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공동체 기반의 대안 경제 '실험은 계속된다'

[인터뷰] 한밭레츠 오민우 상임대표

2025-01-25     손지민 인턴기자

자본주의가 만든 개인의 고립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자원과 노동력을 공유하며, 연대와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실험적 공동체가 있다. ‘두루’라는 독자적인 화폐 체계를 갖추고, 현대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진지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한밭레츠다. 대전에서 시작된 한밭레츠의 작은 실험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오민우 상임대표를 만나 이 공동체의 철학과 실천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밭레츠 오민우 상임대표

한밭레츠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IMF 경제 위기 당시 형성된 담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적 해법을 실험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화폐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크게 흔들렸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사람들은 경제적 자립과 인간적인 연대를 회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에서는 주민들과 시민사회가 서구에서 시작된 지역화폐 모델인 레츠(LETS)를 도입하기로 했고, 1999년 50여 명으로 구성된 준비 모임을 거쳐 2000년 중구 대흥동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밭레츠의 도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나요?

“한밭레츠는 자본주의가 노동력과 자원의 순환을 돈이라는 매개체로 제한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람들이 일을 멈추거나 에너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실험할 필요가 있었죠. 이를 통해 지역화폐와 공동체 기반 경제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 자립과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혁신적인 시도를 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한밭레츠의 지역화폐 두루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두루는 단순히 기존 화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돈이 없어도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순환 경제를 실현하려는 대안적 모델로 설계됐죠. 사용자들이 거래 시 최소 20~30%를 두루로 결제하도록 해 화폐의 순환을 빠르게 하고, 경제적 약자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두루를 사용하면 지역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나요?

“두루는 단순한 거래 수단을 넘어 노동, 시간, 재능의 교환을 촉진하며 지역 내 자원의 순환을 활성화해 자립적인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합니다. 기후 위기 대응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활용되고 있고요. 예를 들어, 환경 보호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두루를 지급하는 실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한밭레츠에서 지역화폐 두레를 통해 거래되는 빈티지 의류들. 지속 가능한 소비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간이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어떤 장점이 있나요?

“한밭레츠의 가장 큰 장점은 주민 간의 대면 거래를 통해 신뢰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주민들이 직접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며 상호부조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공동체 연대감도 형성할 수 있죠. 주민들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한 유연한 결제 시스템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곳도 강점입니다.”

전국적으로 확산하지 못한 건 한계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많은 사람이 한밭레츠가 규모를 키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히려 지역 특화 모델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한밭레츠는 대전에서의 성공적인 운영을 기반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독립적인 지역화폐 모델을 도입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어요. 매년 여러 단체가 이를 배우러 방문하는 것만 봐도 한밭레츠가 지역화폐와 공동체 경제의 상징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죠.”

한밭레츠가 대전 지역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지역 공동체에 신뢰와 연대를 심어줬어요. 지역화폐 두루를 통해 주민들과 상점 간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강화됐고, 이를 기반으로 공동체 유대감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단순히 거래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한밭레츠 내부 공간. 소모임 ‘소소극장’이 열리거나 회의가 진행되는 다목적 장소로 활용된다. 공간 옆에는 넓고 편리한 공유 주방이 자리하고 있다.

한밭레츠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회적·문화적으로 어떤 기회를 제공했나요?

“한밭레츠는 단순히 소비자로 머무르지 않고, 주민들이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어요. 환경운동, 기후 정의,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대전은 새로운 대안적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밭레츠는 지역 활동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한밭레츠는 활동가들에게 배움과 성장을 제공하는 공간이었어요. 여기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사회협동조합 민들레나 품앗이 협동조합 같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된 사례도 많습니다. 지역 시민단체들의 네트워킹을 촉진하며 연대와 협력 문화를 확장하는 데도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했고요.”

한밭레츠는 어떤 단체들과 협력하며 활동하고 있나요?

“민들레의료생협, 녹색연합, 대전환경운동연합 등 다양한 단체와 함께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공간을 공유하며 이들 단체의 활동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나 기후 위기 대응 프로젝트 등 공통의 목표가 있을 때는 협력하여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채식 케이터링 사업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대전지역에서 채식 케이터링을 제공하며 환경단체와 진보적 모임을 지원하고 있어요. 특히, 녹색연합과 협력해 총회나 행사에서 채식 케이터링을 제공하며, 환경운동과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접목하고 있죠. 소소아트시네마와 같은 문화적 공간에서도 이를 활용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고요.”

한밭레츠 공유부엌에서 채식나눔 활동을 벌이는 모습.

당근마켓과 같은 대형 플랫폼 중심의 경제와 한밭레츠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대형 플랫폼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공동체적 가치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한밭레츠는 지역 농산물 직거래 같은 활동을 통해 자급자족과 공동체적인 경제 모델을 지향하죠. 청년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단순한 소비를 넘어 지역과 연결된 지속 가능한 경제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밭레츠가 자본주의와 플랫폼 경제가 심화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기술과 플랫폼 경제가 삶을 조각내는 현대 사회에서 한밭레츠는 그 반대로 삶의 본질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한밭레츠가 사람들이 경제를 넘어 삶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손지민 인턴기자

새로운 세대들에게 한밭레츠는 어떤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세대들이 자신만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삶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기존 틀을 넘어 더욱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