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먼저, 아우 먼저' 대전·충남 행정통합 정치셈법

[디트의눈] 통합 공동선언 뒷이야기

2024-11-22     한지혜 기자
대전시와 충남도가 지난 21일 행정통합 추진 공동 선언식을 개최했다. 사진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모습. 대전시 제공.

‘피를 나눈 형제만큼 친한 사이’. 이장우 대전시장이 지난 21일 열린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공동선언식에서 김태흠 충남지사와의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두 단체장은 오는 2026년 4월 차기 지방선거 전까지 두 시·도 간 행정통합을 빠르게 마치겠다는 구상이다. 대전직할시 승격 후 35년 간 분리·발전해온 역사를 사실상 1년 만에 통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피를 나눈 형제는 금방 합가가 가능하지만, 서른 다섯 해를 각자도생해온 360만 시·도민이 행정통합을 대하는 온도는 어떨지 아직 가늠이 어렵다.

대전과 충남이 통합 추진을 선언한 당일, 경북 기초의회 중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한 지역은 7곳으로 늘었다. 같은날 한 군의회에선 ‘행정통합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다. 경북도가 주관해 시행한 주민설명회는 요식행위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주민 의견수렴이나 지역 정치권과의 공감대 확보 절차 없이 ‘시·도지사 선언’을 시작으로 하향식 논의를 시작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한 충남에선 일부 시·군을 중심으로 이미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같은 우려에 두 단체장 모두 “금시초문”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합 추진 공동 선언을 앞두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않은 점은 선언 첫날부터 갈등의 불씨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충남도당이 행사 직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교감 없는 통합 선언’이라는 입장을 냈고, 두 시당위원장도 쓴소리를 했다. 

행정통합은 정파를 떠나 합심해야 하는 의제다. 또 특별법 통과를 전제로 한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과 특별법을 논의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 의원이 대전, 충남 통틀어 1명뿐인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행정통합=정치적 산물' 오해 불식하려면

이장우 대전시장(사진 오른쪽)과 김태흠 충남지사(사진 왼쪽)가 지난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을 공동 선언하고 있는 모습. 대전시 제공.

기초 연구결과 도출, 기본적인 여론수렴 절차에 앞서 행정통합 추진 선언부터 나선 두 단체장의 행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내달 출범을 앞둔 ‘충청광역연합’이 주목을 받기도 전에 통합 추진을 선언하는 모양새를 세종과 충북에서 좋게 볼 리 만무하다. 

특히 이날 공동 선언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지와 거취 문제였다. 이를 묻는 언론을 향한 답변에서 두 단체장의 정치 셈법을 어느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김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당의 요청에 따라 도지사에 출마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치적으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왔고, (통합지자체장이라는) 미래의 꿈이나 이런 부분이 없기 때문에 통합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정통합 시 재선 출마를 사실상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 시장은 충청대망론을 언급하며 김 지사를 추켜세웠다. “충청도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김 지사”라며 “(김 지사가) 결심한다면 성심을 다해 도울 생각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통합지자체장 선거에서 물러날 의사를, 이 시장은 김 지사의 대권 행보를 응원하는 입장에 섰다. 시·도민을 향해 통합 추진을 선언하는 자리의 의미가 한순간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의 정치적 셈법으로 치환된 장면이다. 대구·경북의 홍준표 시장과 이철우 도지사 역시 정치권으로부터 같은 눈초리를 받고 있긴 마찬가지다.  

‘상향식 통합’은 시·도민이 통합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다. 통합 준비에 소요되는 행정력과 막대한 예산, 사회적 갈등비용까지. 행정통합을 위한 준비가 결국 매몰비용이 되지 않으려면, 또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식하려면, 행정은 오히려 한걸음 물러나야 한다.

피를 나눈 형제는 미워도 서로 용서가 가능하지만, 시민과 도민은 결코 섣부른 행정을 용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