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 몰라도 1위면 좋다?..브랜드평판에 빠진 도시들
[탐사기획] 누가 ‘브랜드평판’ 순위에 열광하나⓹ '순위 공개→지자체 홍보→언론 기사화'..동일한 패턴 학계 "도시브랜드 정량적 평가, 줄세우기 무의미" 지적
대전시와 이장우 시장은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연구소) 도시 브랜드평판 순위를 시정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물론 도시 브랜드평판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단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 지방자치단체 역시 브랜드 평판 순위를 홍보 수단으로 가공해 적극 활용하고 단체장이 직접 순위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연구소가 정기적으로 순위를 발표하면 지자체가 이를 언론에 뿌리고, 언론은 별다른 검증 없이 경마식 보도를 이어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경남 고성군은 지난달 30일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브랜드평판 전국 군(郡)부 1위'를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군은 "공룡세계엑스포, 거류산 등산축제 등 10월에 야심차게 추진한 축제와 체육행사 결과물로 군이 전국적으로 경쟁력 있는 브랜드 도시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발표한 기초자치단체 브랜드평판 순위에서 고성군은 32위를 차지했지만, 31위까지 기초단체 시(市)와 구(區)가 차지했기에, 자신들이 '군(郡) 단위 1위'라는 논리다.
그러나 고성군 관계자에게 브랜드평판 1위 배경을 묻자 ‘추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관계자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점수가 올라갔는지 모른다. 지난달 실시한 다양한 축제들로 인해 순위가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략) 기업이 평판 1위를 했다는 내용을 이용해 홍보하는 것처럼 지자체 역시 (브랜드평판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기초자치단체 브랜드평판 1위를 차지한 진주시 역시 뚜렷한 답변을 못 내놓기는 마찬가지다.
경남 진주시 역시 최근 브랜드평판 1위 성과를 보도자료 형식으로 배포했다. 시에 1위를 한 사유를 질의했더니 “바로 답변하기 어렵다. 알아본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설명한 이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밖에 온라인 검색창에 '브랜드평판'을 검색하면 충청권인 충남 천안과 아산시, 예산군 등 브랜드평판 성과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브랜드평판 과열 경쟁, 동일한 패턴
단체장도 순위 경쟁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행위인 ‘행정’을 순위로 포장하는 것 만큼 편한 것은 없기 때문.
김영환 충북지사는 지난 9월 9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광역자치단체 브랜드평판에서 충북이 16위로 최하위다. 충북 랜드마크, 이미지, 브랜드가 부족하고 국민 관심도가 상당히 저조하다고 봐야 한다. 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장선 경기 평택시장은 지난 7월 9일 민선8기 2주년 브리핑에서 지난 성과로 반도체·수소사업 경쟁력 강화 등을 소개하며 ‘대한민국 기초지자체 브랜드 평판 1위’를 근거 중 하나로 내세웠다.
지자체 뿐 아니라 민간과 대학도 이 경쟁에 동참하고 있다. 연구소는 매달 90여 개 분야 브랜드평판 지수를 공개하고, 이와 별도로 상장기업 대상 기업브랜드평판지수와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 대상 브랜드평판 지수도 각각 25개, 16개 분야로 구분해 발표하고 있다. 여기서도 브랜드평판을 둘러싼 과열 경쟁이 동일한 패턴으로 벌어진다.
학계 "도시브랜드, 역사·문화 가치 등 정성적 요소 고려해야"
학계는 도시 브랜드를 정량적으로 평가해 줄세우는 방식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참여·소통·미디어·커뮤니티 지수를 종합해 브랜드평판을 산출하는 연구소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규용 충남대 교수(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는 “도시브랜드 평가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진정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도시는 규모, 얼마만큼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느냐를 떠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며 “도쿄나 뉴욕 등 세계적으로 큰 도시야 평가할 수 있더라도, 그 평가 체제를 지역에서 끌고와 순위 매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셜미디어상 언급량 등을 측정하는 것은 정량적이고, 평가하기 쉬운 요소만 끌고 온 것”이라며 “도시브랜드와 정체성은 행정이 뚝딱 만들어 (순위가 어떻다 등)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이 계속 쌓아가는 것이다. 도시가 어떤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등 정성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