취재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는 대목이 있다. 언론 윤리강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당한 정보수집과 올바른 정보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대부분 기자들이 동의하고 실천에 노력한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 인사 청탁 의혹 해명해야

최근 지역방송이 연일 보도하는 설동호 대전시교육감 인사 청탁 의혹 기사는 언론의 보도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 선거에서 설 교육감의 당선을 도운 인사를 사립학교 9급 행정직원으로 채용하는데 있어 교육청 고위간부가 학원 측에 청탁전화를 했으며 청탁을 지시한 몸통이 교육감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간부가 갑자기 명퇴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부정 채용됐다는 사람이 설 교육감의 고교 후배이자 당선을 도왔으며 30명의 젊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만 58세가 채용됐다는 데서 의심을 받을 만하다. 해당학교에 지난해 LED조명시스템과 천장형 냉난방 설비, 교실 출입문 교체 등에 수억 원이 지원된 걸 보면 대가성 의심도 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2015년의 일이라도 교육감의 도덕성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청탁을 시인한 걸로 알려진 교육청 전직 간부는 언론의 취재윤리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방송사 간부와 전화통화한 것을 녹음해 마치 현재의 인터뷰인양 보도했다는 것이다. "검토해 보라"고 했을 뿐 청탁을 한 것도, 교육감의 지시사항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자신의 명퇴도 해당 건과 관련 없으며 채용자는 교육감이 아닌 시장후보의 선거를 도왔다고 했다.

교육청 역시 채용의 대가로 특혜성 지원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청탁의 몸통으로까지 지목 받은 설 교육감은 의혹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게 좋겠다. 채용과 관련해서는 "잘 봐주라"는 말 자체도 보이지 않는 압력이 될 수 있으니 한 치의 의심이 없도록 사실관계를 밝혀주기 바란다. 전교조는 교육감과 해당간부를 검찰 고발할 방침이라는데 사건화 되는 것만으로도 교육청의 수치다.

JTBC 기자가 덴마크 소도시에 은신하던 정유라 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 장면을 보도한 것을 두고 취재윤리 논란이 일고 있다. JTBC 뉴스 화면캡처.

언론 취재보도 과정 좋아야 특종보도 더 빛나

다른 일도 그렇지만 언론의 취재보도 역시 과정이 좋아야 특종보도가 더 빛난다. 국민 알권리 실현과 특종 욕심에 기자들이 종종 윤리강령을 저버리지만 취재과정에서의 정당성은 확보 되어야 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해서도 안 된다. 특히나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이나 국민 알권리를 위한 보도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한 해코지 차원이라면 언론에 대한 신뢰는 순식간에 곤두박질한다. 

예측불허의 취재현장에서 매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일차적으로 기자의 몫인데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몇 줄 윤리강령과 보도준칙들이 그때그때 답을 주진 못하지만 정당한 정보 취득, 기록과 자료의 조작 금지,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같은 기본 가치들이 선택의 준거가 된다. 결국 언론윤리는 시민의 공감을 받을 때 보편적 윤리로 기능할 수 있으며 언론자유도 보장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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