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아닌 삶의 문제 '기본소득'의 진짜 의미
“기본소득은 실질적 자유, 기본사회는 공동체 회복” 정치적 프레임 떼내고 '정책 본질'을 논해야 할 때 단순 소득 재분배 넘어 사회적 불평등 해결할 제도 형식적 자유에 머문 '자본주의'→실질적 단계로 전환돼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는 경제적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다. 인간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첫걸음이다”
기본소득과 기본사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서봉균 기본사회 충남본부 공동대표(전 성균관대 교수)는 기본소득의 본질을 ‘실질적 자유의 보장’으로 정의하며, 이를 공동체적 삶의 회복으로 연결하는 ‘기본사회’ 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은 조건없는 최소한의 소득 보장으로 인간의 자유를 실질화하고 나아가 ‘기본사회’라는 새로운 공동체적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19일 <디트뉴스>와 만나 기본소득과 기본사회의 지향점에 대한 열띤 대화를 나눴다.
기본소득, 조건 없는 자유의 기반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국민에게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소득을 말한다.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개인에게 개별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 정책과는 구별된다.
지향하는 목표는 간단하다. 소득 구분 없이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의 재정으로 뒷받침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 이는 단순한 소득 재분배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 전환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 안정성을 강화하고 창의성을 촉진하는 등의 장점을 목적에 두지만, 재정과 의존 문제 등의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기본소득·기본사회’ 정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그니처 정책이다. 그는 “단편적 복지정책이나 소득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 기본적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로 전환하겠다는 뜻인데 이번 정책은 3년 전 대선 출마 당시 ‘기본사회’를 제시하며 ‘전 국민 보편 기본소득 연 100만 원 지급’을 약속했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서 교수는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득 재분배가 아니라, 형식적 자유에 머물던 자본주의 사회를 실질적 자유의 단계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란 단지 법적으로 허용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예로 “극장에 가고 싶은 사람이 비용이 없어 가지 못한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자유는 형식에 불과하다”며 “기본소득은 이처럼 실질적 자유를 박탈당한 시민들에게 현실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 복지국가의 공동체적 확장
기본소득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고, 실질적 자유는 옛날 신분제 사회에서 법적 속박을 없애 자유를 준 형식적 자유의 반대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형식적 자유만으로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서 교수는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사회’라는 개념으로 확장을 주장한다. 기본사회란 주거, 의료, 교육, 문화 등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국가나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다. 그는 이를 “단순히 돈을 주는 걸 넘어, 국민 개개인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체계”라고 정의했다.
기본사회의 실현은 단지 복지 확장이 아니라, 공동체성과 사회적 연대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그는 “현대 자유주의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지만, 이는 경제적 기반이 있을 때만 가능한 논리”라며 “공동체적 기초 없이 개인의 자율만 강조하는 사회는 결국 연대가 붕괴된다”고 지적했다.
세계 사례에서 찾은 가능성
그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국민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보장을 해주는 게 (보편화 돼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을 겪으며 극단적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됐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걷어 국민 삶을 지키는 사회 민주주의 모델을 잘 모르고 이런 방식을 공산주의로 오해한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들며 기본사회 실현 가능성을 설명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는 국가가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제도다. NHS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전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예전 어느 조사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제도 중 하나로 꼽힌 것이 NHS”라며, 국가가 기본적 삶의 조건을 책임지는 사례로 제시했다.
독일의 무상교육 제도도 단계적으로 진화했다. 초·중·고 무상 교육을 넘어 교육 기자재, 교재, 생활비까지 지원하는 ‘최상위 단계’의 무상교육은 “단순히 교육비를 감면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까지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과 낙인 해소
서 교수는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을 향한 낙인을 완화할 수 있다고도 진단했다. 그는 “과거 한 뉴스에서 복지카드로 식사를 하려던 아이가 비싼 메뉴를 주문하자 옆 테이블에서 이를 지적했고, 식당 주인이 분노한 일화가 있었다”며 “기본소득은 소득에 따라 차별하거나 낙인을 찍는 복지제도와는 다르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급됨으로써 차별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기본소득 담론이 특정 정치인과 결부돼 정치적 논란으로 흐른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기본소득은 특정 정파의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사회 안정성을 위한 제도”라며 정치적 색채를 걷어내고 실질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는 놀고 먹으라고 해주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이상의 것은 본인의 노력으로 일궈야 하는 것이고 우리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국가가 책임지는 최소한의 계단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기본소득의 주목적은 실질적 자유라면 확대개념인 기본사회는 실질적 자유를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진정한 의미의 연대라고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대해 말하면 꼭 따라오는 잘사는 사람과 고소득자를 향한 무분별한 ‘비판의식’에 대해서도 “이들을 비난할 게 아니다. 적어도 어떠한 체제안에서 부유한 사람은 그 체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다. 유치한 예시를 들자면 현재 정주영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과 같은 분들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근데 만약 한국전쟁에서 다른 결과가 나와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사회가 됐다면 이들이 가진 기업가적 능력은 그 체제 안에서 반동분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전쟁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함께 이뤄낸 체제 속에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 바탕에서 부유한 국민은 세금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고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해 얻은 결과라는 것.
정글식 각자도생은 '공동체성' 무너뜨려
그는 그러면서도 이번 정부의 ‘기본사회’ 정책이 맞딱뜨릴 저항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기본사회를 반대하는 집단이 나쁜 건 아니다. 서로의 이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는 국민이 나락에 빠졌다면 꺼내주는 단계에만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책임지며 사는 게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 각자가 노력해서 성공하면 과실을 받고 실패의 책임도 오로지 개인이 감당하는 정글식 각자도생 자유주의 개념”이라며 “(이런 방식이 지속되면) 사람이 삶을 사는 게 가장 기초적 집단인 공동체성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 단지 ‘자비로운 정부’의 결과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함께 겪은 뒤 동지적 연대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2차 대전 이전, 유럽은 노동자를 착취대상으로 보고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폭력적인 공산주의 혁명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극단적 자본가 혐오 방식이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노동자, 자본가 구분 없이 전쟁을 함께 겪으며 동지적 개념이 생겼다. 이후 자본가들은 세금을 많이 내서 국가 재정을 채우고 이 재정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 지원이 가능해졌다. 비자본가는 복지를 함께 누리니 극단적 폭력 혁명은 없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서 교수는 기본소득과 기본사회에 대해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부여군이 기본사회 모델에 가장 근접한 지자체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전세계에 팬데믹이 닥쳤을 때 당시 부여군은 전 군민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던 농산물 도소매, 화물운수 등 대부분 업종까지 확대해 군비 100%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는 “당시 엄청난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군 재정도 열악한데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식으로 반박도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 현재 부여군이 망했다는 얘기가 있나. 부여는 무너지지 않았다”며 “당시 부여군이 보여준 정책은 지자체 존재의 이유였다”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재정 타령은 사람을 살린 다음에 논할 문제다. 국민이 국가를 만든 것이지 국가가 국민을 만든 게 아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기본소득은 실질적 자유의 보장이고, 기본사회는 그 자유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그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