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10>

"동원참치, 동원골뱅이, CJ돈까스, CJ교자만두, 청정원 런천미트, 청정원 감자튀김…." 대전 지역 한 학교가 학생들 급식 식재료를 입찰하며 지정한 제품들이다. 모든 참치, 돈까스, 만두의 품질과 영양이 같을 수는 없을 테니 영양(교)사가 특정회사 제품을 고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영양(교)사에게 상품권이나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캐시백 포인트가 제공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연희 교육문화팀장
아이들에게 돼지불고기와 상추쌈을 급식으로 주기 위해 상추를 주문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납품되어야 할 날 상추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 경우 대부분 상추를 깻잎이나 다른 쌈채류로 대체해 제공된다. 그러면 반대로 상추 값이 폭락했다면 차액이 학교로 돌아올까? 물론 아니다.

같은 식재료를 영양(교)사가 타 사보다 비싸게 발주할 경우 우리 아이들은 똑같은 급식비를 내고 더 좋은 재료로 더 많이 양을 먹을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특히 남학생들은 급식에서 고기 양이 부족하다고 불만인데 새나가는 급식비로 고기 양을 늘리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급식비리와 낭비요인을 없애지 않는다면 급식비를 2배 올려준다고 해도 아이들 식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 찾아다니며 특정업체와 제품 홍보 영업하는 사람들 있어

올해 대전교육을 가장 부끄럽게 한 문제는 불량급식이다. 우동과 꼬치 1개, 단무지 두어 조각 놓인 봉산초등학교 식판에 전국의 학부모들이 분노했는데 머리카락에 천 조각, 신문지까지 나왔다는 학교도 있다. 하루 두 끼를 학교 급식으로 먹는 고등학생들은 불만을 표출하면 학교에 밉보여 생활기록부에 영향을 줄까봐 참고 먹었다고도 했다.

급식문제는 학교-영양(교)사-납품업체 사이의 시스템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학교마다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고 조리과정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학부모 모니터링을 실시하지만 막상 엄마들이 급식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납품돼 들어온 식재료 정도다. 해당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에, 왜 그렇게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납품업자들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특정업체와 제품을 홍보 영업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따라 참치는 어느 회사, 햄은 어느 제품 식으로 영양(교)사들의 주문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업체선정은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에서 이뤄지지만 막상 낙찰 받아도 특정회사로 한정한 제품을 구하려면 이 제품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한다. 이 제품이 비싸도 납품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당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한 납품업체 대표는 "나는 A회사 마요네즈를 가지고 있는데 학교에서 B회사 제품을 요구하면 비싼 돈을 치르고라도 해당제품을 사다 납품해야 한다"며 "결국 돈은 특정회사 제품을 가지고 학교 홍보를 다니며 영양(교)사들에게 해당 제품을 지정 권유하는 간접 납품업체가 버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모든 학교와 영양(교)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전시내 전체 학교에 급식비리가 만연돼 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불량 급식 논란을 빚은 대전 봉산초등학교 식판 모습.
영양(교)사 재량으로 특정제품 구매하는 등 업체와 유착 고리

식재료 주문 시 학교 영양(교)사 재량으로 특정제품을 구매하는 등 업체와의 유착 고리는 지난달 국무총리실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의 실태점검에서도 드러났다. 동원, 대상, CJ 프레시웨이 같은 대형 급식업체는 2년 반 동안 전국 3000여개 학교 영양(교)사들에게 16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대전지역 학교들도 이들 제품을 특정해 식재료 주문을 냈으니 의심 받기 충분하다.

여기다 교육청과 학교-영양(교)사-납품업체-홍보책-간접납품업체 같은 곳이 똘똘 뭉쳐 단단한 유착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친인척·지인 명의로 유령업체를 설립해 입찰담합하고 교육청에서 급식정보를 얻어 학교장과 영양(교)사에게 접근해 편법 수의계약을 하거나 특정회사 제품을 포함시켜도 감시와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납품업자들에 따르면 주변인 명의로 여러 업체를 가지고 학교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대전에도 있다고 한다.

이런 때문인지 대전시교육청은 추석 연휴 후 19일부터 8주간 관내 학교와 간접납품업체 간 유착의혹을 감사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학교법인 대성학원과 대신학원에 대한 부정채용 감사, 예지중고 감사, 봉산초등학교 불량급식 감사 등 그동안 대전교육청이 벌인 감사결과를 보면 뭐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이번 감사도 경찰이 급식 비리를 수사한다니 부랴부랴 나선 느낌이다.

'꼬리 자르기'와 '제 식구 감싸기'로는 급식 의혹 더 키워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에게 급식문제는 '아킬레스건'이다. 급식 관련 사업을 하던 동생이 수년 전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하는 데도 억측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동생이 명의만 없앴지 주변인 이름으로 업체를 운영하며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소문도 있다. 전교조도 지난 주말 설 교육감 동생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성명을 냈다가 교육감 측의 항의를 받고 정정했다.

대전교육청은 교육감과 그의 동생이 억울하지 않도록 급식비리 만큼은 철저한 감사를 벌여야 한다. 항간의 의심처럼 경찰의 본격 수사에 앞서 대전교육청이 먼저 감사를 벌임으로써 '꼬리 자르기'와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면 급식 관련 의혹은 더 커질 것이다. 감사관실의 인력이 부족하다면 기간을 늘려서라도 '수박 겉핥기'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

설 교육감은 한 끼에 1865원인 초등학교 무상급식 식품비를 2275원으로 410원 인상하겠다고 했다. 교육청부터 일선학교, 업자까지 조직적으로 얽혀 있다고 의심 받는 급식문제를 투명하게 풀지 못하고서는 추가로 부담하는 70억 원이 우리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대전지방경찰청과 교육청은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엄중한 수사와 감사를 통해 학교급식의 구조적 비리사슬을 끊어주길 바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