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명맥 이어온 광천토굴새우젓···“선조가 물려준 귀중한 유산”

홍성군, 충남 최초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도전 전국 새우젓 생산 60% 차지..전국 유일의 방식

2024-08-12     김다소미 기자
30여 년을 토굴새우젓을 판매하며 생업을 이어 온 신태성 중앙토굴 대표의 토굴 모습. 김다소미 기자. 

전국 새우젓 생산의 약 60%를 차지하는 ‘광천토굴새우젓’. 만드는 방식이 독특하고,  맛은 최고로 꼽힌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토굴에서 3개월 간 발효과정을 거쳐 전 국민의 밥상에 오른다.

광천토굴새우젓은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토굴 숙성’이라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데,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 독배마을은 젓을 숙성하는 토굴이 몰려있는 동네다.

이 곳에서 토굴새우젓을 생산하는 주민 70%는 대부분 가업을 승계받았다. 타지에서 터를 잡았다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대를 잇는다고 한다.

신경진 회장이 지난 2일 광천읍 일대서 열린 광천토굴새우젓 가공업 국가어업유산 신규지정 현장평가에서 직접 새우젓의 역사과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홍성군 제공. 

할아버지때부터 3대가 토굴새우젓으로 생업을 이어 온 토굴마을 상인회 신경진 회장은 “우리 마을 선조가 지켜 온 고유의 문화이자 유산이다. 전국 어디에도 없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군은 토굴새우젓의 역사성과 희소성을 인정해 충남 최초의 ‘국가어업유산’ 지정을 추진중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현장평가를 마쳤으며 최종평가를 앞두고 있다.

해상교통의 중심지 옹암포구, 최대 새우젓 産地

광천읍 옹암포구(瓮巖浦口)는 조선 중기 이후 번성했던 내륙과 해안을 잇는 포구다. 지금은 1970년대 서해안 간척사업이 추진되고 2000년대 말 보령 방조제가 들어서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장날이면 150여 척 이상의 어선이 해산물을 실어나르던 어업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광천은 고려 시대부터 새우젓 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옹암포구가 있던 현재의 독배마을 뒤편에는 ‘당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야산이 자리잡고 있고, 당산 일원에 그 유명한 토굴이 30여 개나 뚫려있다.

신태성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토굴에서 새우젓을 발효시키는 곳은 여기 (광천) 뿐”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홍성군 제공. 

광천토굴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병원이라는 황해도 옹진 사람이 6·25 전쟁 때 광천 지역으로 피난왔고, 금광에서 일하던 과거의 기억을 살려 새우젓을 금광에 보관하던 게 그 시작이다.

토굴은 일년 내내 14~16℃로 유지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어 최소 3개월을 숙성한 후 판매한다.

37년 간 토굴새우젓을 생산, 판매한 신 회장의 할아버지는 새우잡이 배로 새우를 잡아와 아버지가 유통하던 가업을 이어받았다.

신 회장은 “지금으로치면 냉장 사업을 했던 셈이다. 토굴의 가치는 예전으로 치면 논 열마지기와 같았다”며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돼 주민들이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신 대표가 담근 새우젓 모습. 토굴에서 해풍, 온도, 습도가 적정하게 유지돼 최상의 맛을 자랑한다. 김다소미 기자. 

“자연이 주는 선물..다른데서 못 만들어”
맛을 결정 짓는 ‘해풍·온도·습도’..3박자 고루 맞아야

광천 토박이로 역시나 가업을 이어받은 신태성 중앙토굴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토굴에서 새우젓을 발효시키는 곳은 여기 뿐”이라며 “강경도 똑같은 토굴을 파서 시도했지만 안됐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음식을 보관한다는 게 아무데나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광천도 토굴마다 숙성도가 모두 다르다. 해풍, 습도, 온도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최상의 맛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폐광을 사용했다고 알려진 토굴새우젓의 역사를 바로잡기도 했다.

토굴 곳곳에는 이끼에 이슬이 맺혀 있다. 수분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여러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질때 새우젓은 최고의 맛을 낸다. 김다소미 기자. 

그는 “석탄 캐던 탄광이나 금을 캐던 금광에서 새우젓이 만들어진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시작은 금광에서 이뤄졌을지 몰라도) 현재 토굴은 모두 자가 채굴해서 생긴 곳”이라며 “탄도 기름이다. 토굴 속 공기에 기름이 섞이면 숙성하던 새우와 섞여 버린다”고 설명했다.

국가중요 어업유산으로 지정되면 “토굴 보수와 주변 환경 정비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토굴새우젓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신 대표는 “광천토굴새우젓은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준 선물이다. 조상이 좋은 머리로 좋은 유산을 물려준 셈”이라며 “일반 냉장고에서 저장하는 새우젓은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새우와 소금물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토굴은 맛 차이가 분명하다”고 말했다.