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국열의 밥그릇챙기기] 평생밥벌이학교 교장

1976년에 출판된 900원짜리 시집(詩集)인데요.

# 1. ‘살아있는 자, 쓸쓸하고 눈부시다’라고 적힌 문구가 시간이 갈수록 신통치 않은 두 눈에  흐물흐물 들어왔다. 너덜너덜해진 시집 표지 안쪽에 적힌 빛바랜 잉크만이 오랜 세월을 증거하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을미년을 열흘 남짓 앞둔 주말에 서재에서 먼지 묻은 책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책 한권이 손아귀에 잡혔다. ‘떠돌이의 시’라는 제목이 붙은 민음사에서 펴낸 미당 서정주 시인의 옛날 시집이었다. 맨 뒤쪽을 넘겨보니 1976년 7월에 인쇄됐다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고, 책값은 요즘 붕어빵 값보다도 싼 900원이었다.

기름종이처럼 누렇게 변해버린 첫 페이지를 넘겨보니 짧은 대표 시(詩)가 적혀 있다. ‘우중유제(雨中有題)’라는 제목의 짧은 시였는데 읽어보니 왠지 모르게 순순한 어린아이의 동심(童心)이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 계집과 수풀에서 그짓하고 있다가 | 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 또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 듯 |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 | 쏘내기속 청솔방울 | 약으로 보고 있다가 | 어쩌면 고로초롬은 될법도 해라’

1993년 12월 23일이라고 만년필로 적혀 있었고, 한자 이름이 휘갈겨 쓰여 있는 빛바랜 시집을 보면서 잠시나마 지난날에 대한 회상에 잠겼다. 아마도 그날로 기억된다. 첫 직장이었던 신문사에서 성탄절을 함께 보낼 애인을 못 구해 발 동동 구르던 시절이었다. 평소 좋아했던 만평을 그리던 김화백이 불쌍히 여겼는지 본인이 살던 작은 집으로 초대를 받아서 놀러갔던 것 같다. 이래저래 밤새동안 문학과 인생에 대해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 뒤, 문밖을 나서는 순간 이 빛바랜 시집을 선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유부남 김화백의 단짝인, 그래서 신문사에서 괜히 애인으로 의심을 샀던 노처녀 디자인팀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한동안 연락을 취하다가 언젠가부터 사는 것이 퍽퍽해지는 그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술 한모금도 못 먹던 김화백이 생각나고, 미대 나온 올드미스 팀장은 멋진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짠돌이’ P부장이 연말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 얼굴도 본지 오래된지라 겸사겸사해서 수통골로 산행을 함께 가자고 한다. 블로그에 올라온 맛집 식당에서 굴비정식을 사주겠다며 후배인 나를 꼬드긴다. P부장과의 겨울산행을 하면서 나눈 대화를 대한민국 50대 중년남성의 ‘행복’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회사에서 결코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 2. “부장님은 주말에 보통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학교선배 50대 P부장은 늘 머리가 아프다. 예전에는 전국 명산도 찾아다니고 동네 수영장도 다닌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요즘에는 시간도 안 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도 소진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말에 잠만 잔다거나 TV나 영화만을 본다고 고집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히, 회사 임원으로부터 주말에 골프 치러 한번 나가자는 제안을 받을 때만해도 연습을 부지런히 해뒀더라면 지금처럼 허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껏 골프는 물론 제대로 주말 소일거리 하나 배워놓지 않는 자신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P부장에게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야근까지 열심히 해가며 야근수당까지 챙겼고, 그동안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정신없이 산 것이 무슨 죄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 씁쓸하기만 하다.

가족에게도 주말에는 재미없고 무료한 사람으로 낙인 된지 오래다. 본인 자신도 즐겁고 재미나게 주말을 자기충전의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도, 무엇부터 할지 무척 난감한 실정이다. P부장은 회사에서도 재미없는 사람은 결코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집안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밋밋하게 살아가는 그런저런 사람이 되고 만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결국 일 중심 사회가 만든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미와 여가는 물론이고 자아실현은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만 열심히 했지 잘 놀 줄 모르는 분위기속에서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취미도 만들지도 못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런 준비도 전혀 안된 상태에서 다가올 직장 연말 인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질까봐 하루하루 불안할 뿐이다.

자녀교육비 안 나가는 지금이 너무 후련해요.

# 3. 그렇지만 50대 P부장은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하단다. 일이 삶의 전부였지만 처음으로 여유가 생겼다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딸자식들이 대학공부를 거의 마쳐서 목돈이 들어갈 일은 당분간은 없어졌다. 비록 아파트 평수를 줄여 이사를 했지만 골칫거리였던 부채를 해결했고 교육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지만 내 명의로 1채 보유하고 있고, 그동안 저축한 적금도 지역은행에 예치해 놨다. 주말에 시간이 많아지자 돈 안 들어가는 등산도 다시 시작했다.

가끔은 집근처 교회에 나가서 주일봉사도 하면서 생각하기를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자위를 한다. 일이 오로지 삶의 전부였던 P부장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나이가 들어 50대 중년의 아저씨가 됐다고 웃는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오로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래서 노력한 결과 명문대 법대에 입학을 했었다. 하지만, 돈 없고 힘없는 자를 위해 법률상담을 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결국 수년 동안 책상 앞에서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다 사법시험을 포기한 채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질 않았다.

배움에 목마른 동생들 학비마련은 물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뒷바라지 하느라 돈 버는 족족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비어있는 월말을 보내고 나면 언젠가는 행복한 시간이 오겠지 고대했지만 늘 그렇게 싱겁게 끝나곤 했다. 사업도 생각해봤지만 본인 성격도 안 맞는데다 초기 종자돈 마련마저 쉽지 않아 포기한지 오래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겨 그나마 소소하게 사는 재미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중산층은 왜 부자가 될 수 없나요?

# 4. 인생은 이벤트의 연속이다. 과거에는 20년간 어렵사리 공부하고 40년간 한 직장에서 정년을 채운 뒤 남은 10년 정도 여생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은퇴 후 생활이 크게 문제가 되질 않았고 남은 수명을 거의 채웠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리 넉넉지 못하다. 현재는 무려 30년간 엄청난 교육비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1기간과 30년간 경제활동을 하는 2기간과 남은 40년의 은퇴생활을 영위하는 3기간으로 나눠져 있다.

여기에서 돈을 왕성하게 버는 경제활동을 하는 2기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살아보면 인생의 각 단계에서 발생되는 이벤트자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갈수록 짧아지는데다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 보험료를 비롯해 각종 세금 등 공적비용으로 인해 쥐꼬리만 한 저축액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차량 구입비를 비롯해 내 집 마련 자금, 자녀양육 및 교육비, 자녀 대학입학 자금, 결혼자금, 노후자금 등을 포함할 경우 1가구당 약 2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인생살이는 생각하는 만큼 결코 순탄치가 않은 법이다. 인생의 모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정은 그리 넉넉지 못한 현실이다.

어느 시점까지는 왕성한 경제활동으로 인해 상당한 금액을 저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득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소득이 지출을 초과할 때 발생하는 잉여자금을 사전에 축적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돈관리가 필요하고 그전에 충분히 인식하고 철저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다. 직장에서 받는 월 급여액과 연봉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이 감소하는 현상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우선, 소득의 증가율보다 물가의 증가율이 높기 때문이다. 매년 직장에서 직급과 호봉이 상승하면서 임금이 올라 잠깐이나마 즐거움을 갖게 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생활물가 인상 폭이 급여 인상폭보다 더 큰 탓에 쥐꼬리 임금상승분의 효과는 오래가질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소득이 올라봤자 연차가 오래될수록 마이너스뿐이고 지갑은 채워지질 않는다.

둘째로, 과도한 교육비 지출이다. P부장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적지는 않지만 결코 많지도 않은 월급이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고 사교육에 올인 하는 여느 부모들처럼 그 대열에 합류했었다. 한때는 자녀들의 성적이 마치 자신의 고과점수라도 되는 냥 한때는 흐뭇해했고 동네방네 자랑도 했었다.

자녀들의 능력과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명문대학 입학에 치중했고 부모의 경제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은 모두 지원하며 자녀의 학업에 매달렸다. 결국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은 죄책감이 들 때가 수없이 많았다. 모두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며 격려하는 척 위선을 보였지만 사실 P부장 부부의 욕심이 앞선 생각에 미안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집값으로 인한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오느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년전에 인기지역에 대형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당시 3억 원이라는 무리한 대출을 받았다. 탄탄한 직장인 탓에 원금과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는 문제가 전혀 없었고, 그런대로 내 집 마련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버텨내며 은행문턱을 발이 닳도록 넘나들었다. 결국 내 집을 갖게 됐을 때 P부장은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풍성했고 마음이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거품은 오래가지 못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사교육비 탓에 주택담보 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액수가 상당히 커져 한때는 은행이 소유한 집에서 숨만 쉬고 생활하는 가족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유일한 종자돈인 퇴직금을 중간정산, 작은 평수로 이사한 뒤 남은 돈을 모두 합쳐서 기존의 부채를 말끔히 청산했다. 그나마 P부장에게는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됐고, 이제는 한 푼의 부채가 없다는 생각에 남은 직장생활이 즐거웠다. 결국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삶이 서글펐지만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고통을 이겨내야만 했다. 결국, 골치 아픈 집 문제는 해결됐고, 두 자녀도 아슬아슬하게 대학교육을 끝낼 수가 있었다.

‘공부하는 기계’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가면 안돼요.

# 5. 사교육은 이미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아이들에게는 학원은 학교수업이 끝나고 무조건 가는 제 2의 학교일 정도로 친숙하다. 사교육을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과도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과도한 사교육으로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너무 많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남들이 하니까 우리 자녀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정확히 관찰하고 자녀들의 적성을 찾아내 적성에 맞는 맟춤형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남들이 못 보내 안달하는 4년제 대학을 포기할 만큼 자신감도 있어야 한다. 부모가 용기 있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자녀들도 동조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장관이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자주 변경되는 입시제도도 그렇고, 부모들도 헷갈리는 복잡한 대입전형과 변별력 없는 수능도 문제다. 교육환경이 갈수록 바뀌는 탓에 사교육업체들만 신이 난다. 중요한 것은 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고 까다로워진다고 해도, 부모들이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이다. 자녀들은 사교육업체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고, 부모들의 헛된 욕심의 대상도 아니다.

공부하고 싶어 하는 자녀는 공부하는 것이 맞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자녀는 일찌감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나서야하며, 재능과 끼가 있는 자녀들은 그런 감각을 키워줄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눠질 때 이 나라의 교육환경이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부모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사교육에 중독되지 말고 빠른 시일 내 중단시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줘야 한다. 자녀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미래의 대한민국을 공부하는 기계가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가진 자녀들이, 재능을 가진 자녀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돼야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가 된다.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세만 듣고 투자해서 돈 날렸어요.

# 6. P부장은 금융위기 시절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부채를 갚고 나머지 금액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은퇴자금 마련목적으로 지방근무 시절 회사에서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 살아본 경험이 화근이 됐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마련한 뒤 매달 임대수익이 40만원씩 발생하는 등 괜찮은 투자수익을 거뒀다.

사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처음엔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판단이 들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지방 소형 오피스텔에 투자를 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내려가서 살 생각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금융상품 투자나 창업 대신 임대아파트 등 수익형부동산이 각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근무했던 익숙한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했던 것이다.

월세수익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분양가격이 비싼 새 아파트는 아예 염두에 두질 않았다. 가족을 서울과 수도권에 두고 혼자서 근무하러 온 대기업 직원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월세를 놓으면 적어도 공실은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을 마쳤기 때문이다. 수요자가 많고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특히, 빌라나 다가구 주택에 비해 관리하기도 쉽고 월세도 또박또박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약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질 못했다. 인근지역에 소형아파트가 신축되면서 저렴한 임대료가 인기를 끌면서 세입자들이 빠져 나가면서 공실이 발생했던 것이다.

매달 받는 월세만 보고 투자를 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1-2년 뒤 투자 원금대비 얼마나 오르는지 반드시 따져봤어야 했는데 이 사실을 간과했다. 인근지역 신축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더라면 수요자가 많아 언제든 사고팔 수 있고 공실가능성도 낮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보증금과 월임대료를 낮췄지만 이자와 세금을 내고 중개사 수수료를 내면 남은 것은 없었고 오히려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나서 P부장은 좋아 보이는 부동산 물건은 오히려 함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매달 받는 월세 운운하는 것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즐겨보는 케이블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연인’보다도 못하단 생각에 심한 자괴감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직장생활은 물론 사업 및 장사를 하면서 승승장구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교통사고, 투병, 이혼, 스트레스, 사별 등등 갖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숨 가쁜 일상과 배려 없는 사회에 작별을 고하며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산사나이들이 된 그들은 매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매일 산으로 출근해 귀한 약초를 캐며 특급 수에서만 자란다는 민물 새우를 내어주는 자연 속에서 유쾌하고 신바람 나는 생활을 즐기면 사는 그들을 오히려 부러워했다. 부동산투자에 실패하고 나서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물처럼 바람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주말에 화병을 눌러주기 위해 찾은 산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깨닫고 싶었지만, 그들처럼  사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몸마저 부실하니 걱정되네요.

# 7.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지금은 등산도 다니고 약간의 시간과 물질적 여유가 생겼지만 가슴 한편으로 불안하기만 하다. 주변에서 회사를 퇴사하고 나간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 선후배들을 보면 사정은 그리 밝아보이질 않는다. 자녀들의 대학교육을 어렵사리 끝마쳤으나 취직문제, 결혼문제, 전세자금 마련문제 등등 겹겹이 쌓인 돈 문제로 인해 불안하기만 하다.

P부장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이지만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인해 수입이 갈수록 줄어들게 뻔하다. 문제는 그전까지 직장생활이 얼마나 가능한지도 두렵지만 설사 직장에서 나와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기댈 곳 없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하다. 이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어 다소 안도감을 찾았으나 조만간 다시 고비가 찾아올 걸 생각하면 요즘 주말에 쉬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하지 못하다. 주변에선 이미 이런저런 사유로 회사를 나와 편의점과 주유원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아파트 경비원, 택배, 택시기사, 대리운전, 빌딩 주차관리 등 보수가 낮은 직업으로 생활비를 버는 지인들이 많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친구랑 포장마차에서 소주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회사에서 떠밀리다시피 나온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은 아파트 대출금과 지인에게 빌린 생활비와 교육비를 대느라 당장 손에 쥐는 금액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50대중반에 창업을 하지니 자금은 물론 별다른 기술마저 없는 상황에서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때우는 것 외엔 없었다고 한다.

결국, 추천받은 일이 지금 살고 집에서 다소 떨어진 임대아파트 경비 자리였지만 여기저기 따질 형편은 아니었다. 120~140만원 받는 작은 월급이지만 지출되는 비용이 없는 탓에 잘하면 일 년에 1천만 원은 저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 민원 탓에 하루하루가 쉽지 않는 경비원 생활이지만 그래도 돈 벌 수 있는 일이기에 그나마 감사하며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바람뿐이라고 소주잔을 비운다.

P부장은 경비원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나에게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것도 없고 그 친구처럼 건강한 육체를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지만 별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장생활에서 자녀들의 뒷바라지가 또 다른 걱정거리로 눈앞을 아른거린 채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투자하지 않고 원금 지키는 것이 오히려 리스크라고 하네요.

# 8. 답답한 마음에 우연히 신문을 펼쳐보니 재테크 세미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문가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대일 무료 재테크 컨설팅을 해주는 상담부스엔 성황을 이뤘다.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를 비롯해 부동산 자문회사와 세무, 법률법인에서 근무하는 프라이빗 뱅커, 공인중개사, 세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상주하면서 맞춤형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직장인부터 가정주부를 비롯해 부동산투자를 고민하는 40대 자영업자, 은퇴설계를 고민하는 50대, 상속 및 증여를 상담하기 위한 60대 등 다양한 연령층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문상담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는지 전국에서 몰려들어 하루 종일 상담 장소는 북적였다.

P부장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도 얻고 상담도 받을 겸 찾은 자리에서 많은 인원으로 인해 상담조차 받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오피스텔 투자로 비싼 수업료를 치른 탓에 다시는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기로 맘먹었던 그였다.

자연스럽게 투자엔 주식이 수익률측면에서 최고일 것 같아 주식상담 코너로 발길을 돌려 신청을 한 뒤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 차례가 되서 1대1의 무료상담이 진행됐다. 전문가는 저성장과 저금리 시대를 맞아 해외투자를 적극 늘여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 달러강세가 계속돼 앞으로 1년 동안 해외투자에 골든타임이고, 신흥국의 자본유출이 이어지면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주식종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관련주식을 추천했다.

만약에, 글로벌 주식투자가 어렵다면 원 달러 환율이 13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미국 배당주에 투자하는 방법도 좋을 수가 있으며, 동시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달러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의 조언이 거듭될수록 점점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헷갈렸다. 한국 주식시장도 안개처럼 불확실한데 글로벌 시장까지 전망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특히, 중국투자에도 관심을 가져보란다.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과 향후 5년간 개발계획을 담은 13차 5개년 계획을 보면 투자기회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의 도시화로 인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내수 소비재 1등주를 장기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P부장처럼 초보자는 변동성이 심한 본토시장보다 홍콩증시 투자를 추천했고, 상하이 디즈니랜드 개발과 전기자동차 산업관련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권유했다.

유명한 자산운용사 존리사장은 자녀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아니면 버는 돈이 너무 적거나 또는 퇴직금은 무조건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비 지출은 최대한 줄여서 하고 적은 돈이지만 일부라도 만들어 낸 뒤 조금씩 투자에 나서야하고, 퇴직금도 우량하고 성장성이 있는 주식이나 펀드에 장기투자하면 노후준비 자금에 보탤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혹시라도 몇 푼 있는 원금마저 손실될까봐 두려웠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주식투자가 어렵고 눈에 당장 잡히질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일단 무리였고, 그나마 가진 돈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주식투자하기로 맘먹고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정보습득만 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가슴만 답답할 뿐이었다. 

잘사는 것과 못사는 것에 대한 구분은 결국 재화(財貨)라면서요.

# 9. P부장은 잘 놀아야 성공하고, 잘 놀아야 행복한데 잘 놀지 못해 불행한 세대이다. 잘 쉬지 못하고 잘 놀지 못하니 늘 거칠고 불평 투성이다. 직장에서는 나름대로 성공과 인정을 받았더라도 가정에선 점수가 신통치가 않은 모양이다. 산업화라는 명목아래 고도 성장기엔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일해서 가족들 살려가며 보람도 가졌다. 그뿐인가. 민주화의 시대에서는 역사에 참여하는 소시민으로서의 삶도 거쳐 왔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바쁘고 피곤하다는 명목으로 가정이 흔들거렸다.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가족들과 함께 한 휴식과 추억이 생략된 것이다. 그저 힘들게 번 월급봉투를 가져다주는 것을 제일의 소명으로 알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계산도 하지 않았다. 자녀들을 대학교육 마치고 다소 여유가 있어 돌이켜보면 남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돈으로만 행복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쌀을 사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하루종일 행복타령 떠드는 것도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치였다.

P부장도 역시 잘 살기위해 몸부림쳤고 돈을 벌기위해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왔다. 마음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재화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생존을 위해 중요한 것이다. 인생에서 재화만큼 절대적인 것이 어디 있겠냐만 잘사는 것과 못사는 것에 대한 기준은 소유에서 판가름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P부장은 한때 잠시나마 돈을 모으는데 미친 기계로 사는 것보다는 무심한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롭고 마음 편한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꿈꿔 보기도 했다. 그래서 직장생활 틈틈이 주말을 이용해 친구들과 임대한 주말농장에서 가능한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었고 직장과 가정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

가끔은 일상의 일탈과 쾌락도 예상해 봤지만 지금은 아예도 쳐다보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소박한 밭작물을 보면서 생명의 가치에 감탄하며 자연의 신성함에 감사를 드리곤 했다. 때때로 돈 안 들어가는 음악과 독서를 즐겼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듣고, 일요일 TV에서 90세 노장(老將) 송해가 사회 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욕심을 비우고 비워냈다. 이제는 이런 비움이야말로 단순함을 가져오게 했고, 이제는 자연 속에서 사색하는 조용한 생활이 세상 어떤 휴식보다 달콤하고 값진 시간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분명 삶에는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고 하는데요.

# 10. 오피스텔 투자에 실패하고 나서 눈길을 돌린 주식투자에는 좀처럼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남들은 주식이나 부동산이다 투자하는 족족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고 조간신문을 펼치면 대박 난 투자자들의 스토리가 거론되는데 P부장에게는 이것과는 거리는 먼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런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본인의 운명이라면 그대로 따라갈 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운명은 타고 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본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이 간다. 탄생하는 순간부터 본인의 운명이 타고난 것이라면 세상은 뻔히 흘러갈 것일 테고,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모든 사람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것이든 노력을 하던 간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류 같은 것이 있다. 어쩌면 이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P부장의 주변을 둘러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업과 장사로 승승장구 번창하다가 여자 문제라든가, 도박과 음주, 투자사기 등등의 이유로 말년에 힘들게 모은 자산을 탕진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지인들도 많다. 한참동안 잘나가다가 과도한 사업 확장과 무리한 욕심 탓에 먼 길을 가기도전에 거꾸러지며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상황을  때때로 목격한다. 이뿐인가. 어떤 후배는 충분한 재능과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사업기회를 놓치고 안전하고 편안한 삶만을 추구한다. 주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오랜만에 온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조언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귀 기울여 담질 않는다. 소귀에 경 읽기가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매일 신문과 방송을 보면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스토리로 가득 찬 기사를 읽게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차별화된 마케팅과 기술력으로 우뚝 정상에 섰는지 관심이 간다. 특히, 매순간 절망의 순간이 펼쳐지는 사업의 고비마다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든 타이밍도 함께 눈여겨본다. 엄청난 돈을 들여 기술 개발한 사업 아이템도 좋은 타이밍을 만나질 못해 하루아침에 폐기해야하는 물거품 사례도 종종 목격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규모라지만 사업과 장사가 힘들다. 어쩌면 갈수록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에 이끌리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 이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돈을 쫒으면 안 되고 사람에 투자하고,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자만이 성공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P부장의 부동산 투자실패도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면, 자녀의 결혼자금과 노후준비를 위한 주식투자를 한다면 적당한 때를 기다려서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능력도 있어야하고, 본인의 좋은 타이밍을 찾아야하며, 인재를 적기에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사업과 장사에서 멋지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와 후회대신 무한긍정으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자고요.

# 11.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품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나이에 맞는 품격을 잃어 가면 어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나잇값을 하면서 품위 있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무 살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살아갈 필요도 없는 노릇이다. 다가올 60대를 연습 삼아 살기도 쉽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나잇값은 잊어버리고 현재의 나이에 충실해 보자. 과거는 물론이고 다가올 미래와는 상관없이 현재만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매순간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만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나이가 들면 욕망에 사로잡힌다. 무리한 욕심을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우고 계속해서 비워내야 하는데도 말이다. 물질적 욕심에 사로잡혀 건강을 해치고 주변을 힘들게 하고 행복을 위한 걸림돌로 족쇄를 채우고 만다. 무엇인가 더 채우고 소유하고 싶다는 헛된 욕망은 끝이 없다. 그 대신 훨씬 가치 있고 아름다운 대상들을 위해 진정한 욕심을 내보면 어떨까 싶은데 말이다. 그것이 건강한 가치이고 바람직한 사고다. 그저 생계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속에서 가려진 것인데 이젠 찾아내서 스스로 다듬어 빛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멋지고 품격 높게 남은 인생을 지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결론은 단 한가지다. 무한 긍정으로 지속적으로 사는 삶이다. 남의 이야기를 참고하되 자존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믿고 하고 싶은 바를 원 없이 실천하는 삶이다. 바람이 불어서 흔들릴지언정 그렇다고 결코 뽑히지 않는 뚝심 있게 사는 삶이다. 이렇게 살기위해서는 우선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꼼꼼하게 긴 호흡으로 짚어보고 인지해야 한다. 결국 자신을 철저하게 알아야 남은 시간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대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과 자기성찰을 통해 스스로 정리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것야말로 자신의 교과서요, 다른 참고서가 필요 없는 대목이다. 평생 신체적으로 젊을 수는 없겠지만 멋지게 나이 드는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 것을 다짐해야 한다. 또한 자신을 무한긍정으로 밀어붙이고 상대방을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 잘 노는 법을 터득해야 함은 물론이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고, 자신의 내면과 수없는 대화를 나눌지언정 가급적 말수를 줄여보는 선행학습을 진행한다면 멋있게 나이 듦에 대한 공식을 완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행복수명이 중요해요.

# 12. P부장은 사실 수년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남몰래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사실을 배우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속여왔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50대 우울증 환자수가 전체 환자 가운데 20.2%로 나타나 연령대별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60대가 17.9%, 70대가 17.6%순으로 우울증 환자의 56%가 50~70대로 나타났다.

한편, 재미있는 통계기사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81.9세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66세, 경제수명은 69세로 평균수명 대비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발생된다.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한 시간을 뺀 기간이다. 경제수명은 은퇴 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보유한 자산으로 생활을 유지했을 경우 준비된 은퇴자산이 소진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앞으로 건강수명과 경제수명이 아닌 행복수명의 패러다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행복수명은 나와 가족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생물학적 수명에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행복을 보탬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과 건강을 비롯해, 경제적 여유 등을 포함해 현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요즘엔 경제수명과 평균수명간 10년 이상 격차가 발생되면서 질병이나 빈곤에 따른 노후불안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해 13%인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불과 10년 후인 2026년에는 20%를 넘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라고 한다.

30~40대부터 이런 행복수명을 늘리려는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P부장처럼 50대에 접어들면 언제 회사를 떠나야할지 모른 환경 속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등 정년연령을 늦추려는 노력도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결국, 평균수명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활기차게 행복하게 사는 준비를 젊었을 때부터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문제로 다가온다.

먹고 사는데 치여 행복이란 단어가 끼어들 틈이 없네요.

# 13. P부장의 대학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대기업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뒤 시작한 골프용품 유통 사업에서 실패하자 간경화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갑작스런 소식에 망치로 한 대 얻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 옷을 입는 듯 마는 듯 지방에 있는 장례식장을 향해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광고가 흘러나오면서 “올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멘트가 들렸다. P부장은 운전하는 동안 행복이라는 단어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을미년 마지막달인 12월, 그것도 새해가 얼마 남지 않는 지금에 그동안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 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달려온 내 인생의 길에서 과연 행복이란 단어를 얼마나 생각해봤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루하루 치열하고 살았고 생계를 위해서 가장의 역할에 충실했던 생존의 현장이었고 정글의 법칙이었다. 거기에 무슨 행복이란 틈새가 끼어 있었는지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살면서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잠깐잠깐 즐거움과 기쁨으로 그동안의 어려움을 해소하면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힘들고 안좋았던 기억들이 더 많았던 것은 분명하다.

결국, 물질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식구들 굶기지 않고 원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남들이 해줄 수 있는 만큼의 사교육도 보내줬고, 가끔은 해외여행은 아니어도 국내여행을 하며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던 시절들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행복이 돈이라고 정의한다면 P부장은 이 대목에서 자신감은 없기에 할 말이 없다. 비록 초라한 현실 앞에서 가족과 본인의 희망을 찾아 점점 불행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최선을 다한 사실은 가족들도 모두 인정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담배 한 갑을 산 뒤 가판대에 있는 신문 1부를 사들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동아일보 1면에 발표한 동아 행복지수를 보면 한국인의 삶에서 돈 이외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행복을 비밀을 찾아내 맞춤형 행복 10대 제언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의 행복을 크게 저해하는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나의 행복을 내안에서 찾는 작업이 1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찾는 방법 여러 가지를 제시했다. 한 달에 한번은 자신을 선물하기를 비롯해 한 달에 한번 자원봉사 또는 기부하기, 10년과 2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보고 때때로 수정하기, 일주일에 한번은 전화를 끄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하루에 한번 나만의 뉴스 키워드 뽑아보기, 1년에 한번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기, 하루에 한번이상 가족과 친지와 동료에게 칭찬하기, 일주일에 한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스타 셰프되기, 한 달에 한번 문화와 스포츠 관람 및 체험하기 등이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서 행복합니다”

# 14. 장례식장에 도착해보니 반가운 얼굴이 하나둘씩 보였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결코 낮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왠지 숙연한 분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며 최근 근황에 대해서 주고받은 시간들로 이어졌다. 건강검진하다 암이 발생해 대수술을 한 이야기며, 직장퇴사 후 고향으로 낙향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고, 중국에서 보따리 무역상하면서 사기당한 일이며, 자녀들이 대학 다니다 말고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며, 부모에게 5층 건물을 상속받으면서 형제들 간 재산다툼이 발생해 능력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는 주문과 함께 많은 소소한 이야기들로 새벽을 넘겼다. 소주병도 수십 병 해치웠고 우리는 어느새 뻘겋게 취해 있었다. 친구들의 찌그러진 얼굴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 든든했고 예전 시절 생각이 떠올라 대학 신입생처럼 파릇파릇한 느낌마저 들었다.

P부장은 술김에 잠시 생각을 해봤다.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과연 내가 언제 행복했는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눈 내리고 찬바람 불던 겨울 바깥 날씨가 무척 추웠다. 때마침 장례식장 1층 장례식장 건물 앞에 노래방 빨간 불빛이 보였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가끔 술 한 잔하고 직장 동료들과 어김없이 찾는 노래방에서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가요를 자주 부르곤 했다. 어쩌면 행복해지고 싶은 소원을 비는 차원에서 부른 것인지 아님, 정작 그날 하루만큼은 행복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불렀는지는 알수는 없지만 지금은 나의 애창곡이자 18번이 됐다. 사실, 가사내용이 좋고 멜로디도 부드러워 일단은 따라 부르기가 쉬웠다.

갑자기 다른 노래도 생각이 났다. 한화 이글스 구장에 응원가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다. 경기 주요 고비마다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응원가가 터져 나오면 이글스팬들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일어서서 이 노래를 힘차게 부를 때면 정말 멋져 보인다. 어쩌면,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라기보다는 이 노래를 부르는 응원객들이 오히려 가장 행복해 보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렁찬 목소리는 ‘이글스라서 행복합니다’라는 노랫말이 경기장에 퍼질 때면 이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돼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아무래도 행복이란 단어에 취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승패에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어서 야구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직장과 가정에서 힘들수록 이 노래를 목 터져라 부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이글스파크에 가면 P부장은 어쨌거나 행복했었고 먹지 않아도 즐거웠다. 함께 찾은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행복시리즈 가요를 부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솟구쳤고, 약 먹은 것처럼 행복한 감정에 빠져 들었다.집에 들어와서 잠드는 순간까지 이러 감정이 지속됐다.

결국 생각해보니, P부장의 행복 호르몬은 노래 부르기에서 효과를 거둔 셈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우연히 찾은 대학친구 장례식장에서 찾은 행복감이 노래에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도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야구장에서, 노래방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음미하고 표출했는데 그것이 크기가 커져 나에게 행복감을 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데 말이다. P부장은 본인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는 행복의 힌트가 노래에 있다면, 좀 더 확대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길거리에서 눈을 흘기든 간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게 감정이 생기고, 아니 노력해서 생긴 이런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사는 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생각이었지만, 그동안 안 풀렸던 숙제가 풀린 것 같아서 장례식장을 나서는 발길이 무척 가벼웠다. 함박눈을 맞으며 P부장은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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