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94>

경찰의 대전도시철도공사 채용비리 수사가 한 달 반이 되도록 지지부진하고 있다. <디트뉴스>가 도시철도공사의 점수조작에 의한 채용비리를 처음 보도한 게 지난 3월 17일인데 대전시는 다음날인 18일 감사반을 투입했다. 경찰이 23일 차준일 사장을 소환하자 대전시는 24일 차 사장을 해임하고 점수조작 관련자 8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한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임연희 교육문화팀장
대전시가 감사에 착수하자 대전지방경찰청도 관련자들을 불러들여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 싶었다. 경찰은 차 사장이 직원들에게 성적조작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대전시 등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사 시작 한 달 반이 돼 가도록 경찰은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 차 사장 단독지시인지, 채용의 대가성 여부 밝혀야

점수조작이 사실인지, 어떻게 조작이 이뤄졌는지는 그동안의 언론보도와 대전시 감사결과에서 이미 드러났다. 대전시는 차 사장의 단독지시로 점수조작이 이뤄졌으나 왜 그랬는지는 경찰조사에서 나올 것이라고 떠밀었다. 경찰이 밝힐 부분은 진짜 차 사장의 단독지시인지, 왜 점수까지 조작해가며 필기성적이 낮은 두 사람을 채용하려고 했는지다.

합격하고도 점수조작 때문에 탈락한 사람 중에는 특정대학 출신이 있어 이 대학 겸임교수를 지낸 차 사장이 제자를 채용하기 위해 조작을 지시한 것은 아녀 보인다. 차 사장의 단순한 제자사랑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전시 산하 공기업이 면접점수를 20점 가까이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특정인을 채용하려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외부로 드러나는 계기가 된 도시철도공사 황재하 경영이사는 부정채용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 "차 사장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차 사장이 대전시청 비서실을 지칭하듯 얘기했다"고 했다. 물론 권선택 시장 비서실에서는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누군가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수사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니 한 중앙일간지가 권 시장의 최측근이 도시철도공사의 부정채용에 개입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인사가 차 사장에게 특정인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고 차 사장이 직원들에게 점수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금품이 오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이 관련자들의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정황도 보도했다.

기사에서는 이 인사가 '권 시장의 오른팔'로 분류되는 최측근으로 공사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돌연 사직했다고도 했다. <대전시장 최측근, 대전도시철도에 인사 청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이 기사의 파장이 크다. 새누리당 대전시당까지 가세해 "사법당국의 수사결과 발표에 앞서 권 시장 스스로 진상을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만일 보도가 사실이 아닐 경우 권 시장과 이 인사가 겪을 피해 또한 적지 않다. 사건을 쥐고 있는 경찰이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음에 따라 꼬리를 무는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전도시철도공사 부정채용의 성적조작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펜글씨가 원점수이며 컴퓨터 프린트 점수는 조작단계의 점수표다. A는 면접관 1명의 점수를 92에서 98로 6점 올려줬고 필기 20위 B는 면접점수를 87에서 97로 10점, 91점에서 98점으로 고친 흔적을 볼 수 있다.
경찰 수사 못하면 종결하든 검찰이나 감사원으로 넘겨야

경찰이 수사를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 끌기 중인지는 몰라도 그 사이 도시철도공사 경영이사는 해임되고 직원 5명이 정직 및 감봉의 징계를 받았다. 공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사장의 지시를 따르면 가벼운 징계를 받고 비리를 외부에 알리면 해임되니 부당한 지시라도 따르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자괴감이 확산되고 있다.

필기점수 15위와 20위를 합격시키라는 누군가의 지시로 인해 성적을 조작한 결과 억울한 3, 4등을 떨어뜨린 이 사건의 배후와 대가성 여부를 밝혀낼 자신이 없다면 경찰은 이쯤에서 손을 떼는 게 낫겠다. 수년간 진행된 복잡한 사건도 아닌 며칠 사이 벌어진 일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경찰은 수사를 종결하든 더 늦기 전에 검찰이나 감사원으로 넘겨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 수사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의심은 더 크고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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