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증오를 이긴다’ 대전여성영화제 사태 후일담

[디트의눈] 주한 영국대사 통일부 포럼 불참 이유

2024-09-03     한지혜 기자
대전여성영화제 상영 예정작 '딸에 대하여' 영화 포스터. 배급사 찬란.

좋은 영화는 울림을 준다. 나아가 편견을 깨고, 포용적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전 세계 성 격차 지수 하위권 국가에 속한 현실, 남성 위주의 영화산업 구조 속에서 ‘대전여성영화제’가 갖는 의미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다. 

대전여성영화제는 올해 4회째를 맞았다. 대전시가 퀴어 소재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영화 <딸에 대하여> 상영 제외를 요청하자, 주최 측인 대전여성단체연합은 이를 ‘검열·차별·반인권 행정’으로 규정하고, 보조금 1350만 원을 반납했다.

자체 모금 운동에 나선 결과, 불과 이틀 만에 1000만 원이 넘게 모였다. 응원과 연대의 결과다. 배급사 찬란 측도 영화 의미가 퇴색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별도 상영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영화는 오는 6일 오후 5시 씨데인디U에서 이미랑 감독과의 GV 방식으로 정상 상영한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중년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성소수자인 딸을 바라보는 시점을 다룬 작품이다. 청년 주거, 노인 복지, 고용 문제 등 우리 사회 이슈인 돌봄권, 노동권, 가족구성권을 폭넓게 다루며 호평을 받았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12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배우상 등을 수상했다.  

퀴어 소재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제기된 일부 민원을 시 행정이 수용하면서 발생한 후폭풍은 적지 않다. 영화 상영을 기다려온 사전 신청자, 수 일 간 꼬박 고민해 영화를 선정한 영화 선정위원회는 허탈감을 표명했다. 감독과 배우, 영화 관계자, 배급사, 원작 소설가가 느꼈을 당혹감과 모욕감도 이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다.

통일부 행사 보이콧한 주한 영국대사, 왜? 

대전시가 대전여성영화제 주최 측에 보낸 공문. 상영작 교체를 요청하는 내용. 대전여성단체연합 제공.

최근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의 ‘2024 국제한반도포럼’ 불참 선언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섭외된 포럼 연사 19명이 모두 남성인 것을 알게 된 후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주한영국대사관은 성평등의 가치를 지지한다”, “참석자들이 다채로운 견해를 공유할 때 행사가 더욱 빛날 수 있다”. 그가 성평등 가치를 중심에 두고 포럼 참석 여부를 결단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대사관 측 코멘트다.

졸지에 통일부는 나라 망신을 시킨 꼴이 됐다. 부처 측은 급하게 여성 패널을 추가해 성비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했지만, 행사는 결국 '성차별 포럼'이라는 꼬리표를 단 상태로 열렸다. 

크룩스 대사가 한국 부임 이후 3년 연속 참가한 행사가 있다. 퀴어문화축제다. 그는 지난해 6월 영상 축사를 통해 한국어로 “저는 한국과 영국 두 나라가 함께 협력해 더 포용적이고 평등한 한국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언제나 사랑이 증오를 이깁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 세계 시대 화두가 ‘포용’으로 바뀐지 오래지만, 정작 정책과 예산을 집행하는 집단의 사고 틀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나아가 행정은 기계적 중립이나 균형을 맞춘다는 이유로 반인권적 행태에 동조하는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반대로 연대의 힘은 커지고 있다. 이틀 만에 행사 운영 기금을 마련한 대전여성영화제 사례가 그 예다. ‘언제나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 영국대사의 메시지는 대전에서도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