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기독교의 집단적 우매화..“극우 파시즘은 교회가 촉발”

"성도들, 자신이 뭘 믿는지 몰라" 교회가 독재정권에 붙어 세력 확장 민주 정부 겪으며 보수 기독교 '위기감'

2025-02-13     김다소미 기자
성남 바른교회 이주헌 목사는 전광훈 목사에 대해 "한국 교회의 부정적 역사를 긁어모은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다소미 기자. 

현재 한국 사회는 ‘극우 파시즘’과 직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12·3 내란사태 수습과 탄핵 결과에 따라 이 극심한 분열 양상을 누를지, 더 큰 혼란을 가져올지 결정하게 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연일 찬반 대립의 중심에 서 있다. 시민이 모이는 광장은 이미 자극적 정치 선동 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광장의 역할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특정 종교가 분열의 언어를 쏟아내는 장소로 고정됐다는 데 있다.

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사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다. 정치권이 전 목사와 손을 잡으면서 그를 추종하는 기독교 세력은 어느새 대한민국 보수를 흔드는 핵심이 됐다.

성남 바른교회 이주헌 목사는 이런 현상에 대해 교회 자체가 뿌리 깊은 반공 이념으로 성장해온 탓이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 보수 기독교가 극우 정치를 촉발시켰다고 진단했다.

이 목사는 10일 <디트뉴스>와 만나 “한국 교회는 보통 성도에게 정치를 언급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훌륭한 목사는 설교 시간에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식의 평가도 있고 성도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정치적 현상에 대해 비평을 할 수 없게 만든 것과 동시에 국가가 필요로 했던 이념을 충실하게 대변해 주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교회, 정권의 불의에 붙어 성장 


그가  말하는 ‘국가가 필요로 했던 이념’은 반공주의다. 그는 “한국교회의 출발 자체가 서북 지역(평양) 중심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시작했다. 그 계파가 주류화 되면서 출발한게 반공”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이승만 정부 때도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죄를 면해주면서 싸움의 방향을 공산주의로 돌렸다. 한국 교회는 WCC(세계교회협의회) 문제가 있다. WCC가 이승만의 독재를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승만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의 독재를 우려한다고 해서 빨갱이로 규정하고 이념적 잣대를 들이댔다. 박정희 시대 들어 김준곤 목사에 의해 CCC(한국개신교선교단체)가 출현하고, 유신으로 성난 민심에도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것에 대해 (정부는 기독교가) 정권 친화적이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김준곤 목사는 1974년 CCC라는 선교 단체를 세우고 같은 해 여의도 광장에서 ‘엑스폴로74(EXPLO)’를 열어 빌리 그래함 목사를 초청했다. 한국 기독교는 이때를 한국 교회 부흥의 역사적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복음 선교 운동을 전개하며 나라 구하기 애국 운동 등 청년 정신 운동을 중심으로 젊은 세력을 규합했다.

계엄 포고령도 허용해준 '종교집회'


이 목사는 “72년도 유신 이후 열린 이 집회를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아무리 모인다 한들 반정부 입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라며 “최순실 사태 때 언급됐던 최태민과 연결된 십자가 구국선교회도 박정희 일가에 충성 맹세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권 들어서는 “당시 계엄 포고령을 보면 종교집회는 허용해 준다. 그 의미는 한국교회의 기본적 포지션이 독재정권에서 어떤 반발이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암묵적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이후 교회는 전두환을 데려다가 국가 조찬 기도회를 열고 주요 교단장과 영향력있는 목사가 모여 전두환을 칭송했다.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라는 장군에 빗대어 불의를 몰아낸 위대한 영도자라고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전광훈은 '교회 부정적 역사' 긁어모은 인물


특히 “한국 교회가 보수중에도 치우친 보수의 위치에 늘 서 있었다. 성도들은 자각을 잘못했던 것”이라며 “교회의 기본적 스탠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정치 현상과 교회에서 교육이 거의 안 된 민주시민으로서 역량 부분이 맞물렸다”고 진단했다.

이 목사는 “그 무지와 기존 스탠스가 어우러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점으로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국면까지 이어진다”고 바라봤다.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서게 된 전광훈 목사에 대해 “한국 교회의 부정적 역사를 긁어 모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 원인에는 교회가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조된 감정에만 매달리는 한국 교회의 현실


이 목사는 “교회를 오래 다니는 사람도 자신이 뭘 믿는지 모른다. 기독교인은 어떤 계기를 통해 고백을 한다. 다양한 계기를 통해 내가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그 순간들이 있는데, 그러면 나를 찾아온 그 신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근데 현실의 교회는 그 신이 나를 만나주셨던 그 감정을 계속 추구한다. 현재 교회에서 일어나는 주술적인 일은 그때의 황홀한 감정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며 “그때의 고조된 감정을 계속 반복하고 지속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는 교회의 메인 스피커로 등단하기 전, 부흥사로서 소규모 지역 교회를 돌며 이름을 알렸는데, 이 목사는 기도원 등을 돌며 활동하는 부흥사가 앞서 말한 ‘감정 자극’을 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부흥사가 그 감정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 성도는 하나님의 역사라 인식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면서 ‘선택받은 믿는 자’라는 선민의식이 자리잡게 된다”고 부연했다.

치우친 정서와 선민의식이 만나 '우매화'


그는 “신앙을 계급으로 이해하는 현상이 많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믿음으로 구원받을 내가 지위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선민주의적 사고는 전 목사가 이끄는 집회 등에서 쉽게 보인다. ‘이 나라를 공산화로부터 막기 위해 특별히 우리를 부르셨다’는 식의 생각”이라고 진단했다.

이 목사는 “전한길 강사가 세이브코리아 집회 단상에 서며 아이엠 크리스찬이라고 말했다. 그 모습 자체가 이런 현상을 상징해주는 표현”이라며 “이들에겐 신앙이 이 세상에서 얻지 못한 지위를 얻게 해주는 도구라는 요소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권위의 순종과 예수님을 믿어서 내가 평안을 찾았느냐라는 질문을 하나님의 뜻처럼 말해왔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면서 일종의 종교적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목사의 어떤 얘기에 '아닌 것 같아요'라고 비판 하면 한편으론 불편하니 내 마음의 평안이 깨지는 거다. 그러면 그동안 배워왔던 하나님을 향한 순종도 어긋나고 평안도 사라지니 자꾸 회피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교회 안에서 맹목적으로 앉아있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사에 대한 일방적 순종과 분명히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의 보편화에 대해선 “우리 사회는 결과주의 세상이다. 하나님이 우리 같은 대형교회를 그냥 두시겠냐, 우리 목사님이 잘못된 얘기를 하겠냐라는 태도가 집단적 우매화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극우 파시즘 형태, 교회로부터 출발"


이 목사는 “현재 한국의 극우 파시즘 형태는 교회로부터 출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뉴라이트 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전광훈 목사도 ‘이명박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운다’는 말들 공공연하게 해왔다. 반공주의적 기독교가 김대중, 노무현 시기를 지나고 위기감 속에서 이명박을 기점으로 결집한 이 흐름은 교회에서 일어난 하나의 운동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교회에서 음모론, 극단적 종말론은 한국교회 교세가 줄면서 자극적인 언어의 메시지로 성도들을 선동하다 보니 그 세력이 커지고 주류화 됐다. 이런 부분을 주장하며 성장한 대표적 강사가 유튜버 그라운드씨(김성원)”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는 지자체가 손을 뻗지 못하는 공공의 영역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 이들의 영향력과 도움은 상당하다. 일종의 전도 수단으로 보여지기도 하는데 "어떤 태도로 이 역할 수행해야 하냐"는 질문에 "‘역학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목사는 “현재 교단이 생각하는 교회 성장의 공식이 위험하다. 개인적으로 대형교회 운동이라고 표현하는데 대부분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일종의 주특기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하고, 어느 집회 몇 명이 모이냐 외에는 목사의 목회 의미를 말 할 수 있는 요소를 찾지 못한다. 각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재정의가 필요가 있다. 특히 인구소멸 지역에 있는 교회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는 교단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광훈의 '자유마을' 이단과 유사한 방식 


최근 전광훈 목사가 일종의 공동체 형식으로 구축한 ‘자유마을’에 대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아주 작은 마을까지 차지해야 이 운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들이 홍보하는 유심칩, 신용카드는 전통적으로 이단이 해왔던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성도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헌신자는 그 안에서 나오는 어떤 수익 모델을 통해 사례하는 형태는 한국 교회 이단으로 분류된 신앙촌, 구원파, 통일교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천안 독립기념관, 기독교의 '功'만 부각


뉴라이트 논란을 일으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의 부임 후 독립기념관은 지난해 12월 KCF조직위원회(Korea Christmas Festival·위원장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를 꾸려 ‘크리스마스에 만나는 독립운동’ 행사 출범식을 개최했다.

한국독립 80주년을 기념하며 기독교 천주교 등 한국 독립에 기여한 종교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마련된 거다. 이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결코 독립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학자의 강조점은 일제강점기 시절, 31명의 민족대표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라며 “그리고 중간 맥락 없이 이승만과 제헌국회 당시 이윤영 목사의 기도문으로로 시작된 지점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 기도문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본 회의록에 속기된 것으로 임시의장을 맡았던 이승만 대통령이 전 국회의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목사는 “민족대표는 기독교이고 기독교는 나라의 근본이고 이를 행한 이가 국부 이승만이라는 흐름이다. 그러나 1919년 3·1 운동 이후 대부분 (기독교인이) 변절한다. 1934~1936년도에 감리교가 제일 먼저 신사 참배를 결의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시 교회 주요 교단장은 교단별로 애국기 헌납 운동을 했다. 헌금을 모아 전투기를 일본에 헌납한 것인데 해방 이후 교단장들은 반민특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활란으로 대표되는 친일자가 이승만과 함께 반공주의자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신분이 세탁된 과정은 왜 빼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유관순 열사도 기독교를 믿었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당시 개신교 주류는 신사 참배와 부역이었다”며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개신교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관지으며 개신교의 색으로 덧 입히려고 하는 것은 이 같은 공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