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 행정통합 너무 쉽게 보는 건 아닌지
행정구역 개편은 역사 이래, 꾸준히 진행됐다. 통합도 했다가 분리도 했다가 다시 통합했다가 다시 분리하기도 하면서 휴화산처럼 늘 꿈틀거렸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분리가 대세였지만, 얼마 전부터는 통합이 대세로 시류가 옮겨졌다.
행정구역은 편의를 위한 설정인 만큼 언제든 통합도 할 수 있고, 분리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이다. 최대 다수가 최대 만족할 수 있게 결정되면 못 하거나 안 할 이유가 없다. 시류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다만, 행정구역 통합이나 분리는 언제 한번 후유증 없이 진행된 적이 없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행정의 통합 또는 분리는 실상 주민의 삶, 전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변화를 동반한다. 득과 실이 공존한다.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본래 대전과 충남은 한뿌리였다. 1895년 충남과 충북이 분리되기 이전에는 500년 넘게 충북까지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다. 세종도 2012년 전까지는 충남 땅이었고, 충남과 충북이 갈린 1895년 이전에는 그곳 또한 그냥 충청도였다. 충남과 충북이 먼저 갈라섰고, 이후 대전이 충남에서 분리했고, 세종이 특별자치시로 떨어져 나갔다.
메가시티 개념이 확산하며 4개 시‧도를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하자는 논의가 시작됐지만, 충북과 세종은 일단 유보 또는 반대 의사를 확실히 밝혔고, 대전과 충남의 통합 논의가 고개를 들었다. 양 시‧도간 통합 논의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구체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돌연 ‘대전·충남 통합지자체 출범 추진 선언식’을 갖고 통합에 관한 입장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물론 이전부터 수면 아래서 통합 논의가 진행됐지만, 수면 위에서 공식화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지역민은 적지 않게 놀라는 분위기다.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지만, 극렬히 반대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통과 통신의 눈부신 발전 속도로 인해 행정통합이 대세란 점에서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염려되는 건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가 시‧도간 통합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엄청난 과제를 던져놓고 1년 6개월이란 제한된 시간 안에 해결 가능하다고 장담하고 있으니,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선례를 들춰 보면 기초지자체인 시‧군 통합에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갖가지 갈등과 변수를 조정하고 해결하면서 풀어가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지역별, 권역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기류가 포착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상컨대 엄청나게 복잡한 이해관계가 표출될 것이고, 극렬한 반대 의견도 제기될 거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도 발생할 거다. 중앙정부와 조율해야 할 문제도 산더미처럼 많을 거다. 반대는 안 하더라도 극도의 혼란을 호소하는 주민도 발생할 거다.
그러나 이 엄청난 일을 화두로 던진 양 시‧도지사는 너무도 태연하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그 점이 심히 걱정된다. 통합 행정구역의 명칭만 놓고도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각종 선출직 공직자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드러날 수 있다. 갈등은 끝없이 이어질 거다.
대전시민도, 충남도민도 불쑥 도출한 통합 논의에 적잖은 기대와 함께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그런 만큼 신중에 신중을 더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양 시‧도의 최고 책임자인 시장과 도지사는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시류에 맞게 통합을 시도해 보는 것에 반대할 이유나 명분은 없다. 주민의 뜻이 어떨지 모르니 적극 지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건 주민의 뜻이다. 주민이 원한다면 추진해야 할 것이고, 반대한다면 논의를 접어야 한다. 이 중대한 문제가 특정인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대전시와 충남도에 바라는 건 신중해달라는 거다. 한 사람의 주민이라도 더 만나보고 진정 주민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숙고하여 차근히 진행해 달라는 거다. 설령 주민 의견이 통합으로 쏠려가더라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충분히 귀담아들어야 한다. 절대 급하면 안 된다. 급하면 급할수록 상처와 후유증은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