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열의 밥그릇챙기기] 평생밥벌이학교 교장

# 지난 30년간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얼굴표정은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편이다. 상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와서 은행 취직을 알아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부친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탓에 졸지에 가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어느 새 밀린 병원비와 약값에 당장이라도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다. 수개월째 은행의 합격소식만을 애오라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부친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만 했다. 어느 새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변함없이 1층에서 슈퍼마켓을 경영 중인 5층짜리 건물은 이젠 본인 소유가 됐다.

워낙 입지가 좋은 탓에 공실 걱정 없는 이 빌딩에서 나오는 1000만 원대 임대료는 제법 쏠쏠했다. 얼굴을 잊어버릴 즈음 참석한 동창모임에서 소주잔을 건넨다. 어떻게 해서 많은 돈을 벌었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귀찮은 듯 대답한다. “야, 이 친구야, 내가 돈 쓸 시간이 어디 있어? 난 내일도 새벽에 일찍 나가서 문 열어야 하거든.” 사실 동창 녀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 6시면 정확하게 문을 열고 밤11시까지 장사를 끝내는데 하루도 쉬지를 않는다. 일 년 내내 구정과 추석 같은 명절을 제외하면 맘 편하게 두 발 뻗고 쉬어 본적이 없었다.

십여 년 전 대형마트가 동네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쉬면서 영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영 환경이 확 바뀌었다. 몸이 아픈 배우자와 일을 교대로 하면서 겨우 수익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배달직원이 느닷없이 출근을 안 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라도 터지는 날이면 영락없이 애를 먹기 일쑤였다. 연신 소주잔을 부딪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 친구의 말이 맞았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눈 붙일 시간도 없는데 한가롭게 돈 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당시 직장생활에 한창 익숙해졌던 나는 반복되는 스트레스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며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동창 녀석은 “대형마트가 입점하면서 슈퍼마켓 매출이 갈수록 줄어들어 문 닫을 지경까지 갔을 때는 정말로 아찔했다”고 속내를 털어 놓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좀처럼 경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큰 결심을 내렸다. 하는 수 없이 배우자에게 슈퍼를 맡겨놓고 그동안 저축한 돈과 은행 대출금을 보태서 마트에 입점해서 작은 분식가게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싼 수수료에다 인건비 등을 빼고 나면 순수익은 보잘 것 없어 결국 두 손 들고 나와야만 했다. 분식점을 우습게 본 것도 문제였지만 경험치고는 너무나 금전적 손실이 컸다. 그 충격 때문에 술집을 내집삼아 들락거리면서 한동안 방황을 했다.

비좁은 장소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반복적인 노동이 지겨운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예고 없이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분식점을 통해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다.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슈퍼마켓을 시작하기로 큰맘을 먹었다. 날이 거듭 될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기존 장소를 버리고 새로운 입지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드디어 가게 장소를 여러 번 옮긴 끝에 지금 현 위치에 정착을 하게 됐다. 그동안 이전을 하면서 수차례 권리금을 받은 데다 어렵사리 번 돈을 모아 금싸라기 현 건물을 구입하게 됐다.

이젠 더 이상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슈퍼마켓을 천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술술 풀렸다. 일상의 지겨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었다. 동창 친구는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는 것보다 슈퍼에 나와서 계산대를 지키고 물건을 나르는 일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사실 수십 년 동안 슈퍼를 운영하면서 이젠 더 이상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저축한 돈이 많은데도 웬만한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건물 임대료로 여행이나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권유하면 ”더 이상 쓸데없는 걸로 욕심내지 않다 보니 오히려 맘이 편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 도넛 전문점을 개업한 윤 사장은 2년도 안돼서 문을 닫았다. 창업자금이 무려 5억여 원 들어갔는데 그 가운데 3억 원을 금융권 대출로 조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한 달에 적지 않은 금액이 금융 이자로 빠져 나간 데다 점포 월세를 비롯해 인건비, 관리비, 각종 세금, 본사 로열티 등을 제외하고 나면 두 손에 가져가는 순이익은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문제가 된 건 여신심사가 강화되면서 금융권으로부터 원금 상환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순수익이 예상보다 저조하면서 결국 원금을 갚기 위해 도리어 대출을 받아 돌려 막아야만 했다. 갈수록 장사가 잘되지 않는데 주인 입장에선 항상 밝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장사가 잘 되는 집을 가보면 주인의 표정부터 다르다. 장사가 잘 되서가 아니라 표정이 밝기 때문에 장사가 잘되는 법이다. 그 밝은 표정이 고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재 구매하게 만든다. 반대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가게를 가보면 주인의 표정이 어둡다. 윤 사장의 경우가 그렇다. 영업하는 시간만이라도 주인의 표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말이 그렇지 윤 사장은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를 창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약으로 유명한 대기업 임원출신으로 남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를 퇴직하고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러 중소기업에 재취업 원서를 내고 전화연락을 기다린 지가 수개월째다. 대학생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과 자녀 결혼자금을 마련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찌릿찌릿 아프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회사에 다니는 대학후배에게 통사정해서 이 점포를 소개받고 야심차게 시작했다.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했지만 이젠 이미 늦었다. 그동안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작은 가게쯤이야’ 하고 얕잡아봤던 게 사실이었다. 물론 수 억 원대 대출금을 받은 것이 조금은 부담이 됐지만 그 정도는 장사를 해서 갚아나갈 계산이었다. 대출금 수억 원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욱 치열했다. 자영업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었다. 힘들었던 하루 장사를 끝내고 점포에서 홀로 남아 담배를 피워 물며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요즘처럼 경기가 힘들다고 하는 한국에서 자영업 사장으로 사는 게 뭔지도 알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연신 담배를 피워대지만 정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창업 전 준비과정에 너무 소홀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템 선정에서 실패한 것이 가장 컸다. 본인은 빵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후배한테 떠밀려서 그저 수익성이 좋다는 말만 듣고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더구나 자금조달 및 상환계획에 소홀했던 것도 사업실패의 원인이었다. 윤 사장은 결국 2년을 버티다가 손해를 감수하고 가게를 처분하고 말았다.

# <화식열전>에 나오는 부자들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행동하고 시세의 변화를 살펴서 이익을 추구했다.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하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행동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쌓은 재물을 덕(德)으로 베풀고 관리해 나갔다. 사마천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직업도 따로 없고 재물 역시 정해진 주인이 없다. 다만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반면에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고 부(富)의 원칙을 제시했다. 부자가 덕을 행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제일의 조건이다. 아울러 덕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생활에 있어 근검과 절약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모범은 없을 것이다. 사마천은 “대체로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은 생업을 다스리는 바른 길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기이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여기서 우리 같은 일개미들은 아껴 쓰고 부지런한 것과 기이한 방법에 대해 모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자는 남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후자는 나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결국 사마천이 <화식열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부를 얻는 길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특별함’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자들의 성공은 한 가지 일에 몰입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안목이 관건이다.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왜 성공하지 못하느냐’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남들이 가는 길을 흉내 내고 쫒아만 다닌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재물도 모으고 부자가 될 수 있다.

# 요즘 현실은 매우 냉혹하다. 창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쓰고 남을 만큼 많이 벌거나 아니면 쓰는 것을 줄여서 돈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 소자본 창업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방법이 훨씬 쉽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렵게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인생막판에 쪽박을 차는 경우는 대부분 이렇다. 늘 해오던 일이 지겨워질 무렵에 종업원을 구해서 대신 일처리를 하게 되면 결국 시간이 남게 된다. 결국 시간이 남아돌면 돈을 쓸 일을 만들게 되고 따라서 쓸 일도 많아진다. 창업이나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장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다. 어느 정도 큰돈을 벌면 일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 한다. 스스로 돈을 쓰려는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려고 애를 쓴다. 본인들이 하는 일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는 법이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만난 동네 알부자들은 한푼 두푼 모은 작은 푼돈을 굴려서 뭉칫돈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인은 하찮은 일이라도 종업원보다 더 많이 해야 하고 또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오랜 기간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맞는 말이다. 창업으로 성공한 사장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장기적인 경영 마인드’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통해 성공한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경우에는 그 성공이 그렇게 오래가질 못했다. 결국 오랫동안 벌 수 있는 장사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사실을 믿는 부류들이다.

과거 직장이 화려할수록 초기 창업의 실패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사업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오래 오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가급적 많이 해야 한다.그리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장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이 우선이다. 그래야 창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인생 100세 시대다. 인생 2막을 향한 작은 창업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천천히 오래 가야 한다. 만리(萬里)를 우직하게 걸어가는 소처럼 말이다. 보기에 느려 터져서 답답해 보일지언정 그 길이 바른 선택이다. 내가 지금도 30~40년 된 간판 허름한 단골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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