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탐사기획] 공주 유명 사립고등학교의 이상한 교육

2025-08-28     김다소미·권예진 기자

공정과 신뢰는 교육의 근간이다. 하지만 공주시에 위치한 사립 A고의 ‘성적우수자 특별반’ 운영을 둘러싼 의혹은 그 근간을 흔들고 있다. 특정 학생들에게만 제공된 특혜와 이를 방조한 듯한 학교의 태도가 그렇다.  <디트뉴스>는 출결·수행평가·생활기록부·특별활동·시험지 요구 등 다양한 사례와 관련 정황을 추적하며, 이를 가능하게 한 학교 운영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본다.  이번 사안은 단지 한 학교의 일탈이 아닌, 지역 교육의 신뢰성과 형평성, 나아가 고교 서열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학생 간 차별의 실태와 그 배경을 사회적 맥락에서 조명하고하고자 한다. 총 5편으로 구성된 이 기획은 내부 증언과 자료, 전문가 분석을 바탕으로 특별반의 실체를 재구성하고, 제도적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이제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 다시 질문할 때다. 

① 성적우수자를 위한 '특별반'의 그림자 
② 기준은 있었을까..조작된 수행평가와 생기부
③ 학교의 주인은 학생일까, 사학재단일까
④ 교사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⑤ 공정한 교육의 조건 <끝>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유무를 거수로 물었던 장소. A 고 홈페이지 갈무리. 

“알고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면 결국 본인만 손해니까요.”

디트뉴스가 만나거나 통화한 공주 A고 교사들의 증언은 공통적이었다. 시험지 유출과 생활기록부 조작 정황, 성적우수반(소망반)을 둘러싼 특혜와 차별, 심지어 학교폭력 사건의 왜곡 처리까지.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이를 목격했지만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그들은 왜 침묵했을까.

학폭을 ‘없는 것’으로 만든 강당 집회

지난해 보직교사 B씨는 학교가 즐겨 쓰며 홍보해왔던 구호를 실천에 옮겼다. 이름하여 ‘학교폭력 없는 학교’. B씨는 전교생을 강당에 불러모은 뒤,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 없는 학교가 맞느냐, 여러분이 학폭 여부를 거수로 결정해달라”고 물었다, 학교 내에서 복잡하고 예민하게 발생할 수 있는 학교폭력을 단순 거수로 여부를 물은 거다.

재학생 김정남(가명) 씨는 ‘학교폭력 없는 학교’를 위해 학교가 은밀히 진행한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증언했다.

“그 당시 제 친구들이 학교폭력 신고로 조사를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학폭 심의위원회에서는 갑자기 학폭 얘기는 사라지고, 이미 끝난 교권침해 건으로 꾸중을 받았습니다. 결국 출석 정지 10일에 자퇴 권유를 받았죠. 아이들은 ‘하지도 않은 교권침해로 처벌받았다’고 분노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 지난해 정남 씨의 친구가 있던 C반에서는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특정 학생이 반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언어와 신체적 괴롭힘을 당했던 명백한 학교폭력이었다.

피해 학생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선생님과 부모님께 알렸고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3명의 학생은 학폭 심의위원회에 넘겨졌다. 그러나 심의위에 참석한 가해 학생이 받은 꾸중은 동급생에게 가한 ‘학폭’이 아니라 ‘교권침해’였다.

가해 학생들에게 씌여진 교권침해가 마냥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해당 학폭 사건이 접수되기 전 가해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 교권침해’ 건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교권 침해를 저지른 학생들은 출석정지와 특별교육 이수 처분 등으로 모두 징계가 종결된 상태였다. 그뒤 새롭게 학폭 사건이 발생했고 학폭위 심의가 열렸지만 정작 심의에서는 학폭에 대한 조사보다 이전 ‘교권침해’ 건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는 게 정남 씨의 전언이다.

“그 친구들이 교권침해 전적은 있었어요. 결코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미 전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당 처벌 이후에는 수업시간에 일부러 잤던 친구들이에요. 그런데도 학교가 이미 징계가 끝난 교권 침해로 또 다시 처벌을 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학교 폭력 없는 학교’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했던 것 같아요.”

담임 교체로 일단락 된 '교권침해' 

D교사도 당시의 상황을 비슷한 맥락으로 증언했다. “교권침해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았어요. 퇴학을 시켜야 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교권침해 피해 교사가 C반의 담임을 맡았는데 담임이 교체되더라고요.”

학교는 사건 이후 학생들에게 가해 학생들의 과거 언행을 무기명으로 조사해 불리한 진술을 쌓아갔다. 일부 학생이 특정 교사에게 대들었던 사례까지 끌어와 ‘예의 없고 불순한 행동을 했다’는 식으로 기록했고, 이는 곧 교권침해 사안으로 둔갑됐다.

이 때문에 가해 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친구를 괴롭힌 부분은 인정했지만, 하지 않은 행동까지 뒤집어 씌워졌다며 교사들에 대한 불신과 경멸을 드러냈다고 한다.

실제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12월 28일 A고에 대해 언급하며 “어떤 학생이 학교폭력 당해서 신고했는데 학교에서 애들끼리 장난친거라고 묻었다”는 글이 여전히 게재된 상황이다.

A고는 학교 홈페이지에 올해 학교폭력 예방계획서를 게시하며 “학교 폭력 사안 조사 시 관련 학생들을 분리해 조사하고, 축소·은폐하거나 성급하게 화해를 종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들의 권력 앞에서 교육청 지침과 학교 규정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학생 인권과 교권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A고 간부교사는 <디트뉴스>와 만나 “몇몇 학생들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 담임이 조회·종례까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다른 교사가 대신 들어가기도 했으며 잠시 안정되는 듯했지만 수업 시간에 욕설을 하거나 교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이에 교육지원청 담당 장학사와 논의한 결과 절차가 오래 걸리는 점을 고려해 자체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교권침해 규정에 따라 징계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간부교사는 이어 “구체적인 징계 내용은 개인 정보라 밝힐 수 없지만, 학생 3명이 징계를 받았다”며 “사소한 다툼은 있었으나 사안의 핵심은 학폭이 아닌 교권침해였다. 특히 당시 학생들의 언행은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학폭 여부를 강당에서 거수로 확인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수는 아니고, 학년부장이 전교생을 모아 훈화 비슷한 발언을 한 자리였다”며 “그 과정에서 학년부장이 말실수를 했고, 곧바로 전체 학생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안다”고도 덧붙였다.

정책홍보팀, 교사 감시·통제의 사조직

2023년, A고는 ‘정책홍보팀’이라는 조직을 구성했다. 학교의 우수한 교육 정책을 널리 알리고 교사들의 민원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게 목적이었지만 실제 기능은 달랐다. 교사 F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정책홍보팀은 사실상 보직교사와 교장의 사조직이었습니다. 새로 온 선생님들에게 ‘누구는 돈 문제로 좌천됐다’, ‘누구는 교장 눈 밖에 나 쫓겨났다’ 같은 험담을 퍼뜨리며 겁을 줬죠. 교장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각인시키는 겁니다.”

또 다른 교사 G씨는 “정책홍보팀이 교사들의 개인적 술자리, 인간관계까지 보고하도록 압박했다”며 “교사들 사이의 신뢰가 깨지고,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구조였다”고 전했다.

G씨는 이어 “한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 명단을 구해와선 당시 참여했던 교사들 한 명 한 명을 교장실로 불러 ‘왜 그 행사에 갔는지’, ‘해당 교원단체에 가입 했는지’, ‘누가 어떤식으로 가입을 했는지를 물었다. 심지어 그 행사는 교원단체 주최의 행사가 아닌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활동이었다”고 증언했다.

결국 교사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스스로 고립됐다. 보직교사는 학부모 민원까지 이용해 반대 교사를 좌천시키는 데 능숙했다. “민원은 힘 있는 교사를 치는 데 최적의 도구였다”는 게 일부 교사들의 설명이다.

교사들의 민원 창구 역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새롭게 임명된 교사들을 포섭해 세력을 키우는 구조로 전락했다.

H교사의 증언도 비슷한 취지다.

“보직교사는 교장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OO부장이면서도 OO관련 정보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반면, 교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능했습니다. 권력만 쥐여주면 교사를 이간질하고 여론을 선동해 결국 교장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는 구조였죠. 학교 안에서 늘 강조된 건 협력이나 신뢰가 아니라 감시였습니다. 누가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어떤 교원단체에 가입했는지까지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교사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들의 사소한 실수를 침소봉대해 전문성과 자질을 문제 삼고, 학부모 민원이 제기되면 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교사 탓으로 돌렸다. 그 결과 교사들은 불신과 위축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되는 사람은 한 보직교사이다. 그의 주도로 성과급 규정을 바꾸는 일도 있었다.

교사 H씨는 관련한 내용을 이렇게 증언했다.

“성과급 문제도 있었습니다. 성과급은 S, A, B로 나뉘는데, 그 보직교사는 수업을 거의 하지 않아 B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보직을 맡은 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평가 기준을 바꿔버렸습니다. 수업시수 차이가 반영되지 않도록 하고, 부장 보직 교사에게는 가산점을 몰아줬습니다. 본인과 측근들이 자동으로 S를 받을 수 있게 설계를 한 겁니다. 이 과정도 신규 교사들을 앉혀 형식적으로 처리했죠. 규정이 바뀐 걸 모르는 교사도 많았어요.”

“결국 떠나거나 침묵하거나”

숨막히는 권력 구조 속에서 교사들의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면 다양한 불이익이 뒤따랐다. 사립고 특성상 교육청 감사도 실질적 효력이 없었다. 학교 재단 이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 교사는 “교육청이 감사를 와도 결국 징계 권한은 재단 이사회에 있다”며 “저항하던 선생님들은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떠났다. 남은 교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A고 교사들의 침묵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더 큰 보복만 돌아오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학폭은 교권침해로 둔갑했고 특정 반에만 특혜가 집중됐다. 교사들은 침묵을 강요받았고, 학교의 신뢰는 무너졌다.

현재 성적우수자만을 위한 특혜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소망반은 ‘희망반(가칭)’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체계를 재편했다.

충남교육청의 감사가 시작되고 지적에 따라 ‘희망반’은 성적 우수자 중심이 아닌 희망하는 모든 학생으로 대상을 확대했고 과목도 예체능까지 넓혔다. 지도 교사들도 전 교사가 투입돼 돌아가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