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랜드평판 삼각동맹’이 여론을 조작했다
[탐사기획] 누가 ‘브랜드평판’ 순위에 열광하나 ⑧ 수천만원 계약 후 ‘순위 급상승’..대학과 자치단체 1등 지상주의, 언론의 ‘경마식 보도’가 근본 원인
‘브랜드 평판’이 대한민국을 줄 세우고 있다. 주요 일간신문은 물론이고 소규모 인터넷매체까지 하루에 수십 수백건 ‘브랜드 평판 순위’ 기사를 쏟아낸다. 정부기관, 자치단체, 대학, 상장기업과 상품, 아이돌과 배우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매일 ‘1등’이 넘쳐난다.
순위 경쟁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최근 이슈의 중심에 선 ‘한국기업평판연구소’ 때문이다. 법인명은 ㈜한국미디어마케팅. 서울 서초동 공유오피스 한편 서너평 유리 칸막이에 책상 2개가 전부인 경영컨설팅 업체다.
물론 외형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연구소가 홈페이지에 소개한 ‘평판 분석법’이란 것은 분류기준, 조사도구, 분석기법 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모호한 내용뿐이다.
‘브랜드 평판’ 순위에 대한 신뢰도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일부 커뮤니티와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낮은 신뢰도 문제를 지적했다. 본보가 접촉한 다수 전문가들도 동일한 의견을 냈다. 국내·외를 가리지도 않는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한국의 ‘브랜드 평판’ 신드롬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K-POP(케이팝) 애호가로 구성된 다국적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케이팝 다이스키’ 운영진은 ‘한국의 브랜드 평판 순위’ 자체를 “쓰레기”라고 비난할 정도다. 브라질, 네덜란드, 미국, 독일 국적 데이터분석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운영진은 “빅데이터 안에서 긍·부정 요소를 감지해 평판을 조사하는 일은 AI 기술을 가진 빅테크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연구소장은 여러 근거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영업비밀”이라고 응수했다. 다만 그는 브랜드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연구자가 아닌 ‘사업가’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고향이 천안이고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자신의 애향심이 브랜드평판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감추지 않았다. ‘브랜드평판 순위’에 얼마나 많은 작위적 요소가 개입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작위적 요소 개입..계약 체결 후 ‘순위상승’ 사례도
이 업체와 홈페이지 구축이나 컨설팅 관련 수의계약을 체결한 충청권 한 자치단체와 대학은 계약체결 직후, 눈에 띄는 ‘브랜드 평판’ 순위 상승을 보였다. 결국 한 경영컨설팅 업체가 ‘브랜드 평판’이라는 보기 좋은 떡을 들고나와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떡고물을 묻혀 그럴듯한 ‘순위 마케팅’으로 영리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경영컨설팅 업체의 영리활동에 공공기관과 언론이 부화뇌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권위’까지 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가 공공기관 브랜드평판 순위를 발표하면, 기관이 대대적으로 이를 홍보하고 언론이 검증 없이 받아쓰는 시스템이다. 이른바 ‘삼각동맹’이다.
삼각동맹을 가장 잘 보여준 곳은 대전시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대전시는 5개월이 넘도록 ‘브랜드평판 순위’를 시정 전면에 내세워 ‘치적 홍보’에 활용해 왔다. 홍보조직이 적극 나섰음에도 시장은 직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서 연구소 책임자조차 당혹스러워할 정도였다. 그는 “성심당 덕을 본 거를 너무 자기(이장우 시장) 능력으로 하는 그거를 좀 비판해야 한다”며 “우리도 깜짝 놀랐다. 저렇게 홍보할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근본적으로 빅데이터, 도시 브랜드 관련 다수 전문가들은 언론의 ‘경마식 보도’가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광고주협회(KAA)가 발행하는 저널 2018년 9·10월호는 기업평판연구소 신뢰도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조사방법의 투명성 없이 신뢰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당시 김주호 명지대 교수는 “지수의 정확성보다는 일단 흥미 위주로 터뜨리고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다음 그걸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곳도 봤다”고 정확히 ‘삼각동맹’을 꼬집었다.
그러나 결국은 언론이 문제다. 김 교수는 “무분별하게 받아쓰는 언론사가 제일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오늘도 조사기관의 신뢰도 따위는 아랑곳없이 ‘브랜드 평판 1위’를 알리는 똑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