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환희와 눈물 뒤섞인 윤석열 '파면 순간'
"대전 민주시민 이겼다" 하나된 은하수네거리
4일 오전 11시 대전 둔산동 은하수네거리엔 적막이 흘렀다. 전화 벨소리조차 울리지 않았고,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생중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두 손을 모으고 숨을 죽였다.
오전 11시 13분 윤석열 측 변호인 주장이 하나씩 부정됐다. 시민들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쟁점사항을 하나씩 짚으며 주문을 할때마다 말미에 ‘~없다’를 따라외쳤다. 표정이 차츰 밝아졌다. 작게 “이제 됐다”고 되내이면서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전 11시 22분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문 권한대행의 말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순간 좌중은 극렬히 반응했다. 두 손을 하늘로 뻗고 승리를 만끽했다. 안도감에 두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광장은 하나가 됐다. 광장을 지킨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위로를 보내고 얼싸 안았다. “윤석열을 구속하라”,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목소리가 광장을 메웠다. 깃발은 용감히 펄럭였고, 하늘엔 비눗방울이 흩날렸다.
모녀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 어머니 강은혜(55) 씨와 광장을 찾은 손원진(26) 씨는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4개월 동안 시간이 될 때마다 광장을 찾으면서 너무 당연한 결과인데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결과로 많은 민주시민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상에선 대통령이 파면되면 이를 기념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의 '파면 정식'이 화제다. 모녀는 "마음편히 파면 정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시민 김나희(47) 씨는 천막 농성이 시작될 때부터 광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2월 3일 내란의 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고, 시민이 힘을 합쳐 군인의 국회 침입을 막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었다.
김 씨는 “그동안 너무 추웠지만 후련하다. 너무 당연한 결과를 듣기 위해 네달 동안 길에서 지낸 생각을 하니 눈물이 흘렀다"며 "다시는 이런 상황이 재현되지 않아야 하며 그날의 시민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림의 마지막을 집에서 완성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안도했다.
대전외고 3학년 정세영 양은 조퇴를 쓰고 광장에 왔다. 일선 학교에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 시청 안내' 공문을 발송한 타 시·도교육청과 달리 대전시교육청은 관련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양은 상기된 표정으로 “정치적 중립의무 이전에 민주시민으로서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가 지금 역사 속에서 있는데 이 정도는 함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파면이 인용될 때 광장에 함께 나왔던 동료와 안고 울었다. 지난해 12월부터 계속 깃발을 들었는데 그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전했다.
민주당 대전시당은 당직자와 시·구의원에게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혹여 탄핵이 기각 혹은 각하될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김민숙 대전시의원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현장을 찾았다.
김 의원은 "국민은 살아있고 헌법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매일 점심과 저녁에 진행했던 집회는 일단락 됐지만, 이제 나라를 바로 세우고 민생경제와 국가 안보를 챙길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서 나라가 빨리 안정화 됐으면 좋겠다" 말했다.
대전지역 46개 시민, 사회, 종교 등 단체로 이뤄진 윤석열정권퇴진대전운동본부(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3월 이후 투쟁을 선포했다. 무려 4개월 간 은하수네거리에서 40여 차례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매일 저녁 7시 시민대회를 열어 지역사회 연대를 이어갔고 헌정질서 회복에 불씨를 지폈다.
신윤실 운동본부 상황실장은 “시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사회대개혁까지 갈길이 먼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7시 은하수네거리에서 시민 승리를 자축하는 '49차 시민대회'를 개최한다.
한편 헌재는 이날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파면 이유로 "헌법질서 침해", "민주공화정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