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혼자였냐”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발전소 노동자들 지속 요구했던 '2인1조'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다단계 하청구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확정됐지만 대책 無 노동자는 여전히 외면하는 사회와 정부

2025-06-10     김다소미 기자
지난 2일 태안석탄화력발전소에서 숨진 故김충현 씨의 빈소 모습. 대책위 제공. 

“사측에 2인1조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셀 수 없이 요청했습니다. 발전소 폐쇄가 확정되면서 인력 충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더군요.”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직원의 말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2일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정비동에서 일하다 숨진 故김충현 씨(50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사고현장도 방문했다. 거물급 정치인이 온다는 소식에 고용노동부와 사측 관계자들은 긴장하고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설명에 우 의장은 언성을 높였다.

고인이 사망한지 며칠이 흘렀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우 의장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던 김도형 대전지방고용노동청장은 “공구를 제작하다가 (옷 소매가) 끼여들어갔다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 의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사고 난 지 6일이 됐는데 노동부가 아직도 조사를 못하고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모른다는 게 납득이 되냐”고 질타했다.

이어진 대화는 더욱 가관이다. 한전KPS 관계자에게 ‘2인1조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2인1조라면) 사고는 줄어들겠지만 선반 작업이 워낙 정밀 작업이고 특수성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왜 ‘2인1조’가 지켜지지 않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 씨가 다뤘던 범용선반 기계 모습. 김다소미 기자. 

‘2인1조’ 작업이 이번 사안에서 매우 중요한 이유는 2018년 故김용균 씨(24세)의 죽음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고 구체적 ‘작업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용균 씨도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충현 씨가 다루다 숨진 범용 선반기계는 작업을 긴급하게 정지하는 버튼이 두 개나 있었지만 이를 눌러줄 이 없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분에 780번 칼날이 회전하는 범용기계는 고위험 작업으로 분류된다.

충현 씨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한국서부발전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했다. 서부발전이 발전소 정비 업무를 하청 준 한전KPS를 원청으로 두고 2차 하청업체 한국파워오엔엠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했는데 근무 기간 소속 업체는 9차례 변경됐다. 6개월 만에 변경된 적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왜 그랬을까. 왜 1년 이상 한 회사에서 근무하지 못했던 걸까. 충현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 노동자의 고용 구조가 다단계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용균 씨가 사망한 후 그의 동료들은 거리로 나와 이 같은 고용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외쳐왔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구조에서는 가장 위험한 작업을 외주로 넘기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고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조를 ‘죽음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남들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없다. 가장 아래에서 제일 험한 일을 하는데도 그렇다.

발전소 다단계 고용 구조는 책임과 관리감독 권한을 분산시키고 사측이 실질적으로 회피할 명분을 만들어준다.

신현웅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노동위원장. 김다소미 기자. 

“발전소 현 고용 구조로는 변화 기대 어렵다”


신현웅 민주노동당 충남도당 노동위원장은 이번 충현 씨의 죽음은 회사의 ‘인건비 절감’ 방향성 때문이라고 짚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별 폐쇄를 앞둔 상황에서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이 제시되지 않다 보니 인력 충원은 커녕, 회사는 더 싼값에 사람을 부릴 방법만 찾고 있는 것이다. 

신 국장은 “2인 1조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은 인건비 때문이다. 발전소 대부분이 작업별로 총액 입찰을 띄워 하청업체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구조”라며 “어떤 업체가 10억에 입찰을 따냈다면 1년 간 그 규모 안에서 유지비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한다. 사장 입장에서 이윤을 남기려면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하청 업체들끼리 입찰을 따내기 위해 총액을 다운 시키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더 적은 비용을 제시한 회사가 최종 낙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금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발전소 노동자들이 외주화를 멈추고 발전소 정규직화를 촉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7년 전 용균 씨 사망 직후 정부가 참여한 특별조사위원회는 노동자 직고용과 2인1조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충현 씨가 사망하기까지 현장에 적용된 뚜렷한 변화는 없다.

신 국장은 “그렇다고 입찰 총액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다들 올려달라고 하지만 한국서부발전은 공기업이고 공기업은 임의대로 총액을 늘릴 수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인력 충원도 애초에 불가능했고, 회사 입장에서 돈을 절약할 데라고는 사람 줄이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충현 씨도 관련 자격증을 다수 소지하고 꾸준히 교육을 받은만큼 베테랑 기계전문가였지만 정비동에서 기계를 다루는 작업자로 선임된 노동자는 그가 유일했다.

신 국장은 “한국서부발전은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정부 부처에서 통제를 받는다. 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에 올해 예산 규모는 이 정도이니 이 한도 내에서 모든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하면 1차 하청업체인 한전KPS 등에 내려보내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한전KPS는 사실상 한국서부발전의 자회사 개념이다. 예전에는 태안화력발전소가 직접 정비하던 업무를 외주 받는 식이다. 대부분 발전사의 임원급 퇴직자들이 이곳의 사장으로 취임한다.

대부분 재해의 사망자는 정규직이 아니라 2~3차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위험한 업무를 외주받은 노동자다. 정규직은 고위험 작업에 노출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신 국장은 우원식 의장이 사고현장에서 질문할 때 한전KPS 관계자가 “잘 모른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한다. “알 리가 없다. 자기 일도 아니고 담당 소장도 업무 내용을 모르는데 뭘 설명하고 뭔 책임을 지겠나”라고 탄식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조사발표 기자회견 모습. 대책위 제공.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대응책’ 의미 있으려면..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 지회장은 충현 씨가 생전에 용균 씨 죽음 이후 ‘2인1조’ 작업 원칙에 대해 끊임없이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노조를 구성하면서 공식 집회에서 셀 수 없이 사측에 요구해왔다. 정비 작업 자체는 관리감독이 실제 현장에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측과 당일 업무를 논의하는 미팅도 충현 씨 혼자 감당해왔다. 혼자 책임을 떠안고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사측의 보호를 전혀 받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김 지회장은 “재료를 가져다 충현 씨한테 가공해달라고 작업을 요청하면 (사측은) 관리 감독을 하지 않고 관련 서류에 형식적인 서명만 했던 것”이라며 “고인은 홀로 작업하고 홀로 고민하고 홀로 감독해왔다”고 말했다.

우 의장 방문 이후 고용노동부는 ‘태안 화력발전소 사망사고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주관 첫 회의를 열었다. 대책본부는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한 특별감독에 준하는 기획 감독에 착수했다.

왜 노동자는 힘들게 만든 법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또 죽어야 했을지 철저하게 조사돼야 한다. 

살아있는, 아니 살아남은 동료들은 두 명의 동지들을 보내고 또 거리에 섰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정부의 조치를 촉구하며 오는 여름 ‘공동 파업’을 예고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예고가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 수 있는 일촉즉발의 현장에 매일 출근한다는 사실에 공감해야 한다. 

사망자만 다를 뿐, 현장도 같고 구조도 같다. ‘현장의 실수’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제도의 변화를 유예한 결과다.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만 정해놓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동안 발전소 노동자는 아직 고용을 보장받지 못했다. 폐쇄 대응 방안에 반드시 노동자의 입장과 처우가 담겨야 한다. 

석탄화력의 시대가 끝나도, 사람을 지키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