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북 정치권 후보지 경쟁 가세, '과열' 우려

대전시와 충북도가 1000억 규모의 국책 사업인 국립 철도박물관 유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두 지역 정치권까지 가세하며 과열 양상으로 치닫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동남권 신공항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충청권의 국립 철도박물관 유치전이 '신공항 판박이'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철도박물관 유치에 나선 대전과 충북이 그 우려의 중심에 서 있다. 지역 간 갈등 방지와 후보지 선정 이후 후유증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1000억 규모 국책 사업 놓고 대전·충북 유치전 '치열'

철도박물관은 정부(국토교통부)가 약 1000억 원의 예산으로 건립을 추진 중인 국책사업으로, 대전과 충북, 경기 의왕 등 자치단체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토부는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오는 8~9월 쯤 최종 후보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대전의 경우 지난 달 2일 철도박물관 유치위원회를 발족한 뒤 시민 서명운동을 벌여 지난 20일 55만 여명의 시민 서명부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권선택 시장도 지난 14일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철도박물관 대전 유치 당위성을 언급하며 협조를 요청하는 등 범 시민사회와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였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13 총선 때 중앙당 차원의 철도박물관 조성을 공약했다. 새누리당은 이장우 의원(대전 동구)이 철도박물관 동구 유치를 약속했다.

더민주 대전시당은 지난 20일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호남선(서대전∼논산) 직선화' 사업이 포함된 데 대해 환영 논평을 내면서 "시민의 큰 바람인 철도박물관 유치와 함께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철도사업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정치력을 집중하고 발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전시와 지역 정치권은 지난해 9월 열린 충청권 4개 시·도와 새누리당 중앙당 간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철도박물관 유치를 지역현안으로 건의한 바 있다.

정치권 가세로 유치전 과열 양상..후보지 발표 미뤄져

충북 역시 지난 4월 철도박물관 후보지 추천위원회를 열어 청주와 제천 중 청주 오송읍을 단독 후보지로 선정한 뒤 유치 활동에 돌입했다.

새누리당 충북도당과 더민주 충북도당도 철도박물관 오송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에 한창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4일부터 이달 말까지 매주 화요일 청주 성안길에서 철도박물관 오송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더민주도 지난 6일부터 서명운동을 전개한데 이어 매주 월요일마다 같은 장소에서 각 지역위원회 별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양 지역 정치권까지 철도박물관 유치에 뛰어들어 과열 양상을 띠자 당초 지난달 결정될 예정이던 후보지 발표는 한두 달 뒤로 미뤄진 상황.

일부에서는 대전과 충북 등 충청권이 철도박물관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힘의 대결'로 격화될 경우 타 지역이 어부지리(漁父之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타 지역 '어부지리' 우려, "충청권 후보지 단일화" 목소리

이는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신공항 유치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정치권의 극렬한 대립으로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된 것과 유사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전과 충북은 지난해 KTX호남선 서대전역 정차를 두고 갈등을 빚은 바 있어 이번 유치전이 과열될 경우 지역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충청권 후보지 단일화라는 대승적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충청권의 한 주민은 "이번 철도박물관 유치는 충북이나 대전이 통 큰 양보로 한 쪽을 밀어주고, 다음 번 국책사업 때는 다른 쪽이 밀어주는 전략적 계산도 고려해봄직 하다. 그것이 곧 충청권 동반 발전과 유치 실패에 따른 민심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성은 희박하다. 여야 모두 철도박물관 유치를 공약화한 입장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정되지 못한 지역은 정치적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유치 결과에 따라 민선 6기 임기 반환점을 돈 두 지역 광역단체장들의 향후 정치적 입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어느 한쪽의 포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지역 정치권이 충청권 후보지 단일화라는 ‘극적 대타협’을 이끌어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지역 간 다툼으로 정쟁(政爭)화하거나 지역 이기주의를 선동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다.

"당리당략 떠나 지자체간 상생 바람직…정부 역할도 중요"

충남대 육동일(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갈등을 푸는 것이 정치고, 정치권의 역할인데 오히려 정치권이 갈등을 부추기고 정쟁에 활용하면서 문제가 비롯되는 것"이라며 "신공항도 2011년 이미 결론 났던 얘기다. 다 죽은 카드 집어든 게 대선 후보들이고 정치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철도박물관도 신공항 발표 과정을 볼 때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이 당리당략이나 개인적 후보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높다. 여기에 정부도 자치단체 간 경쟁을 즐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치권은 지역 이슈를 정치적 아젠다나 공약화해 상대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을 배격하고, 정부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선정 기준을 정하는데 있어 조심스럽고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청권 자치단체끼리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 조율해야지, 정부에만 결정을 맡겨놓으면 안 된다. 지역 간 상생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배재대 김욱(정치외교학과)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항공이나 박물관이나 국책사업을 유치하는데 있어 경쟁은 불가피하다. 다만 거시적으로 보면 중앙 정부가 사업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보니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앙 정부의 재정 집행방식을 분권화하는 것이 (국책사업 유치 과열을 막는) 궁극적인 해결 방법일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