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취지 왜곡해 ‘재의요구권’ 촉구하는 충남도의회

기업 피해 과장? 실질 사용자 책임 강화가 핵심 석탄화력발전소가 보여준 원청 책임 회피의 민낯

2025-09-01     김다소미 기자
충남도의회 자료사진. 디트뉴스DB. 

충남도의회가 2일 열리는 361회 임시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촉구 건의안을 회부할 예정이다.

김석곤 도의원(국민의힘·금산1)이 대표발의한 이 건의안은 총 22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는데 구체적인 제안 배경을 살펴보면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본래 취지를 왜곡해 정쟁화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란봉투법은 노조법 제2·3조의 개정안으로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4년 관련 법안이 처음 국회의 발의된 이후 21년만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노사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가 원청 업체와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제한한 데 있다.

기존에는 하청업체가 형식상 교섭의 주체였지만, 실제로는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없어 실질적 성과 없는 ‘말뿐인 교섭’이 반복돼 왔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끊어내기 위한 조치다.

특히 최근 태안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24명이 원청인 한전KPS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1심 소송에서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며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실질적으로 원청이 재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작업 지시는 물론, 이들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평가 등이 이뤄졌다고 본 셈이다. 

이는 노란봉투법이 형식상의 근로계약에 갇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실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하고, 사측이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행하는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한다는 의미다.

노조 활동 중 노조가 사용자에게 부당하거나 노동과 무관한 내용의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교섭 거부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노란봉투법 '부정적 효과' 강조한 건의안

그러나 도의회 건의안 제안이유에는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제한하고 하청노동자가 원청 사용자에게 직접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개정의 배경에는 노동자 권리 보호 강화이지만 실제 노사관계의 기본 원칙인 ‘계약 당자사 간 교섭’ 원칙을 흔들어 원청 기업이 책임지지 않은 영역까지 의무를 지게 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노사 분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여러 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반화된 산업 현장에서 원청에게까지 단체교섭 의무가 부과되면 불법적이고 과격한 쟁의행위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지며 중소기업과 협력업체까지 연쇄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도의회의 주장은 하청노동자의 원청 교섭권을 ‘불법·과격한 쟁의행위 확산’과 곧바로 연결 지으며 부정적 파급 효과만을 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원청이 임금과 근로조건을 좌우한다는 점은 명백한 현실이며, 이를 외면한 채 ‘계약 당사자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은 노동자의 교섭권을 사실상 봉쇄하자는 논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원청의 교섭 의무가 곧바로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나 중소기업 피해로 이어진다는 도의회의 논리는 과도한 추측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질적 사용자에게 교섭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하청업체에 전가돼 온 책임 구조를 바로잡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도의회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기회 대신 기존 질서 유지를 위한 ‘위기론’을 내세우고 있어 노동권 확대라는 개정안의 본래 취지를 의도적으로 희석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사망사고 잊었나

도의회는 또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맞물려 불법 파업과 쟁의행위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돼 기업성장 위축에 따른 지역경제와 일자리 안정성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영계와 노동계 간의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는 사안으로 이처럼 충분한 사회적 합의없이 성급하게 추진된다면 혼란과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선 “헌법 제53조에 따른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해당 개정안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다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 권익 보호와 기업 경영 안정이 조화롭게 유지되고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리적 제도 설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사례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가 들춰낸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발전소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원청 정규직이 아니라 수많은 하청·재하청 업체에 소속돼 있다. 그러나 임금과 작업환경, 안전예산의 최종 결정권은 원청 발전사에 집중돼 있다.

고 김용균·김충현 노동자 사망 사고도 서류상 고용주는 하청업체였지만 실제로 작업 방식과 인력 운영은 원청의 관리·통제 속에서 이뤄졌다는 여러 증언과 증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도 ‘계약 당사자 원칙’을 내세워 원청의 교섭 의무를 부정한다면, 노동자들은 실질적 결정권을 가진 주체와는 대화조차 못 한 채 위험과 저임금 구조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도의회의 주장처럼 노란봉투법은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교섭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오히려 이를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노동현장의 갈등을 키우고,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드러난 것처럼 안전·고용 불안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이번 건의안이 상정되면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 국회의장,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각 정당 대표(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고용노동부장관 등에 발송된다. 

김석곤 의원은 <디트뉴스>와 통화에서 “하청제도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그 제도가 있으면서 회사 입장(원청 사용자)에서 손해를 봤을 때 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 나도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 (노란봉투법의 반대 논리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